강남이 배밭이었던 시절부터 살아왔던 토박이 어르신들은 ‘도깨비 같은 세상’이라 혀를 내두른다. 25평이 15억, 16억을 호가하는 세상이다. 7개월 만에 2억이 올랐단다. 3.3㎡가 1억이랬다가 그게 시세 조작이랬다가, 신기루가 따로 없다.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데 그 누군가는 아파트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앉아서 하루가 다르게 '불로소득'을 올리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 임금 몇천 원에 한 사람의 일자리가 오락가락 하는 세상에. <SBS 스페셜-강남 오디세이>는 저 요지경 신기루의 복판 ‘강남’을 들여다본다.

여전한 꿈의 땅?

SBS 스페셜 ‘강남 오디세이’ 편

다큐를 연 건 2018년 머슬 마니아 대회. 건강한 육체가 새로운 트렌드로 대두되며 '머슬 마니가'가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이 즈음, 2018 대회에서 심사위원을 맡고 있는 작년 머슬퀸 이연화 씨를 주목한다. 머슬퀸, 하지만 그녀의 이력은 화려하다. 패션 디렉터, 의상 디자이너이자 머슬퀸까지. 이른바 이 시대 젊은이들이 말하는 자기관리의 표본이다. 그런 그녀가 강남에 산다. 늘 새로운 트렌드에 목말라 하는 그녀에게 강남은 딱 어울리는 곳이다.

어디 이연화 씨뿐일까. 군 제대 후 고향인 강남에서 혈혈단신 상경하여 8~9년 만에 부동산 사업 등을 하며 강남에 집을 마련한 진수현 씨. 사무실에서 집으로 가는 대치동의 길을 걷는 순간, 자신의 집 옥탑에서 홀로 바비큐 파티를 벌이는 순간, '강남'을 만끽하는 그 순간 그는 가장 행복하다. 그에게 강남은 '미래'이다.

하지만 미래와 트렌드가 늘 보장되는 건 아니다. 배우 지망생인 이한나 씨는 그 '미래'를 위해 현재를 담보로 잡혔다. 비싼 학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알바를 하는 그녀가 머무는 곳은 강남의 한 고시원. 그녀 역시 하루의 시작과 끝이 강남이고, 그곳은 그녀에게 기회의 땅이지만 현실은 고달프다.

지난 11년간 이곳에 머무르며 한국에 대한 글을 써왔던 영국의 칼럼니스트 팀 알퍼는 한국의 엘리트들이 모여드는 곳이라 강남을 정의한다. 아로마 오일을 파는 한 회사는 비싼 임대료와 수익도 나지 않는 강남의 매장을 포기할 수 없다한다. 왜냐하면 이곳은 부와 고급스러움의 상징이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SBS 스페셜 ‘강남 오디세이’ 편

과연 그럴까? ‘강남불패’의 부동산 신화를 이루는 그 저변에 저렇게 '미래'를 담보로 잡히며 꿈을 찾아 모여드는 사람들의 로망이 기저를 이룰까? 다큐는 강남에 모여든 사람들의 꿈을 말하지만, 그 꿈의 실체를 짚지는 않는다. 그들의 성공과 성공의 대가로 얻은 강남의 부동산을 '로망'으로 제시하지만, 그 부작용과 그림자는 짚지 않는다. 기껏해야 이한나 씨의 기약할 길 없는 고시원 정도가 다큐가 보여준 한계이다.

과연 그럴까? 강남에서 꿈을 향해 열정적으로 살면 누구나 이연화가 되고, 진수현이 될까? 그들이 이룬 꿈은 실체가 있는 것일까? 여전히 강남은 트렌디한 1번지일까? 무엇보다 그 트렌디의 실체는? 이연화씨가 트렌디해서 좋다던 그 '아는 언니' 역시 고급스러움을 놓칠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강남에 매장을 유지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무엇보다 저 강남에 모여든 사람들이 정말 한국 사회의 엘리트들이기는 한 건가? 마치 불을 향해 모여든 나방을 부각하면서 그 불의 실체를 말하지 않듯, 다큐는 강남에 모여든 '막연한 꿈'만을 조명한다. 모름지기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던 그 옛 속담에서 한 치도 나가지 못한 인식이다.

강남, 그 불평등의 역사

SBS 스페셜 ‘강남 오디세이’ 편

그렇게 강남에 모여든 사람들의 로망을 통해 ‘왜 강남인가’를 짚어 보려하던 다큐는 강남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이 맑아 청담동, 서울로 가던 나루터가 있던 동네, 당시 서울은 뚝섬 건너 4대문 안이었다. 1963년 강동구의 한 구역으로 서울에 편입되었고. 1975년 강남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곳.

1979년 혜은이의 노래 <제3한강교>의 유행과 함께 강남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다. 경부고속도로와 연결된 제3한강교처럼, 강남은 북한의 위협을 내세운 정권의 의도적인 배려(?)와 특혜로 각종 정부기관들이 이전하고, 도시 기반시설이 자리 잡으며 1963년에서 1970년 사이에 이미 땅값 차이에서 강북을 훨씬 넘어서기 시작했다. 거기에 1976년 강북의 명문고들이 이전하고, 노량진의 학원가들이 대치동으로 옮겨가면서 대치동 인근에만 학원 1200여개, 명실상부 교육의 중심지가 되었다.

물론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다. 9년 전 교육을 위해 강남으로 이사 온 하린이는 어릴 적부터 스펙이 차곡차곡 적립된 친구들 사이에서 적응하지 못한 채 한 시간 걸리는 강북의 대안학교로 옮겼다. 강남에서 30년 동안 가게를 운영했던 이마저 이제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다고 토로할 만큼 거침없이 오르는 강남의 임대료는, 곳곳에 비어있는 상가에서 보여지듯이 강남 상권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SBS 스페셜 ‘강남 오디세이’ 편

이미 폐업률이 창업률을 앞지른 지는 오래되었다. 지난 20년간 대치동에서 떡집을 운영해오는 손영주 씨는 말한다. 그 신화의 강남 사람들, 사실 거대한 집 한 채만이 그들이 가진 자부심의 전부라고. 하지만, 그런 영주씨도 강남에 한번 살아보는 게 여전한 로망이다.

길지 않은 강남의 역사는 새롭지 않다. 강남에 대한 다큐에서 매번 등장했던 회고담이다. 거기에 덧붙인 꿈을 찾아 모여든 사람들? 과연 이런 강남살이의 분석이 작금의 '도깨비 같은 강남 집값'의 실체를 밝히는 것일까? 그저 강남이 떠들썩하자 구색에 맞춰 만든 건 아닐까?

<SBS 스페셜>에서 가장 솔깃했던 부분은 바로 그곳에 사는 그 '엘리트 층'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여전히 고위 공직자 33%·국회의원의 29%가 사는 곳,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과연 합리적 부동산 정책을 펼칠 수 있을까? 어느 보수신문이 청와대 경제통에게 강남 아파트 값을 두고, 우선 당신의 집부터 옮겨 보라는 어깃장이 차라리 속 시원해 보이는 시절. 비정상을 넘은 지 한참 되는 ‘강남 불패의 신화’에 대한 <SBS 스페셜>의 접근은 철지난 가요의 도돌이표처럼 평이하다 못해 안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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