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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노동과 평등한 분담[도우리의 미러볼] 가사노동 첫 국가통계 발표를 맞이하여
도우리 객원기자 | 승인 2018.10.16 08:48

[미디어스=도우리 객원기자] ‘가치’만 있고 ‘가격’은 없던 가사노동에 대한 첫 국가통계가 나왔다. 지난 8일 통계청은 2014년 기준,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가 시간당 1만569원이라고 발표했다. 뒤늦게나마 가사노동의 가시화를 위한 첫걸음을 뗀 것이다. 

흔히 가사노동 곧 돌봄노동은 '그림자 노동'이라고 부르지만 '그림자'는 오히려 임금 노동에 가깝다. 임금 노동(생산 노동)은 돌봄 노동(재생산 노동)이 없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을 하려면 청소나 요리, 정리정돈을 포함해 충분한 식사와 수면, 스트레스 해소 및 재활, 궁극적으로는 출산과 육아가 필수적이다. '그림자'는 우리가 이를 모른 체 해왔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결혼율과 출산율의 하락은 여성들이 이를 더 이상 모른 체하지 말라는 암묵적 외침이다. 결혼과 출산은 여성이 돌봄노동을 전담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다. 돌봄노동의 경제적 환산뿐 아니라 남성과의 공평한 분담, 이를 뒷받침하는 돌봄의 제도화 방안을 논의해야만 하는 이유다. 특히 돌봄의 제도화는 그 방식에 따라 성별분업을 강화할 수도, 약화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제도적 설계가 필요하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동안 돌봄노동은 ‘권리’만 있고 ‘의무’는 없었다. ‘이성애자 성인 남성’으로 대표되는 근대 시민 개념은 자율성과 독립성을 표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상호 의존적인 존재다. 그 자율성과 독립성은 여성의 돌봄노동에 의존한 허구에 불과하다. 이렇게 돌봄노동을 일부 사회 구성원이 당연하게 취할 수 있는 사회에서, 돌봄노동은 물론 이를 전담하는 여성의 가치는 낮을 수밖에 없었다.

여성들은 어머니, 아내, 딸로서 돌봄 노동을 일종의 ‘도덕’으로 떠맡아 왔다. 사회경제적 기회가 박탈되고, 의존적 존재로 여겨지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애정과 사랑을 원천으로 하는 돌봄 노동은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 사랑이라고 낭만화해 고갈될 때까지 돌봄 노동을 요구할 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에 대한 간섭과 차별, 폭력까지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평등뿐 아니라 돌봄의 양적·질적 균일화를 위해서도 제도화는 필수적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돌봄 제도는 여성이 양육자로서 수급권을 갖는 양상이 강하다. 아동을 돌보는 데 대한 자녀양육수당, 노인을 돌보는 데 대한 기초노령연금 등이 대표적이다. 돌봄 노동에 대한 보상적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이는 여성을 양육자로 바라보는 성별 분업을 고착화한다. 성평등 척도가 높은 선진국들처럼 여성을 소득자로 보는 관점과 돌봄노동의 수당화보다 돌봄서비스를 사회화하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그중 ‘기본소득’은 대표적으로 고려해 볼 만한 정책이다. 기본소득 지급은 여성의 유보임금을 높여 고용주에 대한 협상력을 증가시키고 시장노동 의존도를 줄임으로써 성별분업을 완화하고, 돌봄노동처럼 소득을 직접 창출하지 않는 활동들도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활동으로 인정하는 토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가구가 아닌 개인이 수급권자가 됨으로써 더 보편적인 시민권과 분배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소득이 오히려 여성의 취업의욕을 저하시켜 기존의 성별분업을 합리화,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지 않기 위해서는 다양한 제도적 방안이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여성은 돌봄노동 외에도 감정노동 등 남성의 임금 노동과 구별되는 다양한 노동을 무급으로 강요받고 있다. 급여를 받더라도 비정규직, 시간제 등의 불안정하고 주변적인 노동 형태만 주어질 뿐이다. 돌봄노동뿐 아니라 ‘유리천장'을 깨트리고 여성에게 양질의 일자리가 주어져야 하는 이유다. 나아가 <아내가뭄>의 저자 애너벨 크랩의 지적했듯, 남성에 대한 ‘비상 유리계단'도 깨트려야 한다. 남성들이 전업 주부로 일해도 떳떳한 사회이어야 돌봄노동에 대한 진정한 ‘평등한 분담'이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여성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푸념이다. 여기서 ‘아내’를 ‘노예’로 바꿔도 큰 무리가 없다. 아내는 집안일뿐 아니라 감정적, 성적 지지 그리고 임금 노동까지 당연하게 감수해야 하는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런 존재를 당연시하는 사회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처럼 OECD국가 중 남성의 가사노동 분담률이 최하위인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돌봄노동을 가시화하기 위한 국가 통계는 기본이고 사회 모두가 분담하는 제도적 논의가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비혼, 비출산 선언은 ‘아내 파업', ‘아내 퇴사'의 강력한 신호다. 

도우리 객원기자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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