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정치의 열렬한 지지자가 아니라면, 어떤 경우라도 문재인 대통령을 감정적으로 미워하기는 쉽지 않다. 이것이 문재인 대통령이 가진 정치가 또 통치자로서의 최대 장점일 것이다. 제주에서의 에피소드를 보니 또 그렇다.

일부 주민들은 여전히 반발하고 있고 또 시기의 문제 역시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강정주민들과의 간담회에 나선 것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대목이 있다. 강정마을 주민들의 사면 복권이 문제가 아니다. ‘진정성’을 평가하는 세간의 인식으로 보자면 그렇다는 거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제 관함식에서 한 연설 또한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에 담긴 논리는 명분을 취하려는 방식으로 이뤄져 있다. 관함식은 세계 각국의 해군들이 평화를 위한 우의를 다지는 자리였고, 군사력이란 결국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게 다시 한 번 확인됐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 앞에서 국제 관함식이 평화를 파괴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힘을 잃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식은 이 문제가 일종의 ‘아픈 손가락’임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다. 제주해군기지는 애초에 참여정부가 추진한 사안이다.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이 한국의 ‘자주국방’과 만나면서 전시작전권 환수와 평택미군기지 및 제주해군기지 문제로 귀결된 것이다. 보수정치는 참여정부의 이념적 편향성이 한미동맹을 배신해 안보 위협을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 당시 상황은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이 맥락을 너무나도 잘 알 것이다.

오히려 보수정치세력의 우려가 좀 더 현실에 가까워진 것은 현재의 집권세력이 야당이던 이명박 정권 시절 제주해군기지 건설과 한미FTA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다. 자신들이 추진한 정책을 스스로 반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범진보진영 간 공동전선 구축을 시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2012년 총선의 ‘개나리-진달래 연대’는 이 덕분에 가능했다.

2012년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전략 역시 이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즉, 문재인 대통령은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한 것과 이에 반대하게 된 일의 모든 과정에서 핵심에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었던 인물 중 한 명인 것이다. 그러니 이게 ‘아픈 손가락’일 수밖에 없다. 이 날의 일정은 이런 맥락 하에서 기획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스토리’를 넘어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과연 국제 관함식은 평화인가? 군함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해상사열을 진행했다는 점에서 관함식은 군사 퍼레이드와 유사한, 본질적으로 무력시위에 가까운 행위다. 군사적 강대국들의 경우에는 이런 행사를 자신들의 새로운 무기를 공개하는 기회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번 제주 국제 관함식에 가장 많은 함정을 보낸 국가는 미국이다. 언론은 이번 관함식에 최다 국가가 참여했다는 점을 근거로 우리 해군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갖고 있는 안타까움과 평화에 대한 갈망과는 별개로 엄혹한 국제정치의 맥락 속에서 문제의 본질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 확인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제주민군복합형 관광미항 앞바다에서 열린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에 참석해 '좌승함(座乘艦)'인 상륙함 '일출봉함' 함상에서 해상 사열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 정권에서 말하는 ‘평화’는 대개 남북관계와 관련이 있다. ‘평화’의 개념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5.24 조치 해제 발언 논란에 비추어 다시 정리해보면 어떨까? 보수세력은 한국이 미국보다 앞서 나가는 바람에 미국의 대북정책에 큰 폐를 끼치고 있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권이 북한의 대리인 역할을 하려는 의도의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집권 여당의 대표에 의해 유도된 강경화 장관의 발언이 이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 제재가 있는 이상 5.24 조치 해제는 별 의미를 갖지 못한다. 어차피 5.24 조치의 상당 부분이 유엔 제재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정부가 5.24 조치 해제를 어떤 의미로든 검토한다는 것은 국제사회의 제재가 완화되거나 해제되는 상황을 전제한다는 얘기가 된다. 제재를 완화하거나 해제할 수 있는 것은 누구인가? 이것 역시 미국이다.

보수세력의 도식에 의하면 트럼프 행정부는 누구보다도 제재 유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제재 완화를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을 중간선거 이후로 미뤘는데, 이대로 협상이 마무리 될 경우 자신이 선거를 의식해 과도하게 양보했다는 반발 여론을 돌파할 수 없게 된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수 있다. 합의가 완료되는 일정을 늦추면서도 협상의 동력을 유지하려면 협상의 대상을 더 늘려야 한다.

이렇게 보면 중간선거 이후 북미 간 협상은 ‘빅딜’ 또는 ‘노딜’이 될 가능성이 동시에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를 불성실하게 이행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여 온 니키 헤일리 미국 유엔 대사가 사임 의사를 밝힌 것도 큰 틀에서는 이런 맥락 하에서 일어난 일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5.24 조치 해제 검토를 언급하는 것도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협상력을 떨어뜨리는 일일 수 있지만 크게 볼 때는 양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지점이 있는 셈이다.

북미가 비핵화에 대한 좀 더 진전된 조치와 종전선언 및 제재 완화라는 ‘빅딜’을 이룬다면 모두가 승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 협상의 결론이 ‘노딜’일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정권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어긋나는 것은 바로 이 경우다. 이런 일이 현실이 됐을 때 이 정부가 미국의 영향력을 벗어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독자적인 행동을 감행할 수 있을까? 판문점 선언 비준 등을 거부하는 국내 정치적 환경까지 고려해볼 때 그런 일은 어렵고 ‘자주국방’에 더 많은 힘이 쏠리게 될 확률이 크다. 5.24 조치 해제 논의나 국가보안법 개정 또는 폐기 주장은 마술처럼 사라질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친다면 ‘평화’라는 명분은 힘을 잃게 된다.

문제는 우리가 명분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됐을 때 어떤 정치를 눈앞에 두게 되느냐에 있다. 사람들은 ‘거짓말에 불과한 명분’을 버리고 ‘실질’을 찾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이 실천적 결론을 이미 2008년 이명박 정권의 등장을 통해 경험한 바 있다. 극우포퓰리즘으로 불리는 해외의 사례 역시 대개 이런 공식을 따랐다.

물론 ‘평화’는 국제정치의 맥락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은 어떤 정권에서든 상존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핵심은 ‘정치적 태도’에 있다. 명분을 실제 존재하는 이해관계를 포장하기 위한 도구로만 쓰는 게 아니라, 명분을 관철하기 위해서라면 이해관계의 문제를 포기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이후의 정치적 과정에서도 ‘명분’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제주에서의 문재인 대통령 메시지를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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