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요일 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기레기’라는 말이 보통명사화된 한국 저널리즘 환경에서 이만한 언론비평 프로그램이 없다는 평가와 기대가 더디지만 꾸준히 입소문을 타면서 생긴 현상이다. <저널리즘 토크쇼 j>의 ‘j’는 저널리즘이며, 정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여전히 KBS의 ‘j’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그런 것을 모르지 않는 <저널리즘 토크쇼 j>는 적어도 지난 언론의 흑역사를 말하면서 자신들의 비굴을 빠뜨리지 않고 있다.

<저널리즘 토크쇼 j>는 자주 조선일보를 비판한다. 언론 비평을 한다면 피할 수 없는 숙명적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번처럼 전적으로 조선일보를 다룬 적은 없었다. ‘조선일보의 적은 어제의 조선일보’라는 말이 유행되고 있는 근래의 현상을 다룬 ‘조선일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통일보도’에도 역시나 지난 KBS에 대한 비판을 거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조선일보에 든 회초리만큼의 강도를 느낄 수는 없었다. 그것이 아마도 아직은 KBS가 JTBC가 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KBS1 <저널리즘 토크쇼 J>

어쨌든 <저널리즘 토크쇼 j>의 조선일보 비판은 작정한 듯 매서웠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의 “조선일보는 주류언론이 아닌 선동매체”라는 말까지도 거르지 않았다. 정성장 박사의 돌직구 외에도 <저널리즘 토크쇼 j>는 요즘 시쳇말로 조선일보의 “뼈를 때리는” 비판을 무수히 꺼내 들었다. 공교롭게도 지난주에는 JTBC를, 이번 주에 와서는 조선일보를 다룬 대비가 흥미롭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저널리즘 토크쇼 j>의 뭇매를 맞은 조선일보의 보도는 근래 국회에서까지 등장했던 2014년 기획 보도 ‘통일이 미래다’ 시리즈다. 관련 기사가 일곱 달에 걸쳐 무려 250여 건이나 됐다. 가히 전사적 역량을 총동원한 그야말로 역작이라 할 수 있는 결과였다. 그러나 문제는 ‘통일이 미래다’ 시리즈 기사들이 당시의 현실을 담고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일 따름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에도 불구하고 당시는 남북관계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통일에 대한 온갖 핑크빛 청사진이 난무했지만 정작 통일의 또 다른 축인 북한은 안중에도 없는 일방적 통일론이었다. 조선일보의 ‘통일이 미래다’ 시리즈는 당시의 비현실성에도 불구하고 하려고 한다면 조선일보가 얼마나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것만은 분명하다.

KBS1 <저널리즘 토크쇼 J>

사실상 더 이상의 통일 관련 보도가 불필요할 정도로 양과 질에서 완성도를 보였던 조선일보의 ‘통일이 미래다’ 시리즈는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그때와 다른 현실적 진척을 보이고 있는 현재에 와서는 조선일보 스스로에 의해서 폐기되었다. 근래 조선일보는 자신들의 업적을 애써 모른 체 문재인 정부의 평화 정책에 일일이 반대와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비핵화 의지를 김정은의 육성으로 들어야 한다고 하더니 정작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다짐이 육성으로 전달되자 “김정은 ‘핵없는’ 한마디에 공중정찰·해상훈련 포기”라는 비판기사를 냈던 조선일보다. 이쯤 되면 보는 이마저 분노에 앞서 민망해질 지경이다. <저널리즘 토크쇼 j>의 붙박이 패널인 중앙대 정준희 교수는 조선일보에 대해서 “견해를 갖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견해를 상황에 따라 바꾸는 것이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한국 언론은 촛불혁명 후 너도나도 반성을 쏟아냈다. 그러나 정작 반성에 수반할 실천은 없다. 그 이후에도 한국 언론은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현재는 가짜뉴스가 화두가 되고 있다. 매체들이 직접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배경이 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을 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기레기와 가짜뉴스 퇴출”의 기치를 내걸고 만들어진 <저널리즘 토크쇼 j>의 의미는 크다. 갈수록 독해지는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행보에 주목하게 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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