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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구가 감동적이었던 이유[블로그와]하재근의 TV이야기
하재근 | 승인 2010.09.15 09:49

대중예술은 대체로 상업적이다. 그러므로 자본의 논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자극성과 쾌락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안전하고 손쉬운 ‘장사’를 위해 당대 주류의 논리를 담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대중예술은 상업성과 보수성으로 공격받는다.

하지만 대중예술엔 자본과 주류의 입장만 반영되는 것이 아니다. 대중예술 작품은 무엇보다도 국민 대중의 선택을 받으려 노력한다. 따라서 국민 대중 일반의 정서, 염원을 담을 수밖에 없다. 만약 어떤 작품이 대중들의 정서에 반하는 가치관을 선보인다면 격렬한 공격을 받거나 차디찬 냉대 속에 버려질 것이다.

특히 시청자들로부터 감정이입을 이끌어내야 하는 드라마의 주인공, 예능 프로그램의 주요 인물들은 반드시 대중의 정서를 반영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인기 프로그램들을 통해 우린 당대 대중의 염원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요즘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는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의 설정을 살펴보자.

   
 

- 김탁구와 동이가 보여주는 것 -

무려 시청률 40%를 돌파한 <제빵왕 김탁구>는 극 중반부에 일련의 경합을 선보였다. 그것은 극중에서 팔봉선생의 인정서를 받기 위한 경합이면서, 동시에 김탁구가 시청자에게 인정받기 위한 의례이기도 했다. 경합의 과정에서 김탁구가 어떤 가치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시청자가 김탁구에게 감정이입할 수도 있고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제작진은 경합을 통해 2010년에 한국인이 원하는 것을 김탁구가 구현하도록 해야 했다. 실제로 그것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경합의 시작에서 팔봉선생의 죽음에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감동을 받았고 작품도 찬사를 받았다. 그것이 <제빵왕 김탁구>가 뒷심을 잃지 않는 비결이라는 지적까지 나오기도 했다.

첫 번째 경합의 주제는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이었다. 여기서 김탁구는 자신에게 남은 돈 전부를 길바닥에서 보리와 옥수수 등을 파는 노점상에게 주고 그것을 산다. 그 노점상이 너무나 안쓰러워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노점상의 아이를 위해 보리빵을 만든다. 그러자 김탁구는 첫 번째 경합에서 통과한다. 작품은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이란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긴 빵'이라는 이유를 제시했다.

두 번째 경합의 주제는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빵'을 이스트 없이 만드는 것이었다. 김탁구는 온갖 발효 재료를 구해 실험하지만 빵을 만드는 데 실패한다. 하지만 그는 실험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가능성을 알게 됐다며 즐거워했다. 반면 구마준은 모범적인 제빵법을 알아내 이스트 없이 완성된 빵을 제출했다. 그런데 작품은 반대로 구마준은 탈락하고 김탁구가 통과하는 결과를 보여줬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빵이란 도전하며 내 자신이 즐기는 마음이 담긴 빵'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세 번째 경합의 주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이었다. 답은 '자신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만들어야 할 빵들'이었다. 확정된 성공보다 인생의 도전이 더 행복하다는 얘기다. 이것이 제시되며 팔봉선생의 유훈도 공개됐는데, 그것은 '이 세상에 사람보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었다.

시청자들은 이런 가치관에 동의하고 감동한 것이다. 만약 가장 배부른 빵은 가장 비싼 빵이라며 구마준이 만든 초호화판 빵을 내세웠다면 시청자들이 이 작품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김탁구를 승리에만 집착하는 사람으로 그렸다면 시청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감정이입이 무너지면서 시청률이 급락했을 것이다.

최근 <동이>에선 어린 영조가 처음 등장했다. 이 드라마는 동이와 어린 영조에게 시청자의 감정이 이입돼야 성공한다. 어린 영조의 등장 장면은 시청자의 첫인상을 만들어내므로 중요했다. 시청자가 보자마자 한눈에 어린 영조에게 감정이 이입되도록 작품은 어떤 설정을 내보냈을까?

바로 천민 아이를 능멸하는 양반을 꾸짖는 모습이었다. 제 신분과 권세만 믿고 약자를 핍박하는 사람을 징치하고 인간의 소중함이라는 가치를 선보인다면,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 판단은 성공적이었다. 시청자는 어린 영조를 '우리편'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작품은 계속해서 시청자를 동이모자에게 몰입시켰다. 동이가 아들에게 '능력이 중하지 신분이 중한 것이 아니다'라며 신분차별의 부당함을 말하는 장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세상 이치의 근본'이라며 '누구라도 마음속의 선함이 있으니 그것을 보고 아껴주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장면 등이 그랬다. 이것은 <제빵왕 김탁구>와도 같았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의 중요성, '이 세상에 사람보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주제와 <동이>의 것이 같았던 것이다.

   
 

- 남자의 자격, 파란을 일으키다 -

최근에 <남자의 자격>이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합창단 특집과 밴드 특집이 시청자의 찬사를 받으며 주말 최고 예능의 자리에 올랐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합창단 음악감독인 박칼린 씨가 보여준 가치에 시청자들은 깊이 공감했다.

박칼린 씨는 '우승을 노리는가?'라는 질문에 매우 불쾌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남자의 자격>의 성격이라든가 합창단의 목표는 우승 따위가 아니라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제빵왕 김탁구>에 나온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빵'의 주제와 같다. 거기에서 악역 구마준은 단지 이기기 위해 정답을 내놓았고, 김탁구는 경쟁과 상관없이 자신의 도전을 더 중시했다. 시청자는 김탁구와 박칼린 씨를 지지했다.

<남자의 자격> 밴드는 대회에 나가 어설프게나마 노래를 완주했다. 그때 제작진이 김태원에게 몇 점을 주겠느냐고 물었다. 김태원은 '1점, 2점, 그런 점수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주겠다며 '이번 연주의 점수는 아름다움'이라고 했다. 최선을 다해 도전하는 것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지, 점수나 등수 같은 경쟁의 승리는 중요하지 않다는 사고방식이었다.

종합하면, 한국인은 지금 경쟁, 승리, 성공에 목매는 살벌한 삶보다 도전을 즐기고 승부의 노예에서 벗어날 여유, 그리고 인간을 중시하는 인간중심의 세계를 염원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자신의 승리보다 약자를 더 생각하고, 정답보다 도전에서 행복을 느끼며, 인간을 사랑하는 주인공을 TV 속에서나마 사랑하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 현실에선 경쟁이 점점 각박해진다. 학생들을 점수 경쟁으로 밀어 넣는 시험도 많아지고 있다. 현실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승리뿐이다. 승자독식 무한경쟁 구조에서 도전의 즐거움 따위는 낭만일 수밖에 없다. 경쟁구조는 약자(패자)의 전락을 당연시하므로 인간중시의 정신도 발붙일 수 없다. 현실이 국민의 염원과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으로 한국인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지 알 수 있다. 그럴수록 시청자들은 TV 속에서나마 이상향을 찾으려 할 것이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하재근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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