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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주의’ 시대의 언론 윤리[최용수의 소통의 조건] KBS PD
최용수 KBS PD | 승인 2008.01.09 07:32

“The Winner Takes It All!” 이른 바 ‘승자독식’이란 말이 유행이다.

‘이명박 특검’관련 기사는 언제부터 언론지면에서 사라지고 있고, 보수언론들은 지난 선거과정에서 불거졌던 각종 비리와 의혹들을 빨리 덮고 가자고 한다. 이에 발맞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각종 정부개혁법안과 선심성 정책을 파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실용주의를 내세우는 이명박 인수위가 민심의 조기안정을 내세우며 강력한 승자의 권한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간헐적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지만, 이들은 별로 아랑곳 하지 않는다. 압도적 표차의 지난 대선 결과에 대한 자신감일 테다.

   
  ▲ 한겨레 2008년 1월9일자 1면.  
 
현직 대통령은 이명박 당선인과 인수위의 일방적인 지난 5년의 통치 평가에 대해 억울한 항변을 쏟아내고 있지만, 여권은 지리멸렬 한 채 새로운 권력의 발빠른 행보를 먼발치서 멀뚱거리며 바라볼 뿐이다. 이미 일부 정부조직과 공무원들의 줄서기는 그 도를 넘어선 지 오래고, 정치권의 철새행보도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권력이 이양되기도 전에 벌어지고 있는 새 권력으로의 이러한 급격한 쏠림현상은 벌써부터 새 권력의 독단적이고 독선적인 정책운용에 대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최장집 교수를 비롯한 많은 정치학자들이 참여정부 실정의 원인 중 하나를 대통령의 독단으로 꼽고 정당정치체제의 복원이 우리사회의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최우선의 과제임을 언급했지만, 현재 곳곳에서 충돌양상을 보이고 있는 이명박 당선인의 리더쉽과 한나라당과 대통합신당의 내부적 갈등양상은 이런 학계의 충고를 그저 우이독경 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당선을 위해 노골적으로 또는 은밀하게 지지를 아끼지 않았던 일부 보수신문들이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공신임을 공공연히 내비치며 언론계의 각종 정책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들 중심의 문화권력 재편을 주장하며 문화계의 주요 자리와 이권에 대한 욕심을 숨김없이 드러내기도 하고, 신문과 방송의 겸영 허용의 밑돌을 깔기 위해 에둘러 KBS2와 MBC 민영화 논리를 사회 의제화한다. 공영방송의 사장자리를 내놓으라고 협박하고, 공영방송 수신료 인상에 발목을 잡으며 장차 그들이 진출하고자 하는 유료방송 시장의 발전방안에 대해 자못 진지한 해법을 내놓기도 한다.

실용주의의 깃발아래 가히 승자독식의 원리가 공고화되고 있는 듯하다.

‘승자독식’은 극단적인 자기파멸의 원리

흔히 ‘승자독식’의 원리를 자연상태의 ‘약육강식’의 원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이는 시장경쟁을 최고의 가치로 배치하는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의 이데올로기적 선전의 결과물일 뿐이다. ‘승자독식’의 원리는 자연계에서 관철되고 있는 ‘약육강식’의 원리야 말로 평등사상과 같은 인위적인 이념체계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일 것이라는 추론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 신자유주의의 ‘승자독식’의 원리는 실상 자연계에서 관철되고 있는 ‘약육강식’의 진실과는 애초부터 거리가 멀다.

자연계의 약육강식은 기본적으로 선순환과 균형을 전제로 한다. 사자가 사냥하는 먹잇감의 양은 오직 자신과 일족의 생존 필요치에 한정되어 있을 뿐이다. 그들의 욕망은 인간의 그것처럼 훨씬 소박하다. 그러나 인간이 자본을 통해 구조화한 욕망의 약육강식 구조는 이러한 균형을 원천적으로 배제한다. 자본의 세계화 과정에서 무수히 명멸해간 인간 종족들과 생명종은 물론이고 당장의 인류의 대재앙을 예고하고 있는 기상재앙조차 자본으로 구조화된 욕망은 그조차 이윤추구의 동기로만 이용될 뿐이다.

인간의 이기적 욕망에서 비롯된 자본은 이제 인간들이 스스로 통제하기조차 힘든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심각한 상황조차 신자유주의의 신봉자들은 때로 아주 국부적인 자연계의 사례를 통해 호도하기도 한다. 즉 ‘승자독식’의 또 다른 예로 인용되는 암사자들을 소유하기 위한 숫사자들의 투쟁사례가 그것이다. 오직 우수한 종자의 생산만이 인간종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되는 이 사례는 그러나, 역설적으로 사자들이 생활공간을 넓혀 안정적으로 사냥공간의 배분하고 더 나아가 종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사실들을 생략하고 있다.

자연이 보여주는 ‘승자독식’ 원리와는 전혀 다르게 진화해 온 인간의 ‘승자독식’의 논리는 결국 자기파괴적인 논리로 귀결될 뿐이다.

승자독식을 넘어서는 실용주의

최근의 생물진화와 관련된 연구들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경쟁원리보다 오히려 협력과 공생의 원리를 통해 생물종의 진화가 가속화되었다는 사례들을 밝혀내고 있다.

개미와 진딧물의 공생, 나무와 지의균류의 공생 등은 서로 다른 생물종이 안정적인 종의 발전을 위해 선택한 공존의 사례라면, 고등생물들 진화시킨 양성 생식은 종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종 내부의 다양성을 확대시킨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어떤 경우의 공존과 공생의 사례라도 관철되고 있는 하나의 원칙이 있다. 그것은 공존과 협력을 위해서 일정한 자기이해의 양보가 그것이다.

이런 면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들고 나왔던 ‘실용주의’는 ‘승자독식’의 논리보다는 훨씬 더 인간적이고 생산적이다. 아울러 실용주의의 이념적 전제는 ‘실제적 유용성’이다. 즉 승자독식의 논리가 대한민국의 현재적 상황을 개선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개악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 실용주의는 과감히 이를 폐기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지난 5년 동안 참여정부의 정책에 대해 냉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그 인과관계와는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부익부 빈익빈과 같은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켜놓은 데 대한 분노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성장 중심의 경제일지라도 적어도 그에 대한 일정한 해결책으로 이해될 수 있는 공약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즉, 국민들은 ‘경제 살리기’라는 슬로건을 극단적인 사회 양극화의 폐해를 막을 수 있는 대안으로 인식한 것이다.

실용주의 슬로건 뒤에서 승자독식을 부추기는 보수신문 기업들(!)

그러나 ‘실용주의’는 결과의 유용성이 입증되었을 때만 그 가치가 인정될 수 있는 이념체계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런 이유로 이명박 식의 실용주의는 단기간에 그 실질적 가치가 입증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다. 과연 사회 양극화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단기적인 ‘실용’ 처방으로 해결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지만, 제한된 조건에서의 국민들이 선택한 결과를 우리는 지켜볼 수밖에 없다.

   
  ▲ 동아일보 2007년 12월19일자 사설.  
 
문제는 언론이다. 적어도 이명박 당선인과 한나라당은 선거를 통해 그들의 실제적 유용성에 대한 국민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노골적으로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지원군으로 나섰던 그리고 일등공신이 된 보수신문들은 이제 누구도 심판하기 힘든 권력이 되어버렸다.

언론의 실용적 가치는 한 사회의 주요권력들을 감시하고 견제함으로써 부당하게 권력이 사회공동체의 이익을 훼손하는 것을 막는 데 있다. 그리고 헌법은 언론이 이러한 실용적 가치를 유지할 수 있도록 그들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의 보수언론들이 그들 스스로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감시와 견제는 커녕 스스로 권력화해버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이는 언론시장을 독점한 보수언론 기업의 필연적 귀결이다.

   
  ▲ 중앙일보 2008년 1월9일자 1면.  
 
랜스 베넷 교수는 그의 저서 <뉴스, 환영(幻影)의 정치>에서 언론사의 사적소유 제도와 독점화 현상은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게 하며 이는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질적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예시하였다. 그는 미국의 언론 시장은 거대 ‘뉴스 도매상’(news whoe-saler)인 언론재벌에 의해 장악당해 있으며 또한 이들이 정치적으로 교묘하게 관리, 통제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앞으로 민주국가들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이들 거대 언론재벌에 대한 대처가 될 것이라고도 하였다.

기업화된 언론에게 사회계약적 성격-권력의 감시와 견제에 대한 보장으로 주어진 언론의 자유와 독립-의 언론 윤리를 요구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실용적이지 않음을 랜스 베넷 교수가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론의 실용적 기능을 상실한 언론기업들에게 주어진 자유와 독립의 권한을 박탈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이조차 난망한 과제다. 지금 보수신문들은 ‘승자독식’의 룰에 따라 방송산업의 진출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미국식의 언론재벌을 모델로 정치권력과 대담한 거래도 마다하지 않는 모양새다.

견제와 감시로부터 벗어난 이 거대 권력에 맞서 누가 어떻게 싸울 수 있을 것인가?
많지 않은 해법 중 가장 실용적인 대안은 공영적인 방송체제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그 해법의 상세한 스펙은 다음 칼럼에서 제시하고자 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만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대학시절의 고민을 놓치 못한 채 공영방송에 입사했지만, 공영방송에서 조차 이 고민을 다 담지 못하고 이제 두 딸아이의 미래를 위한 나름의 헌신과 실천을 고민하는 생태주의자 ‘고니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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