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벌써 네 번째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 소환됐다. 압수수색은 18회, 조양호 회장을 비롯한 '땅콩 회항'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물벼락 갑질'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운전기사 폭행'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까지 구속영장만 다섯 번 발부되었다. 그런데, 구속영장은 기각되었고, 조양호 회장은 건재하다. 심지어 땅콩 회항으로 잠시 배제된 조현아 부사장은 3년 4개월 만에 계열사 사장으로 경영에 복귀했다.

<SBS 스페셜- CEO 사표 쓰다>는 총수 중심의 경영, 각종 갑질과 인성 논란이 반복되는 '오너 중심'의 우리 기업 문화에 대해 화두를 내건다. 이런 오너일가 중심의 황제경영에 대해 사회적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 법적 시도는 이루어지지만 결과적으로는 여전히 확고한 경영 체제, 책임지지 않는 경영에 대해 <SBS 스페셜>은 다른 나라의 사례를 들어 문제를 제기한다.

쫓겨나는 미국의 CEO들

SBS 스페셜 ‘CEO 사표 쓰다’ 편

이제는 신화가 된 스티브 잡스. 하지만 우리는 그 신화의 여정에 애플에서 쫓겨난 잡스의 이력을 기억한다. 과연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아이폰의 신화는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황제 경영은 그저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그로 인한 경제 전반의 적폐, 나아가 경제의 적체, 바로 그 지점을 다큐는 꼬집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잠시 화제가 되었던 우버 택시, 이 화제의 우버 택시 사주는 이제 '실업자'다. 108개국에 우버 택시 앱을 개설하여 80조 원의 이익을 남겼던 스타트업 기업의 신화, 그는 지난 2017년 사퇴했다.

포춘지의 기자 아담 라신스키가 취재한, 우버 택시 창업자 트래비스 칼라닉은 강렬한 개성과 전투적인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다. 우버 택시로 전 세계적 슈퍼 CEO로 우뚝 섰지만, 그 스스로 '실패의 선구자'라 칭할 만큼 4번의 사업실패 끝에 우버 택시를 전 세계적 기업으로 이끌었다.

SBS 스페셜 ‘CEO 사표 쓰다’ 편

그렇게 실패의 아이콘이던 그는 우버 택시의 성공으로 인기와 유명세를 얻었다. 하지만 그의 전투적이고 강렬한 리더십의 그림자는 그를 CEO 자리에 머무를 수 없도록 하는 원인이 되었다. CEO로서는 부적절한 사내 메일의 여성 차별적 발언들, 여성을 배려하지 않는 사내 문화 등은 우버 엔지니어였던 수전 파울러로 하여금 미투 운동의 촉발자가 되도록 했다. 또한 무인 차량 개발을 위해 타사의 사내 비밀을 훔쳤다는 등 불법적이며 비도적적인 경영 방식에 대한 비난은 우버 앱 삭제 운동으로 이어지며 '악몽 같은 CEO'라는 평판의 주인공이 되었다.

탁월한 CEO와 비행을 저지르는 청년이라는 이율배반적인 평가를 받던 트래비스 칼라닉에 대해 이사회는 사임을 결정했다. 그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많은 문제들이 발생했고, 그 문제로 인해 그가 더 이상 집무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사회가 그를 해고하기로 결정을 내리게 된 건 그의 비행이 원인이 아니었어요. 그를 둘러싼 많은 논란, 그의 비행과 태도가 그로 하여금 직무에 집중하고 잘 해내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하루를 다른 다양한 분쟁을 해결하는 데 보낸다면, 어떻게 CEO로서 해야 할 업무를 볼 수 있겠어요. 그것 때문에 그가 해고된 거라고 생각해요” -아담 라신스키, 『우버 인사이드』

CEO도 자르는 미국의 이사회

SBS 스페셜 ‘CEO 사표 쓰다’ 편

여기서 <SBS 스페셜>이 주목하는 건 바로 CEO도 해고할 있는 미국의 '이사회' 제도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른바 사외이사제도가 있다. 하지만, 종종 사외이사들이 과도한 수당을 챙겼다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듯, 우리의 사외이사제도는 유명무실하다. 사외이사의 비중이 크지도 않고 기업 임원들로 채워진 이사진에 비해 수도 적을 뿐만 아니라, 오너 일가와 긴밀하게 연결된 사람들로 채워져 독립성 보장은커녕 오너 일가 권익 보장에 힘을 보태기가 십상이다.

이에 반해 미국의 이사회는 권력의 중심이다. 이 이사회에는 외부 인사들로 이루어진 독립 이사들이 있다. 우버 택시에서 트래비스에게 사퇴 결정을 내린 이사진 중 에릭 홀더 전 법무부 장관 등의 독립 이사진의 역할이 컸다.

이들의 입장은 단 하나다. '남의 자본'을 끌어들여 사업을 하는데,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힌다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기업 문화에서 경영은 스포츠 팀과 같다. CEO는 황제가 아니다. 스포츠 팀의 감독과 같은 역할일 뿐이다. 잘나갈 때 감독은 칭송받지만 팀이 패배하면 그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듯이, 경영상의 문제가 생길 경우 언제든 CEO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파파존스 피자의 존 슈내터, 직접 광고에 출연하는 등 입지전적으로 이 피자 브랜드를 성공시켜낸 인물. 하지만 그는 전화 회의 중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브랜드 가치를 훼손시켜 주가를 폭락시켰다는 이유로 사임됐다.

한 개인의 독단이어서는 안 되는 경영

이렇게 미국은 CEO의 독단적 경영을 제어하기 위해 이사회의 기능이 활성화되어 있다. 같은 이사회지만 독일의 경우는 성격이 다르다. 독일 최대의 드럭스토어 로스만. 아버지에 이어 아들로 이어진 가족 기업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공동경영을 한다. 하지만 경영 체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 유럽의 3500여개 100억 달러의 수익을 유지하기 위해 비가족 CEO 두 명과 함께 공동경영 체제를 갖춘다. 거기에 다시 외부 고문단이 더해지고, 이사회에는 노동자들이 참여하여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킬 수 있다. 또 다른 독일 기업 지멘스 역시 감독위원회를 두고 거기에 전문경영인을 참여시킨다.

“알리바바는 나의 것이 아니지만 나는 영원히 알리바바에 속할 것입니다.” - 마윈

SBS 스페셜 ‘CEO 사표 쓰다’ 편

그런가 하면 중국의 대표적 기업이자 세계적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지난 2018년 9월 10일 알리바바 창설 19주년이 되던 날 은퇴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 시장 점유율 1위, 시가 총액 4000억 달러의 회사를 물려받은 이는 그의 아들도 손자도 아닌, 11년 전 알리바바에 합류해 능력을 인정받은 조력자 장융이었다.

1999년 항저우의 작은 아파트에서 동료들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던 마윈 회장. 그는 회사가 본 궤도에 들어서기 시작한 2005년부터 승계를 준비해 왔다. 승계에 앞서 그는 한 개인의 역량이 지배하는 조직의 위험성을 간파하고 집단경영 체제인 '파트너십' 제도를 만들었다. 6명의 대표가 1인 1표를 행사하는 이 집단경영 체제는 다음 세대의 리더를 키워내며, 동시에 조직의 신선함을 유지시킨다. 이를 위해 일정 나이가 되면 파트너에서 물러나도록 제도화하여, 현재는 70년 이후 출생자들로 채워져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파트너십 참여를 적극 독려한다.

미국, 독일, 중국의 세계적 기업이 보여주는 경영의 유연성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마윈이 말하듯, 한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는 경영의 위험성이 가장 크다. 알리바바의 파트너십 체제가 변화하는 트렌드에 발맞추어 가고자 계속 젊은 세대로 물갈이를 하는 경우에서 알 수 있듯, 세계적 기업들은 변화하는 경제 환경에 맞추어 조직적 변화를 꾀한다. 뿐만 아니라, 우버 택시에서 보여지듯, 기업을 개인이 만들었다 해도 주식회사의 형태로 자본이 유입된 경우 더 이상 개인에 의존한 기업이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세계 유수의 국가들, 그곳의 세계적 기업들은 이렇게 변화하는 경제 환경에 맞추어 경영방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과연 이런 세계적 기업의 흐름에서 황제경영 방식을 고집하며 오너 일가와 관련된 부도덕한 잡음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우리의 기업들은 경쟁력이 있을까? 자본은 변화요, 흐름이다. 과연 그 흐름에서 우리의 기업들은 어디쯤 자리하고 있는 것일까. <SBS 스페셜>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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