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도 히나로 불렸던 이양화는 불꽃 속으로 사라졌다. 스스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던지고 잔학무도한 일본군의 행태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그녀는 이양화라는 이름으로 폭탄을 터트리고, 쿠도 히나라는 이름으로 모든 책임을 지고 불꽃으로 사라졌다.

죽음을 산 의병들;
행랑아범과 함안댁 그리고 스스로 죽음을 산 그들의 희생이 의병들을 살렸다

서글프다. 처음부터 새드 엔딩을 예고할 수밖에 없었던 서글픈 시절의 이야기였다는 점에서 예정된 수순이었을 것이다. 독립을 앞둔 시점이라면 다양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기 직전의 대한제국은 풍전등화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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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에게 방을 모두 내줘야 했던 쿠도 히나의 호텔은 전성기가 마감되었다. 가장 화려했던 그곳은 이제 침략국 군인들이 기거하는 곳이 되었다. 일장기와 욱일기가 함께 내걸린 그 호텔은 이미 그 깃발이 걸리는 순간 무덤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찾았던 어머니의 죽음. 그 죽음과 마주하는 순간 쿠도 히나는 희망이 사라졌다. 살아야 할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많은 이들이 하는 의병이나 해볼까 라며 가볍게 이야기를 했지만, 그녀는 이미 의병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삶이었다.

대한제국 군인들을 강제 해산하던 날 일본군들은 조선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현장에 있었던 쿠도 히나에게 망설임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일식이 춘식이 형제를 통해 얻은 폭탄을 자신의 모든 것인 호텔에 설치한 그녀는 자신 밑에서 일했던 이들을 모두 피신 시켰다.

잔인한 학살을 무용담으로 삼아 술에 취해 있던 일본군들. 그리고 그곳을 찾은 애신은 의기투합할 수밖에 없었다. 목적이 같은 그들은 하나가 되었다. 이런 일들이 익숙하지 않은 일식과 춘식이 형제를 먼저 대피 시키고 폭약에 불을 붙인 애신. 그렇게 애신과 양화는 폭발하는 호텔에서 뛰기 시작했다.

애신의 총소리에 놀란 것은 일본군만은 아니었다. 미국으로 떠났던 유진과 일본에서 죽었다고 알려졌던 동매가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다. 애신을 찾기 위해 길거리에 널린 사체들에서 확인하다 두 사람은 재회했다. 그리고 한 발의 총성. 두 사람은 마치 애신의 목소리라도 들은 듯 그렇게 글로리 호텔로 향했다.

그들은 글로리를 뛰쳐나오는 두 사람과 뒤이어 거대한 폭발을 목도했다. 그리고 흩어진 잔해들 틈에서 양화와 애신을 찾은 둘은 서로 그들을 피신 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애신은 겨우 살아남았지만 양화는 그렇지 못했다. 큰 상처를 입은 양화는 동매에게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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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양화를 업고 바닷가를 지나 양화 어머니가 묻힌 곳으로 가던 그 길은 그들에게는 마지막 길이었다. 서글프고 아픈 고백을 마친 양화는 자신이 먼저 갈 테니 천천히 오라는 말만 남기고 동매의 등에서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다. 미묘한 감정들 속에 있었던 동매와 양화는 그렇게 죽음 앞에서 서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양화를 어머니 곁에 모시고 다시 돌아온 동매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조선인들을 약탈하는 낭인들을 모두 베어버린 동매에게 더 살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 일본에서 올 낭인들과 마주할 시간은 일주일이다. 그 시간을 1년처럼 살아보겠다는 동매는 자신의 방식으로 의병이 되었다.

다른 이들처럼 총을 들지는 않았지만 희성은 카메라를 들었다. 일본군이 잔인하게 조선인들을 학살하는 장면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 것 그게 희성이 할 수 있는 의병 활동이었다. 총에 맞아 상처를 입고 위협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음에도 그는 친일파일 수밖에 없는 한성 최고 부잣집 아들이라는 이유가 방패가 되었다.

애신과 희성의 양복을 해주던 이도,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던 간호사도 의병이 되었다. 일본군의 악랄한 살육을 더는 참지 못한 그들은 그렇게 스스로 의병이 되었다. 왕을 위해서도 위정자들을 위한 행위도 아니다. 자신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들은 알고 있었다.

위기 상황에서 언제나 백성들은 자신의 목숨을 던졌다. 그렇게 5천 년의 역사는 만들어졌다. 작고 힘없는 나라가 어느 강대국의 속국으로 남지 않았던 이유는 이런 의병들의 희생 덕이었다. 나라가 위험해지면 모두가 의병이 되어 맞서 싸웠던 그들로 인해 현재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의병들이 있는 반면 나라를 팔기 위해 안달이 난 자들도 있다. 탐욕을 위해 의병들을 팔고, 이를 받아 자신의 출세를 위해 처제인 애신을 팔아넘기는 자도 존재한다.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그 악랄한 자들은 친일을 통해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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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에 의해 친일파들은 청산을 면하고 자신들의 권세를 이어갈 수 있었다. 위정자들의 탐욕은 그렇게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되었고, 그 청산 못한 역사는 현재까지도 친일을 당연하게 여기는 자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처참함으로 다가올 정도다. 친일파 후손들이 정치, 경제, 언론 등 사회 지도층의 지위를 여전히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픈 일이다. 이명박근혜 시절 친일을 당연하게 여기며 당당하게 나섰던 위정자들을 우린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덕문에게 건네진 의병 명단은 그렇게 일본군에 넘어갔다. 의병을 팔아 이완익처럼 되고 싶었던 이덕문은 그렇게 처제를 죽이겠다고 앞세워 의병들이 있을 곳을 찾아 나섰다. 장 포수가 있던 곳이 의병들의 본거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이덕문으로 인해 급하게 본거지를 옮기게 된 의병들.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왔다. 대를 위해 소가 희생을 자처해야만 하는 순간 의롭게 죽음 앞에선 이들이 있었다. 말 못한다고 알려졌던 소리꾼 할아버지는 일본군들 앞에서 가짜 정보를 흘렸다. 그리고 이를 진짜처럼 만들기 위해 이덕문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행랑아범과 함안댁이 앞장서고 죽음 앞에 담담한 의병들은 가마를 짊어졌다.

의병들이 군인들을 피해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그들은 스스로 미끼가 되었다. 그 마지막 길을 걸으며 행랑아범은 작지만 평생 소원 하나를 이야기한다. 함안댁의 손이라도 한 번 잡아보고 싶다며 이야기하는 그에게 손을 내어주는 순간 총성은 울렸다.

미처 잡아보지도 못한 손. 그 손을 잡아보려 내민 손은 끝내 함안댁을 잡아보지도 못하고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죽음을 스스로 맞이한 그들의 희생으로 자칫 전멸될 수도 있었던 의병을 구했다. 자신의 목숨을 내던진 그들의 마지막은 당당했다. 그 어떤 두려움도 없이 웃으며 마지막을 맞이한 그들이 있어 우리의 현재가 가능해졌다.

가장 아픈 사랑을 했던 행랑아범과 함안댁은 그렇게 스스로 내던졌다. 핏덩이였던 애신을 키웠고, 스스로 의병의 길을 선택한 애신을 돕고 보호했던 그들은 그렇게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은 없었다. 스스로 선택한 그 길을 묵묵히 걸었고, 마지막 순간 스스로 목숨을 내던진 그들의 삶이 바로 의병들의 삶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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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자신을 쿠도 히나로 팔아버린 양화의 삶. 그 지독하고 아팠던 삶도 죽음을 사면서 의미를 더했다. 죽음을 살아간 그들의 최후는 아프지만 큰 울림으로 남겨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친일파들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몇몇 위정자들의 것도 아니다.

나라를 팔기에 여념이 없었던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떵떵거리고 살아가는 세상은 비정상이다. 청산되지 못한 역사가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는지 우리는 경험을 통해 처절하게 느끼고 있다. 여전히 친일파 후손들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현실이 정상일 수는 없으니 말이다.

<미스터 션샤인>은 이제 한 회가 남았다. 24회 이야기 속 초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역사 왜곡이 심하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던 자들은 과연 이 드라마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알기는 할까? 역사 교과서에 남겨진 이들이 아닌 이름도 남기지 못한 수많은 의병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장엄함으로 죽음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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