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도우리 객원기자] 지난 19일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감독이 성폭력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미투 운동’으로 고발된 유명인사에게 첫 실형 선고가 내려진 것이다. 문화예술계에서 개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넘어 제도적·정책적으로 뒷받침된 성평등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8일 국립고궁박물관 별관 강당에서 한국여성재단이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후원한 제1차 ‘성평등문화정책포럼’이 열렸다. 이날 포럼은 지난 5월 16일 문체부가 발표한 ‘문화비전 2030, 사람이 있는 문화’의 9대 과제 중 하나인 ‘성평등 문화의 실현’의 첫 단계로, 여성문화예술인들의 진단을 우선적으로 듣기 위해 마련됐다.

지난 28일 국립고궁박물관 별관 강당에서 한국여성재단이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후원한 제1차 ‘성평등문화정책포럼’이 열렸다.

기조 발제로 토론을 연 이혜경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이사장은 기존 예술복지법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강조했다. 그는 “최근에 SNS를 통해 등단하고 있는 이들도 복지 수혜 대상으로 고려해야 한다. 또 적어도 1년에 몇 편 이상이라는 식으로 작품 활동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보다 가장 소외되고 열악한 상황에 있는 문화예술인들이 우선적 복지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라며 “무엇보다 출산, 육아 기간도 경력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이 이사장은 출산과 육아로 창작활동이 끊긴 여성 예술인을 지원하는 ‘여성문화예술인 금고’ 및 저금리 대출 제도, 예술인 공동주택 사업 등의 정책 대안을 제안했다.

김혜인 한국관광문화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문화예술계 고용 성차별에 대한 전체 통계가 없다는 현실을 지적하며 여러 자료를 통해 여성 문화예술인들이 처한 구체적인 노동 환경을 추정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문화예술계 현실에 대해 “노동시장에 진출하는 여성 인력은 매우 많지만 그들의 고용의 질은 매우 낮고, 수직적 성별 직종 분리 현상에 처해 있다. 여성의 인력을 권력을 가질 수 있거나 권력이 낮거나 배제되는 상황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이러한 성별 위계에 대해 “(성별 간)자리다툼 차원이 아니라 성평등과 관련된 이슈 결정에 굉장한 파급력을 주는 문제”라며 “최근 방송통신위원회 양성평등 위반 민원 및 신고는 지속적으로 증가했지만, 위반 처분은 오히려 감소했다. 이는 심의위원회의 처분에 징계위원회 조직의 위계질서가 반영되는 탓”이라고 분석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우리나라 대부분 문화예술인은 1인 사업자, 프리랜서다. 보육시설 등 정기적인 복지시설을 누리는 것이 사회보장 구조상 거의 불가능한 상태”라며 “문화예술계에 대해 특수한 직군으로서 특수한 복지가 요청된다”고 강조했다.

지난 28일 국립고궁박물관 별관 강당에서 한국여성재단이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후원한 제1차 ‘성평등문화정책포럼’이 열렸다.

EBS <까칠남녀>를 연출한 김민지 EBS 한국교육방송공사 PD는 방송에서 성차별적 콘텐츠가 반복 재생산되는 이유와 그 해결 방안에 대해 짚었다. 김 PD는 방송 프로그램 속 성차별에 대해 “<까칠남녀>의 메인 MC였던 박미선 씨가 ‘내가 다리라도 부러지면 이 자리를 넘보는 여성 MC가 줄을 설 것’이라고 말할 정도”라며 남성의 절반도 미치지 못하는 여성 방송 출연자의 성비 불균형 문제를 지적했다. 또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여아 출연자 2명, 남아 출연자 1명을 등장시켜 여아 출연자들이 남아 출연자를 두고 애교를 무기로 경쟁하는 구도가 자주 등장한다며 “이처럼 애교가 여성이 가진 특성이나 무기로 인지하게 만드는 등 잘못된 여성성·남성성을 강조하는 콘텐츠가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또 김 PD는 성평등 콘텐츠 제작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 가이드라인 및 방송사 내부의 남성 중심적 구조 외에도 “’여자는 예능에서 물에 빠뜨릴 수 없다’, ‘뭔가를 시켜도 까탈스럽게 군다’라는 변명 등 섭외 시의 게이트 키핑”을 꼽았다. 또 “젠더 문제는 여성의 날, 가정의 날 특집 정도로만 내보낼 뿐 항시적으로 이슈파이팅을 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김 PD는 평등한 방송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질문하며 “남녀 성차별을 넘어 수많은 약자를 포함한 평등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레리나 활동 이력이 있는 박성혜 무용평론가는 성폭력 신고 비율이 희박한 무용계의 폐쇄적 조직문화들을 고발했다. 박 평론가는 무용계에서 오히려 남자가 적다는 이유로 남성을 더 존중하는 문화가 있다며 “사고가 생기면 남성부터 보호해줘야 한다는 문화나 인식 때문에 역으로 피해자 여자가 2차 가해에 노출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말했다.

또 박 평론가는 무용계 내 다이어트의 강제화·조직화 문화도 지적하며 “공공기관조차 버젓이 체중계를 (연습실) 곳곳에 놓아둔다. 이는 여성 무용인들을 날카롭고 마르며 신경질적인, 공주병 걸린 여성이라는 이미지와 결부 짓는 것으로도 이어진다”라고 비판했다.

송경화 낭만유랑단 작가는 <나를 죽이는 연극>이라는 제목으로 고등부 연극반부터 육아를 병행했던 극단 대표 시절까지를 회상하는 자전적 형식의 산문을 낭독함으로써 연극계 내 성차별적 구조를 생생히 드러냈다.

송 작가는 “사실 제일 나쁜 것은 나였다. 나는 위계폭력에 순응하고, 체제에 적응했다”고 고백하며 “연극이 연극만으로는 전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타인이 없으면, 나도 없다. 당신이 없으면, 좋은 연극도 쓸모 없다. 당신이 좋은 연극을 가능하게 한다”고 호소했다.

임솔아 시인은 ‘문단 내 성폭력’ 고발이 SNS 폭로로 이뤄질 수밖에 없었던 요인으로 문단 내 폐쇄적 구조와 더불어 “문학을 도덕적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라는 주장에 대해 집중 비판했다.

임 시인은 “용산 참사 때에도, 세월호 참사 때에도, 촛불 집회 때에도 많은 작가들이 빠르게 결속했고 정치적으로 올바르려 했다. 그러나 그때에는 들려오지 않았던 ‘정치적 올바름이 문학을 질식시키고 있다’는 주장이 성폭력 고발 앞에서 유독 또렷이 들려오는 까닭은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이화정 씨네21 기자는 공고한 영화계 남성 카르텔로 인해 여성영화인이 경력을 쌓기 힘든 영화 현장의 현실을 전했다. 이 기자는 “영화 스텝은 경력이 있어야 채용되는데, 여성에게는 ‘큰 현장 컨트롤할 수 없다’, ‘너무 예민하다’, ‘너무 꼼꼼하다’라는 말로 감독이나 스텝의 장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들을 한다”고 전했다.

이 기자는 또한 씨네21의 영화계 내 성폭력 특집기사에 대해 ‘덜 알려진 가해자들에게만 비판 낙인을 찍는다’는 지적들을 언급하며 “하지만 유명한 사람에 대한 폭로로 관심을 끄는 방식의 보도 형태를 성찰해야 한다”며 언론의 ‘미투 고발’ 보도 행태에 대해 지적했다.

포럼의 2부인 오후 일정에서는 박정희 신나는마을공동체부엌 대표 등 지역 현장 활동가 7명이 공동 육아, 책방협동조합, 공동 부엌, 지역 페미니즘 독립잡지 및 라디오 등 다양한 성평등 문화 프로젝트의 성과 및 애로사항들을 공유했다.

한편 질의응답 시간에는 종교계 역시 성차별 문제가 고질적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 정책 대상으로 논의된 적이 없었다는 공통된 지적이 있었다. 토론 패널들 역시 이에 통감하며 종교계 성차별 및 성폭력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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