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정부의 비공개 예산정보를 무단으로 열람·유출했다는 의혹에 대해 검찰이 심 의원의 사무실을 압수수색 하는 등 수사에 착수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추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을 지낸 박경신 고려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수사의 타당성을 다시 한 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번 논란은 심재철 의원이 비공개 예산정보를 취득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시작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7일 검찰에 고발장을 내고 심 의원의 보좌진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자료를 유출해 정보통신망법 및 전자정부법 등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수사를 요청했다. 대통령 비서실, 국무총리실, 대법원, 법무부 등 30여 개 정부기관에 대한 행정정보가 유출됐다며 자료 반환까지 요청한 상태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 (연합뉴스)

반면 심재철 의원측은 불법적으로 정보를 취득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심 의원은 "업무망으로 정당하게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받아 접속했다"며 "백스페이스 키를 한 번 눌렀더니 해당 자료가 떠서 다운 받은 것인데 기재부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작동해 자료에 접근했다고 한다"고 반발했다. 심 의원은 "세금을 제대로 쓰는지 감시해야 할 책무가 있어서 예산 집행 현황을 열려 있는 국회 업무망으로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고발 4일 만인 지난 21일 심재철 의원실을 압수수색했다. 이에 자유한국당은 연일 논평을 내며 "무리한 압수수색"이라며 "야당 탄압을 중단하라"고 반발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심재철 의원은 위법하게 취득한 자료 일체를 반환하고, 피의자로서 성실히 수사절차에 협조하라"고 맞서고 있다.

이와 관련 박경신 교수는 페이스북에 <심재철과 노회찬, 한겨레 최성진 기자, 그리고 정보인권으로서의 국민의 알권리>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하고, "수사의 타당성을 검토해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박경신 교수는 "비밀정보가 정보관리자들의 실수나 묵인 하에 유출됐고 누군가 이를 우연히 취득하는 것은 범죄인가? 나아가 여기에 공익적 고발을 할만한 내용이 있다면 이를 공개하는 행위는 범죄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후,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 노회찬 의원의 '삼성 X파일' 사건에서 뼈저리게 고민한 바 있고, 바로 사법농단의 주범 양승태 대법원이 2013년에 최종적으로 당선무효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세차게 비판한 바 있다"고 전했다.

박경신 교수는 "이와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며 "한겨레 최성진 기자가 정수장학회 이사장과의 전화인터뷰를 마쳤는데 이사장이 실수로 전화기를 끊지 않았고, 공교롭게 당시 MBC 간부들이 들어와서 MBC 노조탄압 전략을 모의하던 대화가 녹음됐다. 이 역시 통신비밀보호법 무죄판결은 받지 못하고 선고유예로 마무리 됐지만 역시 우리는 비판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이어 "비판지점은 허락 없는 엿듣기가 과연 통비법 위반인가였지만 이 역시 엿듣기의 공익적 목적이 중요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박경신 교수는 "그렇다면 심재철 의원 역시 우연히 별다른 위법행위 없이 정보를 취득했고 그 목적은 예산남용실태의 파악이었다"며 "이 사건에는 통비법과는 다른 법이 적용될 것이지만 비밀·프라이버시 보호에 있어 가장 엄중한 법이 통비법인 만큼 다른 법이 적용되더라도 죄가 없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보수적인 당이든 인기가 없는 당이든 국회의원이 행정기관의 예산남용을 감시하는 것은 공익적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경신 교수는 "물론 통비법은 통신을 하는 자들 즉 정보를 보관 유통하는 자들의 법익을 보호하려는 것이고 정보의 내용에 관련된 자 즉 '정보주체'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리의 적용은 별도의 문제"라면서 "그러나 그렇다고 예산집행 정보에 대해 개인정보보호법을 적용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국가의 예산을 공무원이 공무로 집행하고 있는데 이를 해당 공무원들의 개인정보라고 보호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경신 교수는 "또 기재부에서 '국가기밀'을 운운했지만 미안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일반적인 국가비밀보호법이라는 것이 없다"며 "공무원들의 보안의무만을 규정한 대통령령인 보안규정이 있을 뿐이며 국정원이 오랫동안 이를 형벌을 포함하는 법률로 만들려고 했지만 국민의 알 권리 및 표현의 자유에 근거한 반대에 부딪혀 번번히 실패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보안법, 군사기밀보호법 등은 모두 국가 안위나 군사에 심대한 영향을 줄만한 정보로 적용이 한정된다"며 "국가공무원법 60조는 신분범죄인데 심재철 의원실 보좌진들이 위 정보를 '직무 상' 즉 직책에 따라 접근권한을 갖게 돼 취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역시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박경신 교수는 "법원이 죄목이 불분명한데도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라며 "특히 법원이 최근 대법원 연구관의 연구보고서 유출에 대한 압수수색에 대해서는 '기밀이 심대하지 않다'며 영장을 기각해놓고 이 사건은 이렇게 쉽게 발부한 것은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유한국당이 물론 인권보호에 입각한 압수수색 영장 발부를 요구해왔던 전력은 없지만 '야당탄압'이라고 주장할 만한 빌미를 준 것은 맞다"고 비판했다.

박경신 교수는 "심지어 미국에서는 애론 슈와즈라는 정보인권활동가가 논문데이터베이스가 유료로만 공급돼 사람들의 지식접근권을 제한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서버실에 침입해 논문데이터베이스를 대량 다운로드 받다가 기소됐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인터넷 명예의 전당에 헌정될 정도로 상찬되고 있다"며 "모두들 데이터의 해방성을 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끝으로 박경신 교수는 "새 정부 하의 검찰도 정부의 정보를 호위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정보인권 보장을 위해서는 이번 수사의 타당성을 다시 한 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페이스북 글. (사진=박 교수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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