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9월 평양공동선언문에 합의한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밤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열린 환영행사에 참석해 15만 평양시민을 향해 육성 연설을 했다. 애초 2분가량의 짧은 인사를 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문 대통령은 7분가량 평양공동선언문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연설을 이어갔다. 문 대통령의 연설 가운데 특히 감동적이었던 부분은 통일에 대한 간절한 의지를 담은 부분이었다.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중략)우리는 오천 년을 함께 살고 칠십 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칠십 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고자 제안합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일 밤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손을 잡고 있다.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1세기 다문화 시대에 민족이라는 단어는 다소 낡은 의미로, 심하면 무의미하게 다가올지 모른다. 그러나 일제강점과 분단으로 이어진 특수한 역사를 가진 우리들에게는 여전히 큰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또 민족이라는 말이다. 그것은 더 이상 낭만이 아니라, 평화와 번영이라는 현실이기에 올해 들어 숨 가쁘게 이어지고 있는 남북관계가 갖는 의미와 희망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지난 4.27 판문점선언 이후 통일이 가져다 줄 경제적 이익에 대해서 넘치도록 보고가 나왔다. 그러나 발표되지 않은 숨겨진 메시지도 많다. 이번 평양 남북정상회담이 남북관계 평화 진전을 위한 목적도 있지만 교착상태의 북미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징검다리를 놓기 위한 것이기도 했기 때문에, 아직 우리가 모르는 희소식이 더 있을 것이다.

분명 우려는 기우였다.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지난 4.27 판문점선언으로 활짝 열린 남북관계에 혹시라도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인 것이다. 그만큼 간절하다는 의미이다. 그런 시민들의 간절한 마음은 이심전심으로 이어져, 남북정상이 만날 때마다 적어도 한 끼는 평양냉면집을 찾는 게 이제 공식이 되었다. 다만 그것으로 옥류관 냉면에 대한 욕망을 대신할 수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

죽기 전에 옥류관 냉면은 먹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옥류관 냉면은 최종 목표가 아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럽을 가고자 하는 사람, 또 평양에서 냉면을 먹고 내처 청진으로 가서 평양냉면과 쌍벽을 이룬다는 또 다른 냉면을 먹는 식으로 북한을 일주하고픈 사람도 있다.

CNN은 이런 어쩌면 이해 못할 냉면에 대한 뜨거운 열기를 두고 ‘국수외교’라고 부르기도 했다. 19일 남북 정상이 옥류관에서 냉면 오찬을 할 때도 리설주 여사는 “판문점 회담 덕분에 외국손님들이 다 냉면 냉면 소리를 하면서 냉면을 달라고 한다”면서 “상품광고를 한다 한들 이보다 더하겠습니까”라며 냉면에 대한 깊은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평양 옥류관에서 열린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오찬에서 평양냉면으로 식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 냉면은 평양냉면도 아니고 함흥냉면도 아닌, ‘통일냉면’이라고 불러야 옳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때마다 시중의 냉면이 동이 나고, 먹지 못한 사람은 괜히 서운해지기까지 하니 말이다. 오죽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한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라고 한 연설을 “우리는 (평양냉면을) 함께 먹어야 합니다”로 패러디까지 나오겠는가.

이번 9월 평양공동선언문에는 올해 내에 남북한을 잇는 철도와 도로 착공식을 열 것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래도 평양까지 이어지기는 금세 될 일은 아니지만 이런 속도로 남북관계가 개선이 된다면 평양 옥류관을 찾을 날 정도는 ‘죽기 전 소원’은 아닌 것이 된다. 성미 급한 사람은 벌써 평양 여비를 모아야겠다고 성화다. 이제 냉면은 단지 하나의 음식이 아닌 통일의 상징이 됐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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