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국회 정무위원회 여야 간사가 은산분리 완화 대상을 시행령에 맡기는 내용을 담은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제정안'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단체들은 재벌의 은행업 진출의 길을 열어주는 꼼수라고 반발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국회를 찾아 기자회견을 열고,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장 앞에서 피케팅을 벌였다.

당초 민주당은 재벌은행 금지를 위해 자산 10조 원 이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은산분리 완화 대상에서 배제하려 했다. 그러면서도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등을 고려해 정보통신업 자산 비중이 큰 회사는 예외로 두는 방안에 매달렸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특혜'라며 모든 산업자본에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17일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여야는 인터넷은행 특례법 은산분리 특례 대상을 시행령에 맡기도록 했다. 여야가 주고받기 협상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은산분리 완화 특례 대상 주주 자격을 볼 때 살필 사안으로 '경제력 집중에 대한 영향', '정보통신업 영위 회사의 자산 비중'을 살피라는 조항을 넣었다. 즉 민주당은 당장 카카오, 케이뱅크에 특혜를 줄 수 있고, 자유한국당은 향후 정권을 잡으면 법 개정 없이 재벌에게 인터넷전문은행의 길을 열어줄 수 있게 된 셈이다.

▲17일 오전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제정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추혜선 의원실 제공)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제정안 합의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에서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지금 여야가 합의한 내용을 보면 결국 자유한국당이 주장하는 '모든 산업자본의 참여를 보장'하는 안에 단서조항을 넣은 법안에 불과하고, 8월 당시 안보다 더 후퇴한 안으로 대통령 공약을 명백히 파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상인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은 "이 법안이 여야 합의대로 통과되면 사실상 재벌의 은행업 진출의 길을 열어준다"며 "경제력 집중이 지금도 심각한데 재벌이 은행업까지 하면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새로운 양상이 벌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대한민국을 재벌공화국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재벌 왕국이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상인 위원장은 "정경유착이 더욱 단단해지고 은행업을 이용해 국내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뿐 아니라 비자금을 조성하고 해외로 보내고, 정경유착을 통해서 비자금을 조달하는 길이 열린다"며 "중남미와 같은 길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인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이고 그 정신을 구현할 역사적 의무가 있다"며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역사적 의무를 방기하고 있고, 촛불정신을 오도, 훼손, 기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백주선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정부, 지지난 정부에서 규제완화가 모든 경제성장과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마법지팡이인냥 소동을 벌일 때, 반대했던 지금 집권여당이 오히려 마치 모든 걸 잊은 듯이 규제완화를 내세우고 있다"며 "그 중에서도 가장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은행에 대해서까지 검증과 설득 과정 없이 밀어붙이기식으로 법안을 개정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백주선 위원장은 "은행이 국민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 국민 재산권에 대한 영향력은 심대해서, 은산분리를 완화했을 때 미칠 악영향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라며 "그러나 정부여당은 논의하거나 귀 기울이는 자세도 없었다"고 말했다. 백 위원장은 "심각한 상황이라고 볼 수밖에 없고, 끝까지 이와 같은 잘못된 행동을 한 집권여당에 책임을 묻겠다"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김경률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장은 "더불어민주당은 은산분리를 강화하겠다는 당의 강령을 위반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을 위반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재벌개혁, 파탄된 민생을 돌보라는 촛불시민의 목소리를 저버렸다"며 "우리는 기억하겠다"고 경고했다.

허권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전두환 독재정권도 은산분리 규제완화에 반대하면서 재벌의, 산업자본의 소유를 8%로 했다. 노태우 정권도 소유한도를 4%로 줄였다. 이명박 정권이 9%로 늘리고, 박근혜 정권이 4%로 다시 줄였다"고 전했다. 허 위원장은 "촛불의 힘으로 탄생된 문재인 정권, 민주정부라고 하는 문재인 정권이 34%로 소유한도를 늘렸다"며 "이것이 민주당이고 민주정부이고 촛불정부냐.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비판했다.

▲17일 오후 민주당 의원총회장 앞에서 피케팅하는 시민단체 회원들. (사진=추혜선 의원실 제공)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본관 4회의장 앞으로 이동해 은산분리 완화를 반대하는 피케팅을 벌였다. 4회의장에는 오후 2시부터 민주당 의총이 예정돼있었다. 국회는 방호직원을 출동시켜 이들을 강제해산시켰다.

이날 기자회견과 피케팅에 참여했던 김경률 소장은 "국회 방호직원들이 청사법에 피켓을 드는 등의 행위는 안 된다고 하면서 우리가 들고왔던 피켓을 빼앗아 찢어버렸다"며 "그리고 한명씩 뜯어내 밖으로 내보내려고 했다"고 전했다. 김 소장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도 이런 적은 없었다"고 토로했다.

▲17일 오후 민주당 의원총회장 앞에서 항의하는 시민단체.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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