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오는 18일부터 평양에서 진행될 예정인 남북정상회담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가 동행한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문재인 정부가 대기업들에게 실익없는 남북 경협사업을 하라고 등 떠밀고 있다고 비난했다.

▲14일자 조선일보 사설.

14일자 조선일보는 <글로벌 기업 총수들이 북한에 사업하러 가겠나> 사설에서 4대 그룹 총수의 방북에 대해 "청와대가 사람을 지정해 방북을 요청했다고 한다"며 "대통령 정상외교에 기업인들이 수행하는 것은 기업 차원에서 뚫기 어려운 사업 기회를 정상외교의 힘을 빌려 모색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그런데 북한은 우리 기업이 자유롭게 사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언제 재산이 몰수당할지 모를 나라"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직원이 인질로 잡힐 수도 있다"며 "그런 위험을 감내할 만한 시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조선일보는 "삼성, 현대차, SK, LG그룹의 지난해 국내 매출은 700조 원에 이른다"며 "한국은행 추정 북한의 지난해 국가 GDP는 30조 원이다. 4대 그룹 국내 매출의 20분의 1에 불과하다. 시장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시장이 커질 잠재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21세이게 '위대한 영도자'를 외치는 나라에 미래가 있다고 보고 대규모 투자를 한다면 그것은 정상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지금 북한 경제에 필요하고 수용 가능한 것은 임가공 산업"이라며 "싼 노동력을 이용해 만든 저가 소비재를 수출해 외화를 벌고 이 밑천으로 산업의 기반을 다져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우리를 포함해 모든 나라가 이 과정을 거쳤다"며 "이런 상황인데 세계 최첨단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4대 그룹 총수들이 무엇 하러 북한에 가겠나"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조선일보는 "더구나 지금 북한은 엄격한 국제 제재를 받고 있다"며 "미국은 북과 거래하는 기업들에 대해 국제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철퇴를 가한다. 기업들은 북한 주변을 얼씬거리지도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그래서 재계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 수행단만큼은 경제 단체장과 공기업 대표 중심으로 꾸려지기를 바랐다고 한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그러나 청와대가 4대 그룹 총수들에게 다 따라올 것을 요구했다"며 "지금 이 총수들에게 '왜 가느냐'고 물으면 '북한 투자가 유망해서'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믿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4대 그룹 총수 방문에 대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까지 끌어들였다. 조선일보는 "이 정권은 전임 대통령의 요구로 모금에 참여한 기업들에 대해 '뇌물'이라고 비난했다"며 "그런데 자신들은 기업을 향해 아무런 사업 실익이 없고 자칫 대북 제재망에 걸릴 수도 있는 남북 경협사업에 나서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고 비난했다.

북한이 당장 민간기업이 사업을 하기에 부적절한 '비정상 국가'라는 조선일보의 주장은 일리 있다. 그러나 4·27 판문점 선언의 취지와 향후 한반도 평화 시대의 가능성을 감안해보면 4대 그룹 총수가 북한을 방문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당장 국회에는 남북 경협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법안들이 다수 발의돼 있고, 정부도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중재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 북한이 비정상 국가이기 때문에 미래 교류를 내다보는 차원에서 안면을 익히는 것은 총수 입장에서 손해는 아닐 것이다. 또한 북한의 GDP가 당장 한국 대기업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기는 하지만, 시장의 잠재력이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남북 분단이란 특수한 상황 속에서 한국은 사실상 '섬나라'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 경협 과제로 도로, 철도 등을 주요 과제로 삼은 이유다. 여기에 정보통신산업까지 진출하면 대륙의 길목을 여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4대 그룹 총수가 북한을 방문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SK와 LG는 국내 이동통신과 인터넷망 사업자이고, 삼성은 국내 최대의 휴대전화 제조 사업자다. 2016년 북한 내 이동전화 가입자 수는 360만 명에 이르고, 일부 전문가들은 올해 600만 명까지 늘었을 것이란 예측을 내놓고 있다.

또한 북한은 국제사회에 등장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뉴스핌 보도에서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1980년대 중국을 모델 삼아 '합영법'을 제정·공포하면서 대외자본을 유치하려고 했다. 그런데 조총련계 기업을 빼고는 투자하는 기업이 없었다"며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 건설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을 모델로 한 것인데, 여기서도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고 전했다.

조진구 교수는 "북한이 조금씩 자유무역지대, 개발특구 등 개방의 노력을 해온 것은 사실"이라며 "지난 몇년 사이 꽤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원산 갈마지구 같은 특구들이 전국에 20여개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물론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 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는 남북미 3국이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면서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이며, 문재인 정부의 중재가 절실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룹 총수들의 방북에까지 문제를 확대해석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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