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제기되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바른미래당을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 논의가 부상하고 있다. 선거제도 개혁 여부가 불투명해지자 인위적인 정계개편에 관심이 쏠리는 것이다. 현재 국회는 선거제도 개혁을 논의할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일 바른미래당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당 대표로 선출했다. 손 대표가 당선되면서 바른미래당 내 보수성향 의원들이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설이 곳곳에서 제기된다. 먼저 지난 대선 당시 바른정당 대선후보였던 유승민 의원이 당무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당장 12일 진행된 정치개혁공동행동과의 선거제도 개혁 공동협약식에 바른정당 출신인 하태경 최고위원 등이 참석하지 않았다. 보수성향의 의원들은 바른미래당의 각종 회의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후문이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오른쪽)와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연합뉴스)

12일 뉴스1은 손학규 대표의 선출로 당내 진보와 보수 노선을 표방하는 의원들 간 균열이 생기면서 이르면 올해 말 보수성향 의원 10여 명의 탈당이 가시화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유승민 의원이 지난 차기 대통령 선호도 조사에서 범보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13.5%로 1위를 차지하면서 자유한국당 복당 가능성을 점치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후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의 합당 논의가 진척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실제로 민주평화당은 손학규 대표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지난 6일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정계개편의 출발점이 손학규가 될 수 있다. 저는 그렇게 본다"고 말했고, 지난 7일 민주평화당 최고위원·국회의원·상임고문 연석회의에서 유성엽 의원은 "안철수 전 대표가 사라지고, 유승민 전 대표가 당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훌륭한 방향으로 (바른미래당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평가했다. 이상돈 의원은 "바른미래당에서 한국당으로 갈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한두 명 정도, 또는 두세 명 정도 민주당으로 갈 가능성도 있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정계개편 군불 떼기는 결국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중소정당에게는 현행 소선거구제로는 2020년 21대 총선에서 당선자를 배출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정당 존립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정당의 이해관계를 떠나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현행 승자독식 소선거구제의 대안으로 곳곳에서 제시되고 있다. 지난 2015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한 형태인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국회에 권고한 바 있고, 더불어민주당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여러 차례 발의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두 거대정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함께 '개헌'이란 거대이슈를 끌어들였다. 민주당은 대통령 4년 연임제, 자유한국당은 분권형 대통령제 권력구조 개편을 받아들여야 연동형 비례대표제 논의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선거법상 선거구 획정 시한은 총선 1년 전인 2019년 4월까지다. 또한 선거구 획정이 된 상태에서 선거법 논의는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선거제도 개혁은 선거구 획정 논의 일정에 맞춰 함께 진행돼야 한다. 따라서 정치권에서는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초를 선거제도 개혁의 데드라인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선거제도 개혁의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공식적으로 협상을 해야 할 국회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조차 구성하지 못했다. 당초 지난 7월 국회는 정개특위원장에 심상정 정의당 의원을 임명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노회찬 전 의원의 사망 사건으로 '평화와 정의'가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하자, 자유한국당은 정의당을 정개특위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교착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선거제도 개편의 시간이 많지 않다"며 "지역구 조정을 4월까지 하려면 정개특위에서 올해 안에는 어느 정도 합의를 봐야 하는데, 시기적으로 촉박하다"고 말했다. 엄 소장은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늘어나면서 그에 대한 역작용으로 정계개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등이 인위적 정계개편이 아닌 선거제도 개혁에 강하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국민들은 이합집산의 방식으로 (정치인이) 살 길을 찾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국민들이 원하는 건 각 정당들이 정치개혁에 나서고 정치가 정상화되는 것"이라며 "눈앞에 이익을 갖고 이합집산을 하기보다, 정치개혁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선거제도 개혁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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