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번째 이야기가 끝났다. 16개 이야기의 끝에 절망과 같은 현실 속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들과 작별을 하게 되었다. 묵직한 주제에 다양한 재미를 더한 <라이프>는 현재의 우리와 10년 뒤 우리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구승효 발언에 담긴 의미;
치열한 대립 속 누구도 승자 패자가 아닌, 끝날 수 없는 승부였다

나이는 어리지만 구승효 사장은 어른이었다. 열심히 공부해 의사가 된 그들은 구 사장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재벌 계열사로 들어선 병원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그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명확하다. 재벌이 사회사업을 하기 위해 병원을 사들이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영리 병원을 추구하는 재벌에 맞서 이를 막으려는 의사들의 노력은 힘겹기만 하다. 어떤 방법을 강구해야 제대로 방어할 수 있을지도 정확하게 모른다. 그게 그들의 한계였다. 그에 반해 구 사장은 몇 수를 앞서 나가고 있었고, 그렇게 수를 둬도 따라오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은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다.

화정그룹 조 회장마저 시기하기 질투를 할 정도로 구 사장은 뛰어나다. 감정에 쉽게 휘말리지 않고 상황을 분석하고 추진하는 힘이 강한 구 사장에게도 위기는 온다. 덫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구 사장은 피하지 않았다. 자신이 피하면 누가 다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는 이를 받아들이며 차선을 선택한다.

JTBC 월화특별기획드라마 <라이프(Life)>

차선이 최선이 되는 것은 매번 우연으로 만들어질 수는 없다. 그만큼 몇 수 앞을 바라보는 힘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눈엣가시 같은 구 사장을 해고한 조 회장은 그렇게 모든 것을 가진 듯했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누구보다 조 회장이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게 구 사장의 힘이다.

구 사장이 일방적인 해고를 당하자 오 원장은 더 다급해졌다. 적인지 동지인지 모호했지만 구 사장의 진심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었던 오 원장은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 잘 알았다. 자신들을 지켜주던 우산이 사라지면 온전히 비를 모두 맞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조 회장이 구 사장을 몰아내는 것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승효 역시 회장이 자신을 몰아낼 것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가 미국 병원 홈페이지를 수시로 확인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조 회장의 동생이 있는 병원 홈페이지에서 어느 날 그의 이름이 사라졌다. 그건 이미 사장 교체가 시작되었다는 의미였다.

달리는 차를 막고 조 회장과 싸울 수 있는 방법이 뭐냐고 거칠게 묻는 진우에게 승효는 "성가셔서. 변하는 게 귀찮아서"라고 의사 집단의 이기적인 행태를 비판한다. 진우는 영리 병원이 되면 어떻게 될 것인지, 미국의 한 놀이공원의 VIP 행태를 통해 말한다. 그걸 모를 승효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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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은 말로 마지막 인사 대신하겠습니다. 최근 이런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상국의 5년 후를 보라. 10년도 필요 없다. 미래의 의료기관은 병을 치료하는 곳이 아닌 가진 자들의 건강을 유지시켜주는 곳이 될 거라고"

"얼마나 버틸 것인가. 기본이 변질되는 걸 얼마나 저지시킬 수 있을 것인가. 여러분의 손에 달린 거겠죠 이젠. 무너질 사람. 버텨낼 사람. 거슬러 오를 사람. 완벽하지도 않고, 예상 외로 우월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우왕좌왕하는 듯 보여도 끝내는 실천에 이르는 사람 여기에도 있겠죠"

"전 제가 잠시나마 몸담았던 상국대학병원 지켜볼 겁니다. 여러분들의 10년 후 20년 후를... 건승하십시오"

오 원장은 구 사장이 쫓겨나듯 병원을 떠나게 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강 실장이 귀띔해준 마지막 날, 회의를 열어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그냥 떠나보내기에 구 사장의 존재감은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런 구 사장이 의사들에게 건넨 말이 <라이프>가 들려주고 싶었던 핵심이었다.

진우가 그렇게 듣고 싶은 답을 모든 의사들 앞에서 해줬다. 5년 후 상국의 모습을 보라, 어떻게 변할지. 조 회장이 언급했던 두 가지의 길 중 어떤 길을 갈지는 누구의 선택이 아닌 그곳에 있는 의사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음을 명확하게 했다. 가진 자들의 건강관리를 위한 곳이 될 것인지 모든 이들의 병을 치료하는 곳으로 남을 것인지 그건 결국 그 안에 속한 이들의 선택이다.

진우와 선우는 서현을 만났다. 동생과 만나고 싶다는 서현은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형제를 맞이했다. 행복한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과 자신이 두려움 때문에 만들어냈던 또 다른 동생 선우와 이야기하는 진우. 그 지독할 정도로 떨쳐내기 어려웠던 또 다른 자아에게 이별을 고하는 진우는 그렇게 한 뼘 성장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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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불편한 선우 곁에 앉아 눈높이를 달리하게 해주고, 바닷가 가는 것조차 민폐라고 생각하는 선우에게 그렇지 않음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해주는 서현. 그 현명함이 형제에게 용기를 내게 했다. 서현은 그렇게 진우만이 아니라 선우에게도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구 사장이 떠나는 날 자신의 속마음을 전했던 노을에겐 큰 용기였다. 그 후 다시 평온해진 듯 보이는 상국대학병원을 그녀는 과감하게 포기하고 지방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구 사장이 병원에 부임해 처음 시도했던 일을 노을은 자발적으로 선택했다.

서울 집중 사회에서 모든 것들은 천만도시 서울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런 상황에서 지방을 선택하는 것은 큰 용기다. 그리고 남겨진 이들에게 노을은 '독립재단 설립'이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비록 당장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여론을 모으고 상국대학병원이 영리 병원으로 가지 않게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해법임을 모든 의사들도 안다.

더딜 수밖에 없지만 그렇게 '무소의 뿔처럼'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영리 병원이 아닌 모두를 위한 병원으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그들도 알고는 있다.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힌트를 준 회의실 도청 가능성을 뒤늦게 깨달은 부원장에 의해 구조실장은 해고를 당한다. 도청하던 현장이 발각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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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했던 조 회장 동생이 새로운 사장으로 부임하는 날 진우는 기시감을 느꼈다. 구 사장이 부임하던 첫날과 같은 모습으로 보게 된 조 사장. 다시 또 마주해야 할 힘겨운 대결을 피하지 않고 받아내겠다는 진우의 다짐은 결국 10년 후 상국대학병원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했다.

노을이 근무하는 강릉으로 찾아간 형제는 바다로 향했다. 사고 후 단 한 번도 용기 내보지 못한 동생 선우. 그에게 바다에서 자유로울 수 있음을 보여주었던 진우는 함께 바다로 뛰어들었다. 바다에서는 누구라도 자유로울 수 있음에 행복한 형제.

그런 형제의 사진을 보며 환하게 웃는 노을에게 편안한 모습은 승효가 찾아왔다. "이노을 선생"이 아닌 "이노을 씨"로 호칭을 바꾼 승효의 환한 웃음. 그렇게 그들은 시작되었다. 모두는 모두에게 영향을 받아 나름 성장을 했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성장통이 있었지만 그들은 그렇게 나아갈 뿐이었다.

구승효를 화정그룹에서 완전히 쫓아내고 싶었던 조 회장은 그럴 수 없었다. 원장과 부원장이 환경부 장관을 만나고 왔을 때 중재를 하면서 뭘 원하냐고 물었을 때도 구 사장은 "병원을 쪼개지 마십시오"가 전부였다. 상국대학병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구 사장의 마지막은 그런 모습이었다.

메일 하나가 조 회장을 흔들었다. 구 사장을 놓치게 되면 그룹 전체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음을 그는 증명했다. 의료와 의류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시장 구축을 제안한 기획서는 조 회장이 내치고 싶었으면서도 품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구 사장임을 깨닫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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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회장이 어떤 존재인지 알면서도 구 사장이 떠나지 않고 다시 기회를 잡는 것은 드라마적인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우린 그렇게 현실에 적응하고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간다. 물론 선우창처럼 병원을 나와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해 힘겨워하는 이들도 있지만 말이다.

승효가 요구해 만들어진 송탄병원 부지 속 관리인 숙소는 땅 주인이자 환경부 장관 부모와 마을 사람들이 살 곳이었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구 사장은 알고 있었다. '개척단'이라는 이름으로 국가 권력에 의해 희생되었던 그들을 위한 승효의 따뜻한 마음. 그게 바로 구승효의 본질이었다.

열린 결말이다. 무엇 하나 완벽하게 정리가 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이야기다. 실제 사람 사는 이야기에 마침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라이프>의 마지막은 가장 리얼했다. 이수연 작가 특유의 감성과 집요함은 보다 완숙해졌다.

검찰 조직과 병원 조직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조직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고 인간 본연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이 작가의 능력은 탁월했다. 벌써부터 이 작가의 새로운 작품이 기대될 정도로 말이다.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색다른 의학 드라마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이수연 작가 특유의 감성이 하나의 스타일로 구축된 <라이프>는 많은 고민을 하게 해주는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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