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개선과 북미대화 궤도 복구 흐름이 급물살이다. 북미가 2차 정상회담을 예고하는 가운데 판문점 선언 비준과 평양에서 열릴 남북정상회담의 국회 동행 문제가 국내 정치권 이슈가 되고 있다.

청와대는 이 문제를 상당히 강하게 밀어 붙이는 모양새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국회를 향한 공개 초청장을 보낸 다음날 이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정중한 형태지만 ‘압박’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평양 동행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각 당 대표들이 ‘올드보이’로 평가된다는 점을 새삼 언급하면서 “복귀의 목표가 권토중래가 아니라 희망의 근거를 보여주는 것이었으면 한다”고 썼다. 또 “당리당략과 정쟁으로 어지러운 한국 정치에 ‘꽃할배’ 같은 신선함으로 우리에게 오셨으면 한다”고도 했다.

‘꽃할배’가 나올 일인가 싶기는 한데, 뒤집어 말하면 정상회담 일정에 국회가 함께하지 않으면 그것은 곧 권토중래를 노린 당리당략에 불과하다고 본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보수야당은 오히려 청와대의 요구를 정략으로 규정하고 있다. 거부할 것이 뻔한 요구를 반복해서 하는 건 결국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을 ‘한반도 평화에 반하는 세력’으로 규정하기 위한 것 아니겠냐는 거다.

보는 사람 입장에선 좀 의문이다. 비서실장이 공개적으로 나서서 정상회담 일정에 함께 할 것을 요구할 정도면 국회와 어느 정도의 공감대 내지는 의견조율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보수야당은 물론이고 국회의장까지 평양 방문을 거부하고 있다. 이런 일은 크게 세 가지 경우에 가능하다. 첫째는 청와대의 미숙이고 둘째는 보수야당이 의심하는 대로 정치적 프레임 짜기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좀 복합적인 성격이 작용한 경우다. 여러 논란이 예상됨에도 비서실장이 이렇게까지 나오는 건 대통령의 의지가 분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11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당리당략’을 언급했다. 방북 동행을 설득하기 위해 각 당 대표를 예방한 한병도 정무수석도 ‘여야의 유불리’를 언급했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여야 원내대표를 만나던 한 달 전부터 요청한 사항인데 이제와서 갑작스러운 제안이라는 건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다. 결국 근본적 문제는 보수야당의 정략적 거부에 있다는 게 청와대와 여당의 판단인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김동연 경제부총리기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임종석 비서실장과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 맥락이 없지 않다. 국회가 남북정상회담 일정에 함께해줄 것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이어져 왔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문희상 국회의장이 개원 연설에서 판문점 선언의 비준을 언급하고 자유한국당이 이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문제가 본격적으로 꼬이기 시작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문워킹’과 ‘출산주도성장’ 발언으로 화제가 된 교섭단체대표연설 말미에 예정에 없던 국회의장에 대한 비난을 덧붙였다. 문희상 의장이 ‘블루하우스 스피커’가 되고 있다는 거였다. 전형적인 ‘하수인론’인 셈이다.

이에 대해 문희상 국회의장은 자기 정치인생을 걸고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어찌됐건 자유한국당은 제1야당이다. 이 판국에 국회의장이 나서서 국회 방북 분위기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방북일정은 거부하면서도 정세균 전 의장을 특사로 파견할 뜻을 내비친 것은 이런 맥락으로 해석된다. 이런 상황이라면 청와대는 애초의 계획을 접거나 안 되더라도 밀어 붙이거나 중 양자택일해야 한다. 청와대의 태도를 보면 후자를 선택한 것 같다. 보수야당이 반발하고 모양새가 좋지 않게 되더라도 찬성 입장인 정당만을 데리고 방북할 수 있고 이후에 만들어질 정치적 프레임 형성도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강공에는 북미가 2차정상회담을 모색하는 국면이 만들어 졌다는 것 역시도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 모른다. 백악관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 2차 정상회담을 요구하는 메시지가 있다고 밝혔다. 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NSC보좌관도 나서서 연내에 2차정상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연내라고 한다면 1차적으로 중간선거 이전이 유력하다. 사전 조율 없이 곧바로 정상회담으로 직행할 수는 없으므로 지난번에 무산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일정을 예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중간선거는 11월 초에 예정돼있으므로 북미정상회담은 10월 중을 예상해볼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은 9월 18일에서 20일까지 열린다. 이후 유엔총회를 거치며 한미정상회담이 진행된다. 아마도 이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과 북미정상회담 국면이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

일정은 궤도에 올랐다지만 쟁점은 여전히 좁혀지지 않은 상태다. 미국은 핵신고 리스트 제출 또는 핵무기 조기 반출 등을 요구하고 있으나 북한은 종전선언 및 제재 해제 등을 원하는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미국 내 여론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일반적 거부감에 더해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성공 가능성을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대세다. 그러다보니 백악관 비화가 담긴 저서의 출간이나 측근들의 연이은 충성맹세를 통해 드러난 트럼프 대통령 리더십의 불안정성이 미국 내 정치의 주요 쟁점이 되고 북핵 문제는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 있는 듯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태라면 중간선거 패배 또는 트럼프 대통령의 단순한 변심에 의해 북미회담이 무위로 돌아갈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이런 이유로 북미대화가 다시 궤도에서 이탈하게 된다면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정세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에선 언제 또 다시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니 다양한 이유에서 남북관계 전반을 지금보다 악화시키지 않기 위한 안전판을 마련하고자 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다. 결국 일이 되는 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판문점 선언 비준을 둘러싼 대치 국면을 청와대 스스로가 만드는 것은 이 안전판 마련의 가능성을 더 좁게 만드는 일일 뿐이다. 밀어 붙이는 것도 좋지만 명분을 주지 말아야 한다. 보수야당이 판문점 선언 비준을 통해 이후 남북관계 개선 전반의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스스로에게도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리라는 확신을 갖게 해야 한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도 비용추계서의 ‘불성실’을 당장 지적할 순 있겠지만 최종적으로는 비준동의안 처리에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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