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더웠던 여름이 다 지나가는 이 계절에 뒤늦게 '서늘함'을 무기로 장착한 두 편의 드라마가 등장했다. 그것도 같은 방송사 KBS2의 월화드라마 <러블리 호러블리>와 수목드라마 <오늘의 탐정>이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흐르지도 않는 땀을 얼어붙게 하면 어떠랴. 신선한 소재, 새로운 캐릭터들의 향연은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열렬한 지지자들을 양산할 태세다. 하지만, '호러'라고 해서 두 드라마를 뭉뚱그려 묶으면 아쉽다. 두 드라마가 보여주는 호러의 경지는 전혀 다른 색채를 가지고 시청자의 일주일을 떨게 만들 테니까.

<러블리 호러블리> 정말 호러블한 건?

드라마는 한날한시에 태어나 운명적으로 엮인 남녀 유필립(유을축, 박시후 분)과 오을순(송지효 분)에게 벌어지는 미스터리하고 호러블한 사건들로 시작된다. 마치 세상의 모든 행운을 다 가진 듯했던 '우주대스타' 유필립은 1회부터 칼에 맞을 뻔하지 않나, 산사태에 생매장 당할 뻔하지 않나, 심지어 8년 전 연인이 귀신으로 나타나는 등 운명의 판도가 '불운'을 향한다. 그런데 그런 필립의 불운이 드라마를 쓰는 을순에게 '영적'으로 계시되어 대본으로 쓰이게 됨은 물론, 필립이 위기에 빠지는 순간마다 을순이 필립을 구해주며 두 사람은 엮이게 된다.

KBS 2TV 월화드라마 <러블리 호러블리>

스타 유필립의 과거와 현재가 얽혀진 이러저러한 사건, '귀신의 사랑'이란 대본을 둘러싼 미스테리한 사건들로 복잡해 보이는 드라마.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들을 관통하는 건, 뜻밖에도 인간의 ‘욕망’이다.

애초에 죽을 운명이었던 아들. 그 연약한 아들을 구하기 위해 무당이었던 어머니는 을순의 행운을 '도둑질'했다. 거기서부터 어긋난 두 주인공의 운명, 그 어긋난 운명은 현재 또 다른 이들의 ‘욕망’으로 인해 사건으로 분출된다. 그 다른 이는 필립과 함께 아이돌 그룹을 했던 동철과 기은영 작가이다. 자신에게 온 기회를 필립에게 빼앗겨 필립으로 인해 자신이 불행해졌다 생각한 동철은 필립을 없애는 것으로 불행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필립의 왜곡된 운명론을 을순에 대해 '살리에르 증후군'을 가진 기은영 작가가 부채질하고, 그 두 사람의 욕망은 결국 보조작가 살해와 필립 저격이라는 범죄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사건을 벌인 두 사람만이 아니다. 을순의 목걸이인 줄 알면서도 행운을 빼앗기기 싫어 그 사실을 숨긴 필립이나, 8년 전 필립의 전 애인이 죽어간 화재 사건에서 공모의 혐의가 있는 필립 소속사 사장이나, 필립의 현재 여자친구 신윤아 등이 움직이는 동인이 모두 각자의 욕망과 이기심이다. 즉, 주어진 운명이라는 씨줄도 있겠지만 그 운명을 직조해가는 건 결국 '인간의 욕망'이라는 날실이라고 드라마는 얽히고설킨 사건을 통해 강변한다. 즉, 이 드라마에서 진짜 호러블한 건 미스터리한 현상이 아니라, 거기에 영합하고 이용하는 인간의 이기적 욕망이다.

KBS 2TV 월화드라마 <러블리 호러블리>

미스터리하고 호러블한 사건들로 얽히고설킨 <러블리 호러블리>에서 '러블리'한 지점은 신선하고 매력적인 두 주인공 캐릭터이다. 이마 상처 때문에 얼굴의 반을 가리고 다닐 만큼 우중충해보이는 여주인공 오을순은 그간 한국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캐릭터이다. 을축이 아니 필립이에게 목걸이를 넘겨준 이후로 되는 일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칼을 든 강도 앞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배포를 가졌으며, 위기에 빠진 남자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삽질은 물론 엎어치기 메치기도 거침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빛나던 순간은 바로 16회 엔딩, '운명 따위'하면서 자신들을 얽어맸던 목걸이를 바다로 던져버리는 진취적인 적극성이다.

남자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여주인공, 그렇다면 남자 주인공은 신데렐라일까? 백설공주일까? 뜻밖에도 쫄보에 겁쟁이다. 자신의 신상이 밝혀질까봐 검은 비닐봉지를 뒤집어 쓸 정도로 비겁하고 쫄보인 유필립. 하지만 사랑하는 이를 놓치지 않으려 하는 그 진정성이 그로 하여금 을순을, 드라마에 대한 을순의 열정을 돌아보게 하고, 나아가 자신의 행운까지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개연성 있는 성장의 서사를 써내려가게 한다.

결국 호러블한 욕망, 그리고 주어진 운명의 굴레에 맞서는 건 두 주인공의 '역동적이고 적극적인 러브'이다. 그 어느 작품보다 가장 맞춤한 캐릭터로 돌아온 송지효, 그리고 황금빛의 여운을 지워버리는 발군의 박시후 표 코믹과 진지를 오가는 연기가 어수선한 호러블한 사건 속에서 주인공의 러블리한 사건에 몰입하도록 한다.

<오늘의 탐정> 죽어도 주인공!

KBS 2TV 수목드라마 <오늘의 탐정>

<러블리 호러블리>와 <오늘의 탐정>, 호러라는 장르 외에 두 드라마의 공통점을 들자면 드라마가 시작하자마다 다짜고짜 남자 주인공을 땅에다 묻어 버린다는 것이다. <러블리 호러블리>가 자칭 할리우드 스케일로 산사태를 일으키며 주인공이 타고 가던 차를 땅에 묻어버렸다면, <오늘의 탐정>은 한 술 더 떠서 남자 주인공을 망치로 쳐 죽여 무연고 사망자로 만들어 버린다.

시니컬하지만 차를 타고 들어오는 의뢰인의 면면만 봐도 그가 지나가는 사람인지, 사건을 의뢰하러 오는 사람인지를 파악한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 맞히는 경지로 봐서는 거의 셜록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주인공 이다일(최다니엘 분)과 그의 조수, 아니 일찍이 그를 알아보고 그와 함께 '어퓨굿맨'을 차린 한상섭(김원해 분)이 드라마를 열 때만 해도 <추리의 여왕> 남자 버전인가 했다.

그런데 사건만 해결하면 당장 쫓겨나게 생긴 사무실 임대료를 평생 받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뛰어든 유치원 아이들 실종 사건. 그 사건의 해결을 위해 뛰어든 이다일이 현장에 만난 건 뜻밖에도 범인과 사건 그 뒤에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 채 서있는 빨간 원피스이다. 그리고 그 빨간 원피스의 사주를 받은 범인은 이다일의 목숨조차 앗아가 버린다. 남자 주인공이 1회 만에 죽어버린 것이다.

KBS 2TV 수목드라마 <오늘의 탐정>

​​드라마가 시작되자마자 비오는 풀숲 진흙탕에서 솟아오른 손 하나, 그는 그렇게 돌아왔다. 단지, 살아있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살아있지 않은 그를 여느 때처럼 맞아주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여동생을 빨간 원피스의 사주로 잃은 정여울(박은빈 분)은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빨간 원피스를 본 것처럼, 다일을 알아봤다. 그리고 동생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서는 다일이 필요하다.

<오늘의 탐정>은 <셜록>처럼 사건 해결에 능력이 있는 이다일을 앞세운 범죄 수사물이다. 그런데, 그 범죄가 격이 다르다. 드러난 사건은 유치원 아이들 실종 사건, 레스토랑 직원 자살 사건이지만, 그 사건들 뒤에는 ‘빨간 원피스’라는 미스터리한 존재가 있다. 그리고 이제 그 미스터리한 존재에 맞설 만한 또 다른 미스터리한 존재, 즉 죽어서 살아온 남자주인공 이다일로 사건의 격을 맞췄다.

이렇게 미스터리와 범죄의 조합으로, <김과장>의 이재훈 피디와 <원티드>의 한지완 작가가 합을 이뤘다. 거기에 셜록보다 더 셜록 같은 최다니엘 표 이다일과 <청춘시대>의 송지원 못지않게 똘망한 박은빈 표 정여울의 조합은 절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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