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특별한 기준 없이 민원을 기각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에 어긋나는 보도를 한 방송에 대해 민원을 넣어도 심의에 상정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6일 ‘기준 없는 기각 남발, 방송심의가 위험하다’ 포럼을 개최했다. 민언련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7월까지 298건의 민원을 제출했다”며 “이 중 심의가 완결된 261건의 민원 중 199건(76%)이 기각처리 됐다”고 밝혔다. 이어 “대부분의 민원이 기각할만한 수준이었다면 민언련이 시정을 해야 했다”면서 “하지만 최소한 기각이 아닌 상정은 했어야 하는 사안이 대부분이었다”고 주장했다.

▲민언련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출한 민원과 처리 비율, 기간은 2017/6/1~2018/7/31.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민언련은 ▲광고성 보도 ▲젠더·인권 관련 보도 ▲막말·편파·선정적 종편 방송 민원이 통과되지 않았으며, 기각의 사유가 불분명하다고 밝혔다. 민언련은 “심의규정에 따르면 방송은 상표·로고·슬로건은 물론 특정 업체의 특정 상품을 과도하게 부각해서는 안 된다”며 “그러나 방통심의위는 몇몇 극단적 사례를 제외하고는 광고효과 관련 민원을 대부분 기각했다”고 지적했다.

문제로 지적된 방송은 지난해 10월 7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다. 당시 MBC는 <빵집에서 스테이크를…간편식 전성시대>라는 보도에서 특정 빵집에서 판매하는 간편 식품을 소개했다. 빵집과 스테이크에는 흐림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상품명을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특정 업체의 제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했으며, 관계자의 홍보성 발언도 담았다. 다른 업체의 제품이 노출된 장면은 보도 끝에 마트 전경을 비추면서 지나간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방통심의위는 해당 보도에 대한 민원을 기각했다. 방통심의위는 “1인 가구 증가로 인한 가정 간편식 시장 확대를 소개하며 다양한 제품들이 노출되고 있다는 점에서 특정 업체에만 부적절한 광고효과를 주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민원 기각의 이유를 밝혔다.

장낙인 전 방통심의위 상임위원은 “특정 제품을 한두 번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라며 “상표나 로고가 다 노출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왜 기각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이건 법정 제재 감”이라고 강조했다.

▲KBS 보도 속 이재민 사생활 노출 사례 갈무리. 모자이크는 민언련이 했다. (사진=KBS 방송화면, 민언련 재구성)

방송사의 인권 침해를 둘러싼 문제점이 지적됐다. 지난해 11월 경북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하자 다수의 언론은 이재민 대피소 소식을 다뤘다. 이 중 MBN을 제외한 대부분의 방송사는 휴식을 취하거나 식사를 하는 이재민의 얼굴에 흐림 처리를 하지 않고 방송에 내보냈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에는 “피해자 등의 영상·음성 등의 촬영에 대한 사전 동의가 없거나 그 촬영 내용의 방송에 대한 피해자 등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방송”을 해서는 안 된다고 적시되어 있다. 하지만 방통심의위는 “대피소 내 이재민들의 모습을 단순 노출했다”며 “이재민들의 모습을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노출하거나 안정을 저해할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민원을 기각했다.

망원 카메라를 이용해 북한 예술단의 숙소를 촬영한 TV조선에 대한 방통심의위의 판단도 도마 위에 올랐다. TV조선은 2월 7일과 10일 한국에 방문한 북 예술단의 소식을 다뤘다. TV조선은 북한 응원단은 휴식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알아보겠다며 숙소 창문을 확대 촬영해 보여줬다. 또 “줄담배를 태우는 단원도 눈에 띄었습니다”·“세면을 하고 수건을 들고 가는 모습도 보입니다”·“한국 TV를 시청합니다” 등의 부연을 했다.

▲북한 공연단 숙소를 보도한 TV조선 (사진=TV조선 방송 화면 캡쳐)

방통심의위는 “숙소에 머물고 있는 북한 응원단의 산책, 식사 등 일상적인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 취지의 보도로 이해된다”며 민원을 기각했다. 배나은 민언련 활동가는 “TV조선은 사생활을 연달아 [단독]을 붙여 대대적으로 보도했다”며 “궁금하다고 당사자의 동의 없이 촬영하는 것이 공익적 목적을 가진 보도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관음증적 호기심 충족을 위한 보도와 같다”고 강조했다.

정수영 성균관대 연구교수는 “민원의 처리에 대한 기준이 혼란스럽다는 게 문제”라며 “개인적 판단이 아니라 해당 보도가 시청자에게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 정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방송과 관련한 심의 기준은 제작진·출연진·시청자가 함께 공유하면서 통념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민언련 포럼은 6일 서울 마포구에서 열렸다. 토론자는 장낙인 전 방통심의위 상임위원·최홍운 전 선거방송특별심의위원회 부위원장·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정수영 성균관대 연구교수 등이 참여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