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사카에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던 덴포산 대관람차가 있다. 압도적인 크기와 높이 덕분에 오사카 전경은 물론 오사카 항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백재호, 이희섭 감독이 공동 연출한 <대관람차>(2018)는 이 오사카 대관람차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힐링 음악영화다.

오사카 출장 마지막 날, 술에 잔뜩 취해있던 우주(강두 분)는 거리에서 우연히 옛 직장 상사인 대정(지대한 분)을 목격한다. 선박사고로 실종된 대정의 생사를 오랫동안 궁금해 하던 우주는 그의 뒤를 추적해보지만, 그의 행방은 알 길이 없고 대정과 같은 이름을 가진 다이쇼 지역에 잠시 눌러 살게 된다. 한국에서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고 오사카에 머물게 된 우주는 대정의 행방을 찾는 틈틈이 오랫동안 손 놓고 있던 음악 활동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영화 <대관람차> 스틸 이미지

낯선 타지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잊고 있던 꿈을 찾아가는 한 남자의 성장담을 다룬 <대관람차>의 플롯은 평이하고 단순하다. 힐링 무비를 표방하는 만큼 유독 괜찮아(大丈夫, 다이조오부)라는 대사가 많이 나오는데, 진짜 주인공들의 말대로 모든 것이 괜찮아지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다.

<대관람차>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큰 욕심 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음악을 하는 이유는 뮤지션으로 성공하여 큰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음악이 좋기 때문이다. 우주의 롤모델로 보이는 대정은 남은 인생을 보다 즐겁게 살기 위해 안정된 직장을 제 발로 그만두었고, 우주는 그런 대정을 흠모한다. 우주가 대정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대정이 비극적인 사고를 당한 이유도 있지만, 우주 자신이 잊고 있었던 꿈을 대신 이뤄주는 우상 같은 존재라는 점에 있다.

<대관람차>의 매력은 보통 사람들이 꿈꾸는 로망을 대신 이뤄주는 데에 있다. 뮤지션이 되고 싶다고 한들, 어느 정도 재능도 있어야하고 생계 문제 같은 현실적인 이유를 배제하기 어렵다. 연일 이어지는 부장의 폭언에 참다못해 회사를 그만두고 오사카에서 뮤지션으로 변신한 우주의 이야기는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요즘 들어 영화 속 우주나 대정처럼 안정된 생활을 뒤로하고 보헤미안적인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대관람차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오사카의 평온한 풍경은 물론 그 속에서 자신의 잃어버린 꿈을 조금씩 찾아가는 우주의 하루도 일상에 쫓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한낱 아름다운 꿈이다.

영화 <대관람차> 스틸 이미지

음악을 통한 우주와 하루나(호리 하루나 분)의 성장담을 다룬 <대관람차>는 그 외연을 찬찬히 들어다 보면 마냥 가볍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세월호로 추정되는 침몰사고와 동일본 대지진 및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각각 절친한 지인과 어머니를 잃은 우주와 하루나는 음악을 매개로 교감하며 상실의 아픔을 치유한다.

서로의 상처에 공감하고 아픔을 나눈 우주와 하루나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쉽게 망각하는 사람들도 아니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여기의 순간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상처한 하루나 아버지를 위로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밴드를 결성한 우주와 하루나는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자마자 제각기 길을 떠난다.

영화 <대관람차> 스틸 이미지

성장과 치유를 다룬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은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케이스가 많았는데 <대관람차>는 그런 클리셰들을 가볍게 건너뛰고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동료 사이로 남는다. 남성 감독들이 공동 연출했고 남성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곤 하지만, 여성 캐릭터를 남성 주인공과 함께 성장하는 동등한 관계로 그린 것 또한 인상적이다.

하루나라는 여성 캐릭터 외에도 영화 <대관람차>는 출연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 캐릭터 또한 기능적 혹은 허투루 소비하는 법이 없다.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대관람차와 루시드폴이 선사하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배경으로, 지극히 소박하지만 저마다의 우주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산뜻한 우주 탐험. 이렇게 착하고 예쁘고 섬세하기까지 한 기분 좋은 독립영화를 기다려왔다. 8월 3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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