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라고 해야할까? 이해찬 전 총리가 집권여당의 수장으로 돌아왔다. 구체적인 성적표를 보니 ‘친문분화’ 등의 논란까지 불러온 후보 지지 논쟁은 찻잔 속 태풍이었던 것 같다. 하긴 이해찬 신임 대표의 캐릭터 상 가능성이 없었다면 출마 결정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돌고 돌아 이해찬 대표라는 결론에 이른 이상 앙금을 남기지 않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당 운영이 절실하다. 이를 통해 실질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

이해찬 대표 체제는 돌발변수가 없는 한 2020년 총선까지 책임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 정권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짐이 매우 무겁다. 특히 임기 초반의 성과를 견인했던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과정에선 여당이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정권의 정치적 큰 그림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이해찬 대표는 당선 직후 “최고 수준의 협치”를 강조했다. 이를 위한 5당 대표 회담의 조속한 개최도 언급했다. 여소야대라는 조건 속에서 ‘협치’는 국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선택지다. 다만 ‘협치’라는 두 글자 속에는 수십 가지의 그림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말이 아니라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전에는 남북관계 개선을 고리로 국회의 초당적 대처를 주문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었지만 앞으로 이런 선택이 가능할지는 알 수 없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무산에서 보듯 북미 간의 힘겨루기가 어디로 이어질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북미 간 교착국면이 문재인 정권의 더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국내 정치적으로 보자면 북한산 석탄 반입 문제에서 보듯 한미간 엇박자나 제재 완화 논란이 더 커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남북문제를 고리로 한 국회의 초당적 협력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신임 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수락연설을 하기에 앞서 손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은 길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보수야당에 유화적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입법 과정에서의 전향적 태도를 기대하는 것이다. 누구나 생각하듯 이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자유한국당은 소득주도성장을 ‘세금중독성장’이라 부르며 악화된 경제지표 논란을 기회로 보고 있다. 이 대목에 있어서는 바른미래당도 자유한국당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 인식을 보이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규제프리존법 처리 등에서 접점이 생겨날 수 있지만 보수야당은 그런 경우에도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공격을 물리지 않을 것이다. 두 당은 선거에 가까워질수록 정권에 각을 세우는 것으로 차기를 도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당은 정부의 경제 정책을 뒷받침하는 태도를 분명히 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적어도 예산을 다루는 연말까지 보수야당들과의 관계 개선은 어렵다고 볼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남는 건 민주평화당과 정의당 같은 정치세력과 정치적 정책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경제 정책의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선거제도 개혁이 중요하게 다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두 당이 강하게 요구하는 것 또한 선거제도 개혁이다.

선거제도 개혁은 현역의원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강력한 압력이 없이는 성사될 수 없다. 일본의 경우 90년대 중반 중선거구제가 소선거구 비례대표 병립제로 바뀌게 된 것은 기득권이 부패 스캔들로 무너진 후 집권한 세력이 선거제도 개혁 합의 하나만 가지고 연립정부를 구성했기 때문이다. 비자민 연립정권을 구성한 정치세력 간의 거의 유일한 공통분모가 이것이었기 때문에 서로 견제하는 와중에도 법 개정 실현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해찬 대표는 선거제도 개혁을 개헌과 연계해서 다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개헌이 없는 상황에선 선거법 개정의 효과가 크지 않다는 식의 주장이다. 개헌과 선거법 개정을 연동하는 순간 현실적으로 선거제도 개혁의 가능성은 멀어진다. 이해찬 대표가 그걸 모르고 이런 주장을 한다고 볼 수는 없다. 결국 개헌에 대한 합의 미진 등을 근거로 선거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 표명을 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지만, 결국 선거법 개정에 실질적으로 나서지 않겠다는 것이라면 개혁입법을 좀 더 강하게 추진하는 걸로 전선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청와대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규제개혁 등의 드라이브를 여당이 저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해찬 대표는 선거 과정에서 “우리 시대 상황에서 불필요한 규제가 있다”, “신규산업이 진입해야 하는데 기존 관념 때문에 안 된다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통해 은산분리 완화를 주장한 바 있다. 이런 태도를 바꿀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자유한국당 내에는 이해찬 대표 당선이 나쁠 게 없다는 기류가 있다고 한다. 이해찬 대표 본인의 자기주장이 강한 측면도 있지만 이번 전당대회로 통해 집권여당의 ‘좌클릭’ 노선이 유지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판단한 탓도 있다. 집권 여당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주장을 강하게 해야 ‘국가주의 대 자율주의’의 프레임을 고수하는 김병준 비대위원장 체제가 더 재미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거대양당이 서로를 ‘적폐’와 ‘국가주의’로 비난하며 지지층 결집을 유도하고 반면 선거제도 개혁에는 미온적인 태도를 유지한다면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민주평화당이나 정의당의 협력도 구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물론 그렇더라도 수가 없는 건 아니다. 자유한국당으로부터 지나치게 진보적이라는 취지의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선 여당도 ‘범여권’으로 불리는 세력들에게는 나름 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개혁을 추진하는데 왜 뒤에서 총질하느냐는 비판은 전혀 새롭지 않다. 뒤집어 얘기하면 지금 시점이야말로 진보정치가 자기 근거를 조직적 노선적으로 갖추는 홀로서기를 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범여권’이라는 일종의 종속변수로는 이후 상황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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