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잘못했는지,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하는지 전 모릅니다. 오랫동안 김연아 선수와 갈등관계에 있었던 IMG의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고, 그녀의 라이벌 아사마 마오 측에서 오셔 코치에게 지도 제의를 한 것이 갈등의 원인이었다는 기사도 나옵니다. 김연아 선수의 어머니를 들먹거리기도 하고, 오셔 코치의 코치료와 IMG와의 재계약 등등의 상황을 갈등의 원인으로 지적하기도 하죠. 이런 저런 정보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흘러나오고 하나의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사람들의 반응도 이리저리 움직입니다. 그야말로 폭로전, 갈등관계에 놓인 이들이 주고받는 익숙한 풍경이 등장인물만 바뀌어 김연아와 그녀의 코치였던 브라이언 오셔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정말 싫습니다. 이런 상황이, 그들이 문제발언들을 쏟아내고 상대방의 말을 받아치며 반박하는 모습이, 그 와중에서 다시 상처입고 또 다른 논란거리를 만들어내고, 저마다 자기의 판단기준에 따라 편을 드는 이런 악순환이 정말로 보고 싶지 않습니다. 무수히 많이 보아온 폭로전 공식에 충실한 이 촌극의 주인공이 왜 그들이어야 하는지. 시시비비를 가리며 누가 옳은지, 누구의 잘못인지를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로, 그들과 관련된 소식들을 쭉 지켜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측은함과 괴로움 밖에는 없어요.

이런 불쾌함, 안타까움은 그들의 다툼이 단지 서로 두 사람 사이의 갈등으로 끝이 나버리는 현재의 문제, 혹은 앞으로 김연아가 도전할 미래의 문제에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둘의 깔끔하지 못한 결별은 그 두 사람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선물해준 수많은 감동의 순간들, 놀라움과 감격의 과거의 시간들과 같이 기억되는 추억들에 아픈 상처의 자국을 남겨 버리고 말았어요. 가끔씩 꺼내서 그때의 감정을 기억하며 즐겁게 회상할 수 있는 보물들에 보기 흉한 상처가 남아 버린 것이죠.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일전에 포스팅했던 것처럼, 전 너무나 운이 좋게도 김연아가 제임스 본드 주제가에 맞춰 매혹적인 본드걸의 자태를 뽐내던 쇼트 프로그램을 파리에서 직접 관람한 경험이 있습니다. 프로그램이 처음으로 발표된 시기였기에 관심과 궁금증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고, 다른 선수들과 격이 다른 완벽한 연기를 뽐냈던 대회였기에 그 기쁨은 두 배였었죠. 피겨 스케이팅에 문외한인 저와 그날 함께 동행 했던 친구들은 직접 처음 보게 된 그 격렬한 속도와 함께 펼쳐지는 우아함과 아름다움에 김연아와 피겨스케이팅에 완전히 빠져지는 마법에 걸려 버렸어요.

그 순간 김연아의 곁에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브라이언 오셔 코치가 있었습니다. 멀리서 봤지만 유난히 눈에 띄었던 풍채 좋은 서양 아저씨는 전광판에 사람 좋은 웃음으로 그녀와 함께 하고 있었죠. 그런 것입니다. 그는 김연아가 달성한 그 수많은 영광의 장면 대부분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김연아를 추억하는 것은 동시에 오셔 코치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이죠. 그렇기에 이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 우울한 촌극 때문에 그 찬란했던 시간들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예전처럼 그때의 시간을 마냥 즐겁게, 행복하게 추억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단 말입니다.

예전에 본 김태원의 인터뷰 중에서, 이승철이 다른 인터뷰에서 부활을 나오게 된 계기에 대해 그 당시에 상황에 대해 안 좋은 표현으로 설명했던 사실에 대해 김태원이 지적한 부분이 있습니다. 아무리 설사 그때 상황이 그렇더라도 부정적으로 그 시간을 스스로 훼손하거 더럽히는 것은 당시 부활의 음악을 아끼고 사랑했던 팬들의 추억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상황과 이유는 모두 다르겠지만, 이 일의 발단과 책임 소재는 명명백백하게 가려져야겠지만 김연아와 오셔 코치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자세가 아닐까요? 우리가 그들에게 선물했던 사랑과 지지, 환호의 목소리를 기억한다면,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선사해준 아름다운 기억을 지켜줄 책임이 있습니다. 부디 그날 파리에서 보았던 멋진 추억을 더 이상 망치지 않아 주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가슴 아픈 폭로전은 절대, 전혀,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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