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17일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가 국민연금 기금 상황에 대해 발표했다. 국민연금이 오는 2057년에 고갈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지난 5년 전 발표보다 3년 앞당겨진 시기다. 앞서 지난 13일에는 국민연금 지급 시점 연장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정부가 제4차 재정계산 추계 결과를 맞아 국민연금 수급 연령을 65세에서 68세로 연장하고, 보험료율을 9%에서 11%로 인상한다는 언론 보도 때문이었다.

▲ 국민연금 사옥 (사진=연합뉴스 제공)

결론부터 말하면 언론 보도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14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연금) 지급 개시 연령을 68세로 연장하는 것은 전혀 사실과 무관하다" 라며 논란을 일축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국민 동의 없는 국민연금 개편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정부는 대국민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국민연금 고갈시기를 늦추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절차에 돌입할 예정이다.

특히 문 대통령은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국민연금 개편안과 관련해 보건복지부의 섣부른 대처를 꾸짖었다고 전해진다. 민주당은 “확정되지도 않은 내용이 여과 없이 밖으로 전해져서 큰 혼란 야기한 점에 대해 복지부는 분명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연금 제도개선위원회의 정책 권고안이 정책 시행안처럼 언론에 알려져 벌어진 사건이었다.

해당 보도가 오보라고 밝혀지기 전, 조선일보는 ‘국민연금이 국민 지갑을 털어간다’는 프레임을 세웠다. 조선일보는 13일 <난파 위기 국민연금… 국민 지갑만 터나> 보도에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상황이 총체적 난국인데 정부는 국민 부담을 늘리려고만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기금운용본부가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다”면서 “이런 문제부터 풀 생각은 하지 않고 국민의 추가 부담을 늘리거나 연금 수령 시점을 더 늦추는 해법만 찾고 있다”고 주장했다.

▲8월 13일자 조선일보 '난파 위기의 국민연금...국민 지갑만 터나' 보도

조선일보는 “기금운용본부장 공백 사태가 1년 이상 길어지면서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면서 “국민연금 수익률은 지난 2014~2016년까지는 4~5%가량이었고, 지난해엔 글로벌 주식시장 활황에 힘입어 7.26%를 기록했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올해 들어 지난 5월까지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0.49%로 추락했다”며 “시장 수익률보다도 0.93%포인트 낮은 대목은 뼈아프다”고 말했다.

주요 경제지들도 조선일보와 같은 프레임을 내세웠다. 한국경제는 13일 <0%대 수익 내고 보험료 더 내라니… 국민연금 불신 키운 정부> 보도에서 국민연금 인상 반대 시민들의 발언을 인용해 “대기업 경영권에만 관심을 갖는 모습을 보인 정부와 국민연금이 자초한 불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매일경제 역시 사설 <앞당겨진 국민연금 고갈 시점, 더 중요해진 운용본부장 인선>을 통해 “이제 와서 보험료율을 올리고 수급 시기를 늦추는 손쉬운 해법만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비판과 저항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조선일보와 경제지의 주장은 일부만 맞다. 현재 국민연금 기금운용분부장직은 공석이며, 올해 수익률이 0%대를 머물고 있다. 본부장 선임에 여러 논란이 있기도 했다. 다만 2017년 하반기부터 본부장직은 공석이었지만 2017년 연 수익률은 7.26%를 기록했다. 최근 4년간 가장 높은 수익률이다. 또 올해 최종 수익률이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수익률 하락으로 인해 국민연금이 난파됐다는 주장은 시기상조다.

국민연금이 국민의 지갑을 털어간다는 표현도 틀렸다. ‘국민의 지갑을 털어간다’는 말은 낸 돈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을 때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사회보험이지 세금이 아니다. 한번 납부하면 정확한 쓰임새를 알기 힘든 세금과 달리, 국민연금은 국민이 낸 돈이 그대로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현재 국민연금의 보험료율은 소득의 9% 수준이다. 직장인의 경우 4.5%는 고용주가 분담하기에 보험료 부담이 절반으로 낮아진다. 소득대체율은 45%다.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40%로 하락하지만, ‘털리는 돈’이 아니다.

직장 가입자 기준 월급의 6.24%가 부과되는 건강보험료를 갖고 ‘지갑이 털린다’고 표현하진 않는다. 납부한 건강보험료만큼 병원 치료비·약국조제료가 즉시 할인되기 때문에 효용이 체감되는 것이다. 국민연금도 마찬가지다. 65세에 연금을 수령 받기에 효용이 즉시 없을 뿐이지, 지갑을 털어가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조선일보와 일부 경제지는 국민연금을 '털리는 돈'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독자들로 하여금 "국민연금에 나가는 돈은 아까운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셈이다. 국민연금이 사회보험으로 어떤 기능을 하고, 일반 세금과 어떻게 다른지 알고 있다면 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조선일보와 일부 언론의 인식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이에 대해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신문을 읽다가 (조선일보의) 제목을 보고 혼자 한참 웃었다”면서 “작문 솜씨도 이 정도면 천재급이라고 감탄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준구 교수는 “정부가 국민 지갑만 털려 한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면서 “국민연금은 우리가 민간의 보험회사에 연금상품 가입과 더불어 내는 보험료와 아무 다를 바 없는 보험료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준구 교수는 “나중에 연금이라는 보험금을 타기 위해 내는 보험료인데 이게 어찌 지갑을 털리는 일이냐”면서 “국민연금의 기본 성격에 대한 무지에서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 불만을 최대한 부추기려는 (조선일보의)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책임감 있는 언론이라면 국민으로 하여금 국민연금제도의 기본성격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마땅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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