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의 굴욕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고 멤버 선정에서부터 프로그램의 구성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에 관여하며 의욕적으로 일요일밤으로 복귀한 SBS의 런닝맨이 여전히 경쟁자들에게 밀려 10% 이하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동시간대 예능 프로그램 꼴찌의 자리를 벗어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죠. 방송기간 1년을 넘기며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남자의 자격은 물론이고, 심지어 늘 자신과 함께 하던 1.5인자 박명수의 뜨거운 형제들에게도 미세한 차이기는 하지만 계속 뒤쳐져 있거든요.

확실히 초반의 혼란과 어수선함을 정리하고 일정한 틀을 잡아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런닝맨 표시 힌트, 상금, 황금돼지 저금통으로 계속 흔들리던 승자를 가리기 위한 방식이 각 게임의 승리자가 획득한 색공을 확률로 돌리는 깔끔한 방식으로 정리되면서 본래 런닝맨이 내세운 장점인 각종 게임자체와 독특한 촬영 장소 소개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주에 걸친 방송분을 한주로 압축시키면서 이 프로그램 특유의 속도감에 가속을 붙였구요. 여러 가지로 실험하던 게임들도 몇몇 포맷을 고정시키면서 각각 활약하는 멤버들을 부각시키고 있구요.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고 아쉽습니다. 아무리 화려한 게스트들이 등장하고 독특하고 거대한 장소에서 촬영을 진행한다 해도 런닝맨은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의 프로그램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토대나 너무나도 빈약하거든요. 무엇을 어디서 하든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바로 출연자들의 캐릭터 형성과 그것을 활용한 서로간의 관계 맺기가 그것입니다. 모두가 바쁘게 뛰며 이리저리 미션을 열심히 수행하지만 이 프로그램에선 정작 그것을 위해 움직이는 이들을 향한 관심과 호감, 혹은 기대감은 찾기 힘들어요.

물론 캐릭터도 관계들도 당연히 존재합니다. SBS의 X맨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재석은 그 시간대만의 특성과 전통들을 자연스레 이어받고 있죠. 유재석은 그가 출연한 다른 어느 프로그램에서보다 까불거리는 막내 동생 같은 귀여움과 깨방정을 보여주며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역할 수행 능력을 자랑합니다. 김종국의 근육남 이미지, 하하의 건방진 꼬마 캐릭터, 이효리를 대신해서 유재석과의 새로운 국민남매를 꿈꾸는 송지효와 박명수의 1.5인자 자리를 노리는 지석진, 예능 초보생인 게리와 광수, 명탐정 송준기도 각자의 캐릭터를 잡아가고 있구요.

그렇지만 그들의 캐릭터는 예능 신입생들의 것들처럼 너무나 급작스럽게 만들어진 것이기에 시청자들이 적응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한 것이 많거나, 김종국이나 하하처럼 개인이 가지고 있는 비호감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그마나 서로간의 관계 역시도 지나칠 정도로 일방적인 방향으로 유재석을 정점으로 하고 있어요. 이들 모두가 유재석과 연계되었을 때에는 나름의 의미와 역할을 가지지만 국민MC가 제거된 다른 이들 간의 관계에선 딱히 특별한 이야깃거리를 뽑아내지 못해요. 김종국과 하하+게리의 아옹다옹을 강조하기도 하고, 송지효와 하하의 러브라인을 짐짓 꾸미려 노력하기도 하지만 크게 부각되지는 못하죠. 오직 유재석을 정점으로 뻗어져있는 이상한 관계. 런닝맨은 지나쳐 보일 정도로 유재석 일인에게 많은 것을 기대고 있어요.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이런 유재석 일변도의 의존이 시간과 함께 해결되기엔 런닝맨 자체가 가진 한계가 너무나 뚜렷하다는 것입니다. 고정 출연자들 서로가 익숙해지고 관계를 형성하며 그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기에는 런닝맨의 속도감은 너무나 빠르고, 그 속도는 방송분이 2주에서 1주로 줄어들면서 더욱 빨라졌습니다. 밤새 건물 안을 뛰어다니며 게임을 소화하기도 벅찬 시간에 각각의 캐릭터를 구축하고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힘겨울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특급 게스트까지 2~3인이 매번 추가되는 바람에 가뜩이나 뿌리가 약한 고정 멤버들의 활약도, 게스트의 부각도 어중간해지는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매주 초대되는 출연자들의 면모는 쟁쟁하지만 정작 기존 멤버들과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인상적인 활약은 알아서 자기 분량을 챙겨먹은 김신영 정도밖에는 없었어요.

단 6회만 방송되었을 뿐이고 내용은 점점 더 안정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유재석만 바라보는 그들에게서 매주 새롭게 기대할만한, 관심이 가는 포인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딱 유재석과 그의 사람들이 좌충우돌하는 게임 버라이어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전형적인 원맨쇼가 이어진다면 런닝맨은 결코 남자의 자격은커녕 뜨거운 형제들도 능가할 수 없어요. 다행히 점점 더 커피 한잔 같은 정적인 포맷에서의 상황극들이나, 수시로 시도되는 유재석 없는 이들 사이의 모습들이 강조되고는 있지만 유재석의 굴욕이 극복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국민MC가 혼자서 분발하고 뛰어다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뒷받침과 유재석 없이도 각자 알아서 만들어가는 호흡의 자연스러움이 좀 더 빈번하게, 좀 더 강조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것에만, 보다 색다른 장소, 화려한 게스트를 초대하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런닝맨의 생명력은 짧아질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안정되어 간다고 해도 이대로는 뜨거운 형제들과의 관계를 확고하게 구축하고 있는 박명수를 이기기에도 너무나 힘겨워 보인다는 말입니다. 잘나가는 무한도전과 1박2일에 비교하지 않더라도 동시간대의 경쟁자인 남자의 자격이 아저씨들의 사랑스러움으로, 뜨거운 형제들이 아바타라는 방법을 매개로 의외성과 짓궂음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왔다 갔다 하며 웃음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람,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입니다. 조금 덜 달리고, 게임을 조금 덜 소화해도 괜찮습니다. 다른 이들에 비해 가장 늦게 시작해서 여전히 기초를 단단히 쌓아가야 하는 그들이 방점을 찍어야 하는 부분은 ‘런닝’이 아니라 ‘맨’이에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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