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가 궁궐을 나오고 벌써 6년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별 탈 없이 아들 금이는 자랐으나 마찬가지로 별다른 희소식도 없었다. 지척에 지아비를 두고도 만나지 못하는 동이의 마음이나 아비를 찾아 궁궐로 몰래 들어간 금이의 철없는 행동 모두가 가슴 아픈 모습이다. 그러나 태어나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 기막힌 부자가 우연히 상봉하는 장면은 다행스럽기도 하면서도 보는 이의 가슴을 짠하게 만들었다.

호부호형 하지 못한 홍길동의 한이야 익히 알고 있으나 아들을 아들이라 부르지 못하는 아비의 가슴이 그에 부족함 없는 고통이라는 것을 또한 알 수 있었다. 천인들을 위한 잔치에 몰래 끼어들어갔다가 숙종은 만나지 못하고 우연히 세자와 장희빈을 만난 동이의 아들 금은 슬픔에 빠져 궁궐 근처에서 쪼그려 앉아 울고 있었다. 잠행나온 숙종이 우연히 아이 우는 소리를 듣고 자연스레 발길을 옮겨 금이를 달래주었다.

서로를 아비와 아들로 알아보지 못하는 비극적인 장면이지만 한편으로는 코믹한 설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아비이자 이 나라의 임금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여섯 살짜리 왕자는 자기를 달래준 선비에게 고마움(어쩌면 아비의 정)을 느껴 입을 연다.

“자넨 누구인가? 이름이 뭔가?”하고 숙종에게 하대를 한다. 사실을 안다면야 있을 수 없는 패륜이자 이런 불충이 없는 일이지만 서로를 모르는 상태이니 듣는 숙종도 어이가 없을 뿐이다. 그야말로 맹랑한 놈이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들 생각에 귀엽다는 생각도 떠올라 금이의 말을 더 듣고자 했다. 이윽고 금이는 “내 비록 행색이 이렇다 하나 난 엄연히 주상전하의 피를 이은 왕자란 말이다”라고 충격적인 말을 한다.

왕의 절제된 고통을 표현한 지진희의 명품연기 더 애틋해

금이를 만나 나중 동이까지 먼발치에서 보게 되는 숙종의 기막힌 표정의 변화만으로 45화는 다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진희의 감정표현은 너무 격하지도 그렇다고 부족함도 없는 왕의 비애를 정말 실감나고 적절하게 표현했다. 동이를 만나지 않겠다고 스스로 말했지만 그것이야 형식일 뿐 실제로는 동이를 지켜주기 위한 고육책이었기에 그리운 마음은 숙종 또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여자를 지켜주지 못하는 남자의 마음은 맨발로 불 위를 걷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금이의 신분을 알게 됐지만 때마침 나타난 동이로 인해서 숙종은 그 당황스러운 순간을 오히려 잘 모면할 수 있었다. 동이나 나타나지 않아 계속 금이가 있었다면 6년의 세월을 접었다가 한 번에 펼친 듯한 그 순간을 임기응변으로 대처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정말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나준 동이는 정말 내조를 잘하는 후궁임에 틀림없다.

그러고 숙종은 몸살 앓듯이 그리움에 시달렸을 것이다. 동이 하나도 벅찬데 이제 아들까지 눈으로 확인했으니 그 감정을 어찌 임금인들 감출 수 있겠는가. 그렇게 몇 날을 보냈을까. 결국 숙종은 아들을 찾아 나섰다. 그 재회의 장면은 풍산동이와 한성부 판관의 재탕이었다. 그런데 숙종의 가짜 신분만 재탕된 것이 아니라 동이를 처음 만났을 때 당했던 저질체력 숙종의 굴욕까지 재탕되었다.

서당 아이들이 금이를 골탕 먹이려고 준비한 것을 미리 기다리며 보았던 숙종이 금이에게 일러주어 둘은 대나무 장대를 이용해 거꾸로 아이들을 골탕 먹이고 함께 도망쳤다. 그러나 동이를 처음 만났을 때는 나이라도 젊었지 이제는 나이도 많이 먹은 숙종이 그때보다 체력이 좋아졌을 리는 만무하다. 당연히 얼마 가지 못해 주저앉아 숨을 헐떡인다.

때 금이는 “사내대장부가 어찌 이리 약한가. 양반이라 그런가. 겨우 이 정도 뛴 거 같고..쯔쯔”한다. 그러자 숙종은 처음 동이를 만났을 때를 회상하고 “왕자마마께서 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하고는 자신을 한성부 판관이라며 아들 금이에게 절을 한다. 숙종은 동이를 처음 만나서 저질체력으로 굴욕을 당하더니 세월이 지나 아들을 만나서도 똑 같은 말을 듣게 되었다. 모전자전이고 숙종으로서는 대를 이은 굴욕이 아닐 수 없다. 6년만이자 처음인 부자상봉을 무겁지 않고 동이와의 첫만남과 연결시켜 가볍게 그린 제작진의 자세가 마음에 든다.

한편 처음 동이를 만나서는 왕의 신분으로 땅에 엎드려 발판노릇을 했는데, 아들에게는 또 어떤 굴욕을 당할지 궁금해진다. 아쉽게도(?) 예고로는 동이 사가의 화재와 숙종과 금이의 물장난 장면 정도만 나왔지만 은근히 숙종의 굴욕을 기대하게 된다. 지엄하고 단호한 숙종의 모습도 좋지만 지금까지 동이를 빠짐없이 봐왔다면 역시나 허당숙종의 친숙한 모습 또한 그리울 것이기 때문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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