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이상한 일이 있었다. 중앙일보 3일자 1면에 바른미래당 박선숙 의원의 입각설이 실린 것이다. 뒤쪽에는 논설위원급 기자의 해석을 실은 심층기사도 덧붙여졌다. 반나절 만에 청와대, 여당, 박선숙 의원 본인이 사실이 아니라는 취지로 해명하면서 해프닝으로 끝나는 분위기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중앙일보 보도를 핵심만 간추리면 이런 얘기다. 청와대가 최근 협치를 말하는 것에는 범야권 대 범여권이라는 정계개편 구상이 맞물려 있다. 공동내각 구성을 고리로 다당제 구도를 양쪽으로 명확하게 갈라 여소야대의 한계를 극복해보겠다는 것이다.

범여권으로 상정할 수 있는 대상은 정의당과 민주평화당인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바른미래당 내의 호남 지역구 의원들이다. 이들까지 범여권으로 끌어와야 남은 바른미래당이 깔끔하게 자유한국당과 범야권을 형성할 수 있다. 그러자면 바른미래당 소속이면서 원래 범민주당 계열 출신인 박선숙 의원을 입각시키는 게 ‘신의 한 수’가 된다는 거다. 중앙일보는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이 문제에 개입돼있다고도 지적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결과적으로 다들 아니라고 했지만 내용을 잘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박선숙 카드’를 박지원 의원 측과 논의한 것처럼 보도된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사람을 놓고 얘기한 일은 없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박지원 의원도 ‘박선숙 장관’을 논한 바는 없다는 취지다. 뒤집어 보면 바른미래당의 분열을 통한 양당구도의 복원(?)을 모색한 것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중앙일보가 설익은 논의를 만천하에 공개해버리면서 ‘협치 내각’은 쉽지 않아진 것 같다. 그런데 주말을 거치면서 이 문제에 관한 또 다른 변수가 등장했다. 민주평화당 전당대회에서 정동영 의원이 대표로 선출된 것이다.

민주평화당 전당대회는 정동영 대 반(反)정동영 구도로 치러졌다. 박지원, 천정배 의원이 시작부터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며 정동영 의원 출마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언론과 여의도 관계자들은 정동영 의원의 무난한 승리를 예상했지만, 모든 선거는 나름의 경쟁구도가 있기 마련이다. 앞서 정계개편론과 연관지어 보면 이 구도는 의미심장한 데가 있다.

정동영 의원은 2007년 대선에서 당시 이명박 후보에게 기록적 참패를 당한 이후 진보적 색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해왔다. 한진중공업에서 고공농성이 이어지고 이를 지지하는 희망버스 등이 여론의 많은 호응을 얻던 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력 등이 그렇다. 정동영 의원은 한때 지금 정의당의 외연을 확장한 진보정당을 만들자는 논의에 참여하기도 했다.

민주평화당 대표 선출 이후 내놓은 메시지는 이런 행보를 상기하게 한다. 정동영 의원은 “정의당보다 더 정의롭게 가는 게 민주평화당의 목표”라며 “민주당의 우클릭을 지켜보고만 있지 않겠다”라고 했다. 부산 한진중공업에서 첫 최고위 회의를 개최하고 이후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에서 분향하겠다고도 했다. 민주평화당 차원에서 보면 명백한 ‘좌클릭’이다.

이를 단순화하자면 정계개편보다는 독자노선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정치는 생물이라고들 하니 앞으로 무엇이 어떻게 될지를 이것만 갖고 구체적으로 예상할 수는 없다. 다만 정동영 의원이 당장 선거제도 개혁을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로 언급한 것에 주목할 필요는 있다. 정동영 의원은 “5당연대를 만들어서 선거개혁을 이루겠다”고 했는데, 이럴 경우 전선은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이라는 보수정치 앞에 그어지는 게 아니라 정부 여당 앞에 놓이게 된다. 박지원 의원이 보다 강조한 ‘개혁입법연대론’과는 다소 결이 달라지는 셈이다.

물론 새로 구성될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에도 선거제도 개편을 주장하는 인사들이 상당수 포함될 걸로 보이지만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 실제로 일이 되느냐는 다른 문제다. 2020년 총선은 지금 분위기대로라면 여전히 여당의 압승이 예상되고, 때문에 구태여 선거제도를 바꿔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대표 후보로 나선 3인도 선거제도 개편을 놓고서는 서로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여론이 전폭적으로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논의가 산으로 갈 위험성이 다분하다는 것도 문제이다. 선거제도를 그저 바꾸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제대로 바꿔야 한다. 만일 ‘적폐’로 몰려있는 자유한국당이 지금과 같은 난국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오히려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수가 있다. ‘자유한국당 수혜자론’이 언제든지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만 하자면 선거제도 개편 필요성의 논리는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표의 등가성 문제도 있지만 양당제보다는 다당제가 바람직하다는 현실 인식 역시도 핵심이다. 문제는 거기에 이르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다당제’를 요구하는 세력이 스스로의 필요성을 유권자들에게 증명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거다.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복잡한 정당정치의 이론이 아니라 바람직한 정치 세력이 원내에 더 필요하다는 논리에 마음을 움직일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주요 정치 일정에서 각 당이 자기 역할을 분명히 하고 유권자들에게 나름의 비전을 보여주는데 성공한다면 선거제도 개편의 필요성도 그만큼 강조되고 다당제 구도에 기반한 ‘협치’도 성공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못할 경우 결국 누가 장관에 임명되느냐 정도의 논란만 남기고 국면은 정계개편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 점이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이다. 지금 더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것은 과연 어느 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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