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자신감입니다. 이전의 여러 선임 프로그램들처럼 얼마 못가 폐지될 것이라는, 혹은 무수히 많은 리얼 버라이어티들처럼 그들 역시도 무한도전의 짝퉁일 뿐이라는 의심과 조롱으로 가득했던 초반의 설움을 극복하고, 1박2일을 피해 유능한 경쟁자들이 동일 시간대에 수시로 편성되고 폐지되는 진정한 전쟁인 일요일 저녁 시간대에 자신들의 영역을 당당하게 개척했다는 자부심이죠. 드라마 ‘도망자’ 촬영으로 또 다시 자리를 비운 이정진을 제외한 6명이 나누는 수다 속에 묻어나오는 느긋함과 여유는 바로 그들이 버티고 견뎌온 시간이 만들어준 성취감이 만들어준 선물이에요.

이번 주 남자의 자격의 남아일언중천금 특집은 자기 딸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는 이경규의 푸념처럼 각종 장기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지친 이들에게 만들어준 잠깐의 휴식, 여유입니다. 짐짓 그동안 경솔하게 내뱉은 말들의 대가를 치르기 위한 벌칙 수행처럼 꾸미고는 있지만 그 힘겨움의 강도는 그동안 이들이 해온 것들과는 달리 잠깐의 노력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가벼운 것들이었어요. 아직 계속되고 있는 합창단, 자격증 취득이란 대형 프로젝트, 남자의 자격의 성공과 함께 점점 더 많아진 개인스케줄 탓에 바쁜 멤버들에게 이번 특집은 그야말로 편안한 쉼표였을 겁니다. (물론 24시간 금연을 단행한 김국진에겐 또 다른 힘겨운 시간이었겠지만 말이죠.)

그런데 제게는 이번 주 방송이 지금까지의 거창했던 특집들보다 훨씬 더 그들만의 장점과 개성을, 그리고 남자의 자격이 주는 재미를 전해준 내용이었습니다. 어쩌면 다른 유사한 리얼 버라이어티들이 놓치고 있는 지점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방송이기도 했구요. 화려한 게스트, 거대한 스케일, 길어지는 장기 프로젝트, 참신한 소재들이란 강박관념에 압박을 받는 프로그램들이 너무나도 많지만 이번 주 남자의 자격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의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누가 누구와 하느냐가 더 문제라는 ‘사람’의 중요성을 말해주었거든요.

별다를 것 없는 이야기들, 정말 그냥 툭툭 던져놓은 이야기들을 취합해서 그것을 실현시킨다는 것은 무한도전에서도 수없이 반복해서 보여준 포맷입니다. 하지만 무한도전이 엉뚱하다 못해 참신한 실현으로 놀라움과 감탄을 안겨준다면 남자의 자격은 그 방향을 전혀 다르게, 훨씬 더 인간미 넘치는 쪽으로 풀어냈습니다. 조금은 짓궂고 난데없기는 하지만 그 모두가 출연자들의 발전을 위한, 김성민의 지나가는 말처럼 개과천선 프로그램의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나타난다는 것이죠.

골초 김국진의 건강을 생각을 생각하는 24시간 금연 프로젝트, 이경규의 공부에 대한 열정을 자극하는 레벨 테스트, 부활의 인지도 영역을 점점 더 넓혀주는 김태원 국민 할매 만들기는 모두가 멤버들을 이롭게 해주는 결과물을 만들어 줍니다. 그 결과를 위한 과정들 안에는 제작진들의 멤버들에 대한 애정이자 존중이 가득 들어있고 그 마지막은 언제나 착하고 따스하게 마무리되죠. 일요일 오후, 온 가족이 즐기기에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긍정적이고 올바른 포장. 남자의 자격이 그 격렬한 경쟁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무기는 바로 이런 따스함인 것이죠.

하지만 이런 포장은 작위적이지도 억지스럽지도 않습니다. 한없이 착해 보이기엔 출연진 모두가 조금은 때 묻고 뻔뻔하고 능글맞은 어른, 아저씨들이거든요. 이런 어른스러움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개개인의 매력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능숙함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혹은 그 익숙함에서 벗어났을 때 너무나도 천진난만한 순수함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착하고 따스하지만 뻔하지 않은 매력, 출연진 모두에게 왠지 모를 동질감과 정을 시청자들이 느낄 수 있게 해주는 통로가 되어 준다는 것이죠. 출연하는 사람 그 자체에 대한 호감과 애정이 남자의 자격만큼 끈끈하게, 다정하게 다가오는 프로그램은 현재 없습니다.

출연진 개인들의 문제로 덜컹거리는 1박2일이 부러워할만한, 인기나 시청률 면에선 아직 아쉽지만 이젠 자기들이 1박2일을 능가했다고 떵떵거릴만한 성과이고 결과물이에요. 무한도전은 프로젝트 자체에 대한 감탄과 놀라움을, 1박2일은 여행지의 아름다움과 복불복의 아기자기한 긴장감을, 다른 리얼 버라이어티들은 화려한 게스트나 장소의 특별함의 화제성을 노리지만 사람의 투박함을, 그들이 품어내는 재미를 자랑하는 인간다움을 장점으로 뽐내는 힘은 남자의 자격이 압도적입니다. 아저씨들의 허세처럼 남자의 자격이 1박2일을 넘어섰다면 바로 1박2일의 전매특허 같았던 사람 냄새나는 버라이어티의 장점을 오롯이 그들의 것으로 가져왔기 때문일 거에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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