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일 문희상 국회의장의 ‘적폐청산 피로감’ 발언에 대한 반발이 크다. 문 의장은 적폐청산 피로감을 언급하면서 대신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로 집중될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문 의장의 발언이 부적절한 것은 현재만 해도 대법원 사법농단과 기무사 계엄령 문건이 한창 뜨거운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시점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아직도 사회 곳곳에 깊이 뿌리내린 적폐청산은 아직도 멀었다는 것이 시민들의 생각이다. 시민사회에서는 한 마디 말도 없는데, 자유한국당도 아닌 민주당 출신 국회의장이 난데없는 ‘적폐청산 피로감’을 거론하고 나선 것에 당황스럽다는 반응들이다.

7월 30일 오전 국회 의장접견실에서 열린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로 4대강비리, 자원외교, 방산비리 등은 아직 건드리지도 않은 상태다. 과연 국회의장 혼자서 느끼는 피로감 때문에 국가를 심각한 위기에 빠뜨린 수많은 적폐들을 그만 내버려 둬야 한다는 것인가.

문 의장이 말한 ‘피로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적폐청산의 중단은 피로감 때문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적폐가 청산되었을 때에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적폐청산은 대통령과 정부의 의도가 아니라 촛불시민의 명령이었다. 국민의 뜻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행동하는 국회가 할 말은 아니다.

그에 앞서 적폐청산 중단을 논하기 전에 국회에 똬리 틀고 있는 적폐부터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야 그나마 국회의장의 발언이라는 무게감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문 의장은 취임 초기 국회 특활비에 대해서 “없애거나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특활비 뜯어고치겠다"던 문 의장…공개 판결엔 불복 방침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그러나 최근 국회는 20대 국회 전반기에 국회가 쓴 특활비 내역을 공개하라는 법원의 1심 판결에 불복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활비 제도 개선과 사용내역 공개는 별개라는 취지라는 것이다. 이미 두 차례나 국회 특활비 공개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그런데도 또 법원 1심판결에 불복해 항소한다는 것은 국회가 법을 무시하는 태도라고 봐야 한다.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자신의 말도 뒤집는 국회의장이라면 기대를 너무 일찍 접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그런 한편에 정의당은 고 노회찬 의원에게 지급된 마지막 특활비를 반납했다. 노 의원이 생전 특활비를 반납하는 동안 그에 동참한 다른 의원은 없었다. 양심마저 없는 모습이었다.

'김영란법 저촉 가능성' 의원 38명…문희상 의장 포함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거기서 끝이 아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청탁금지법 위반 가능성이 있는 국회의원이 38명에 달했다. 이런 부당지원을 받고 해외출장을 나간 공직자가 총 261명이나 된다. 그렇지만 의원들의 실명은 공개하지 않고 보호한다고 한다. 그 명단 안에 문희상 국회의장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꽤나 충격적이다.

무엇보다 적폐청산을 하면 먹고사는 문제를 못한다는 생각부터가 잘못이다. 국가의 기능, 국민의 수준을 폄하하는 시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은 ‘적폐청산 피로감’보다는 국회피로감이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법안이 1만 건이 넘었다. 거기에 수많은 민생법안이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적폐청산이 문제가 아니라 국회가 제 기능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새로운 국회의장이 들어서도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는 국회 피로감이 진짜 문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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