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PD수첩>이 지난주에 이어 故 장자연 사건을 다뤘다. 지난 시간 다양한 가해자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면 2부에는 당시 공권력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었다. 고인의 가족에 의해 고소를 당한 가해자들, 이를 수사하는 경찰이나 검찰 모두 수사 의지가 없었다.

진실과 권력;
죽음으로 진실을 밝히려 했던 고인의 의지마저 짓밟은 권력자들

시간이 제법 지났지만 故 장자연 사건은 섬뜩하게 다가온다. 왜 많은 시민들이 새 정부 들어 이 사건을 재수사 해달라고 요청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만큼 사건은 충격적이었지만 결과는 참혹했기 때문이다. '장자연 리스트'에 올려진 자들은 누구도 처벌 받지 않았다.

소속사 사장과 매니저만 처벌받았을 뿐 성접대를 받았다고 기록된 유력 인사들은 제대로 수사조차 받지 않은 채 사건은 끝났다. 기본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일들이 9년 전 대한민국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었다. 주목 받기 시작한 신인 여배우가 극단적 선택을 하며 세상에 알리려 했던 진실을 공권력이 막았다.

MBC PD수첩 ‘故 장자연 2부’

<PD수첩>이 2회에 걸쳐 이 사건을 집중 조명한 데는 분명한 목적과 이유가 있다. 특정 인사나 특정 매체를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 특권 의식과 그에 기생하는 권력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기 위함이었다.

고인이 존재하고 죽음으로 진실을 밝혀 달라는 유서까지 남겼다. 억울함이 있어 풀어 달라는 이가 있다면 그에 대해 진실을 찾는 것은 남겨진 자들의 몫이다. 진실이 무엇인지 추적하다 보면 당연히 결과는 나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故 장자연 사건에서 진실 찾기는 없었다.

과거나 지금이나 가장 큰 논란은 유력 언론사인 조선일보 방 사장이다. 당시에도 논란이 되었던 방 사장과 고인과의 만남은 제대로 된 수사도 없이 유야무야되었다. 그 과정에서 조선일보의 집단적 반발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故 장자연 사망 초기 그녀의 편에 서서 기사를 쓰던 논조가 하루아침에 바뀌었다.

MBC PD수첩 ‘故 장자연 2부’

김대중 논설위원의 글 하나가 조선일보 전체의 흐름으로 이어졌다. 그 이유는 고인의 유서에 조선일보 방 사장이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故 장자연 사건을 국회 질의에서 언급했던 이종걸 의원 인터뷰를 보면 당시 분위기가 어땠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조선일보 방 사장에 대해 언급을 했다는 것만으로 고소에 협박까지 이어지는 상황은 당혹스럽다. 이제는 국회의원이 된 강효상 당시 조선일보 경영기획실 실장이 직접 이 의원에게 항의하며 고소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은 씁쓸하다.

실제 조선일보는 이 의원과 그의 말을 받아 보도한 KBS, MBC에 대해 10억 원에 달하는 고소를 하기까지 했다. 이런 식의 겁박을 버텨낼 수 있는 이는 없다. 현역 의원에게 면책 특권을 들먹이고, 방송사에 대해서도 이 의원의 발언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고소를 하는 행태에서 일반인들은 공개적으로 발언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지난주 <PD수첩> 방송 직후에도 방정오 사장 측에서는 보도와 관련해 고소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9년 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그 어떤 보도도 할 수 없도록 강제하고 있었다. 진실을 찾기 위해 궁금해 하는 것은 언론의 자연스러운 습성이다. 작은 의혹이라도 있다면 진실을 밝혀야 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다.

언론에 고소를 들먹이며 재갈을 물리려는 행동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많은 이들이 <PD수첩-故장자연>편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 기본적인 언론의 역할을 수행해줬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 어떤 언론도 실명을 공개하며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었다.

MBC PD수첩 ‘故 장자연 2부’

현역 의원이자 유력한 정당의 당 대표까지 지낸 인물에게 공개적으로 서한을 보내 공격하고 거액의 소송까지 집행하는 조선일보에 대해 누가 감히 정면대응을 할 수 있었을까? 현직 대통령만이 아니라 유력한 정치인들까지 불러 모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집단이 바로 조선일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과거에 비해 현재 그들의 위상이 심각한 수준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국민들에 의해 외면받기 시작하는 언론은 더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언론의 역할은 명확하다. 진실을 찾고 밝히는 것 외에는 없다.

대통령도 포토라인에 서는 세상이지만 조선일보 방 씨 일가 수사는 직접 방문해 형식적인 조서를 꾸미는 것이 전부였다. 이것도 모자라 조서를 작성한 경찰관의 이름도 존재하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조서가 법정에서 통용되는 세상이 정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조현오 경기지방경찰청장은 뒤늦게 <PD수첩>과 인터뷰에서 조선일보에게 압력을 받았다고 시인했다. 물론 압력을 가한 자들은 여전히 사실무근이라 주장할 뿐이다. 조선일보가 경찰을 어떤 식으로 관리하는지 '청룡봉사상'이 말해주고 있다.

MBC PD수첩 ‘故 장자연 2부’

거액의 상금과 1계급 특진이 주어지는 '청룡봉사상'은 경찰이 몇 배수를 뽑아 올리면 조선일보에서 최종 선택을 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이 방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당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를 방송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경찰과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으면 사건은 성립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사건 자체가 사라지게 만드는 힘. 그 권력이 만드는 부당한 범죄에 대해 <PD수첩>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대상은 조선일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누구라 해도 부당한 권력을 행사해 진실을 호도하고 막는다면 결코 좌시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언론의 역할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검찰 과거사위는 '故 장자연 사건'을 재수사하기로 했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도 이 사건을 재수사해 달라는 요청이 쏟아졌다. 과연 이번에는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 이미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피해자는 이미 고인이 된 지 오래다.

시간은 피해자의 편이 아닌 가해자의 편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진실을 애써 외면한 사회가 억울한 피해를 입고 사망한 고인의 넋을 기릴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여전히 진실을 막으려는 자들은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방 사장은 결백하니까요"라는 강효상 의원의 말이 계속 맴도는 것은 왜일까? 씁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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