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식적 사건을 이렇게 무궁무진 일으키는 정치세력이 또 있을까. 원내대표가 시민단체 대표에게 인격적 모욕을 주는 일을 망설이지 않는 사건이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성소수자이고 병역거부를 했다는 이유로 군 개혁을 주장할 자격이 안 된다는 원색적 비난을 김성태 원내대표가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성태 원내대표는 임태훈 소장의 외모까지 거론했다.

김성태 원내대표의 태도는 “메시지를 공격하기 어려우면 메신저를 공격하라”는, 논쟁의 고전적 기술을 보여준 것처럼 보인다. 31일 임태훈 소장은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김성태 원내대표에게 ‘반격’을 가했다. 극우로 커밍아웃 하겠다는 것이냐고 꼬집으며 국군 기무사령부를 감싸고 도는 이유는 무엇인지 밝히라고 한 것이다. 계엄령 및 친위쿠데타 논란과 관계된 인물이 당내에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해산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많은 사람들이 김성태 원내대표의 인권 감수성에 의문을 표하며 비난을 하고 있다. 성소수자인 것과 기무사 개혁을 주장하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두 사안을 묶어 비판하는 것이야 말로 성소수자 혐오 논리의 대표격이라는 지적도 따라 붙는다.

김성태 원내대표가 이런 비난을 예측하지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이런 주장을 굳이 꺼낸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

첫째는 김성태 원내대표의 발언이 성소수자 문제에 예민한 보수층과 극우 기독교의 지지를 호소하기 위한 걸로 보인다는 점이다. 자유한국당은 일부 지역적 정서를 중시하는 계층 외에 지지 기반의 상당 부분을 상실한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임태훈 소장의 성수소자 정체성을 굳이 상기하는 것으로 지지층의 결집을 유도할 수 있다고 본 것이 아닐까 싶다.

자유한국당이 굳이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으로 지지층 결집을 유도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이게 두 번째 측면이다. 계엄령 문건은 기무사가 과도한 권한을 바탕으로 권력을 위해 월권을 하고 상시적인 정치개입을 한 게 문제;의 본질이다. 군인권센터의 30일 폭로 내용 중에는 기무사가 과거 참여정부 시기 노무현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사이의 통화 내용을 도감청했다는 사실까지 포함돼있다. 대통령조차도 두려하지 않는 기무사의 권력은 해체에 준하는 정도까지 축소돼야 한다.

그런데 김성태 원내대표는 임태훈 소장을 이런 식으로 비난함으로써 이 문제를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로 만들고 싶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성소수자, 양심적병역거부, 시민단체를 하나로 묶어 ‘진보’의 정체성으로 규정하고 그 반대편에 있는 이들을 보수정치의 지지자들로 적극적으로 호명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3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의 이런 시도는 문건의 내용이 아니라 유출 경위를 문제 삼고 있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임태훈 소장이나 현 청와대나 국방부나 다 같은 ‘진보들’이기 때문에 자기들끼리 문서를 유출시키며 정파적 이익 추구에 매달린다는 것이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참여정부 시기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됐을 때도 기무사가 계엄을 검토했다는 주장도 했는데, 같은 맥락이다. 정작 기무사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어쨌든 김성태 원내대표가 하고 싶은 말은 계엄령 검토 문건은 기무사가 당연히 하도록 돼 있는 일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정권이 문제가 없는 일을 문제로 만드는 것에는 ‘정치적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로 이어진다.

같은 논리가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당시에도 제기됐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혐의는 사실이 아니거나 사소한 일이거나 문제가 되지 않는 수준의 것들임에도 현 정권이 ‘적폐청산’의 미명 하에 ‘정치보복’을 감행하고 있다는 게 자유한국당의 주장이었다. 청와대나 국방부가 군인권센터에 일부러 문건을 유출해 현재의 정국을 만들고 있다는 주장 역시 이런 ‘정치보복’론과 궤를 같이 한다.

여기서 관점을 뒤집으면 계엄령 문건과 관련한 수사가 이대로 진행될 경우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전임 정권의 핵심 인사나 심지어 박근혜 전 대통령마저도 책임질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본 것 아니겠느냐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니 누군가 책임질 일을 했다는 게 아니라 진보가 보수를 공격한다는 프레임으로의 전환을 이 시점에 시도하는 것 아닐까?

여기서 경계해야 할 것은 진보 대 보수의 구도 속에서 ‘보수 기무사’를 ‘진보 기무사’로 바꾸는 것으로 개혁을 완수하려는 태도가 존재하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현재 국방부 기무사 개혁위가 논의하고 있는 문제가 이와 연관된다. 곧 개혁안 발표를 준비 중인 기무사 개혁위는 기무사를 현재의 독립된 사령부 형태에서 국방부 직할 본부로 축소하는 방안과 외청으로 독립기관화 하는 방안을 놓고 내부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전자는 비기무사 출신 위원들이, 후자는 기무사 출신 위원들이 주장하는 안이다.

양쪽의 논리를 보자면 이렇다. 국방부 직할 본부 축소안을 지지하는 쪽은 독립기관화에 국회 입법이 필요해 개혁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점과 기무사가 국방부 장관을 제치고 청와대와 직거래(?) 하는 관행이 이어질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반대로 독립기관화를 주장하는 쪽은 기존 방첩기능 약화와 군 통수권자의 통수권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다시 말하자면 군 통제를 위해 청와대와 직접 정보를 주고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기무사의 힘은 청와대가 기무사 정보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에 달려 있다. 권력의 입장에서는 기무사만 장악하면 군 전체를 속속들이 좌지우지 할 수 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기무사의 월권행위가 가능한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외면할 수 없다. 송영무 장관과 청와대 민정라인이 대립했다는 얘기도 있었고 이석구 기무사령관이 송영무 장관을 들이받으면서 동시에 청와대를 바라본다는 해석도 있었다. 기무사 개혁이 제대로 될 것인지 우려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유한국당이 ‘진보 대 보수’ 구도의 함정을 팔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근거이다. ‘정치보복’론은 곧바로 ‘내로남불’론으로 이어지기 마련이고 그것은 기무사의 문제적 기능이 존속되느냐에 달렸기 때문이다. 김성태 원내대표의 망언을 비웃고 말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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