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일 SBS <김승현 정은아의 좋은 아침>의 한장면이다.

아무리 봐도 어울리지 않는다. 가수 조영남, 소설가 김홍신, 국회의원 김한길이 절친한 친구라고 한다. 대한민국이 다 아는 자유주의자 조영남과 대한민국에서 가장 원칙대로 살 것만 같은 김홍신의 우정이 신기하다. 이제는 정치가로 더 유명한 소설가 김한길이 이들과 긴 세월을 보내왔다는 것도 믿기지 않는다.

물론 가장 신기한 일은 이 세명이 뜬금없이 아침 토크쇼에 나왔다는 점이다. 색안경을 끼고 보자면 끝이 없다. 다가올 총선을 대비한 전략이 아니겠냐는 의심도 들고, 신작 소설을 알리려고 출연한건가하는 생각도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그들은 이미 너무나 유명인이다. 굳이 '홍보용' 방송출연을 할 이유가 없어보였다.

이런 계산을 하지 않고 본다면 모처럼 재미있고, 따뜻한 아침토크쇼였다. 세명이 원더걸스 흉내를 낸 것도 아니고, 여느 토크쇼처럼 세명 사이에 있었던 포복절도할만한 에피소드를 끌어낸 것도 아니다. 단지 어려운 시절을 보냈던 이야기를 마치 남의 일처럼 툭툭 뱉었다. 서로를 칭찬하기 보다는 괜한 흉을 봤다. 하지만 짠한 감동을 줬다.

이런 식이다. 김홍신이 몇해전 아내와 사별하자, 조영남이 와서 그랬단다. "봐라. 이혼안하고 끝까지 살더니…." 자칫 결례가 될 수도 있는 말이지만, 김홍신은 그것이 친구 조영남의 방식임을 알기에 위로가 되었다고 말했다.

조영남도 할말이 많다. 그냥 편한 친구들이었는데, 두명 모두 갑자기 국회의원이 되고 보니 거리감이 느껴지더란다. 정치인이 되어버리니 자신의 콘서트에 놀러오는 것도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한때는 관계가 소원해 지기도 했단다.

김한길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본인이 1980년대에 미국에서 빈손으로 돌아와 조영남과 함께 살던 시절 얘기다. 당시 조영남은 이혼 직후였고, 가수로서 인기를 끌던 시절도 아니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낸 것이다.

이때를 그는 "똑바로 쳐다보면 서로의 가슴에 휑하게 뚫린 것이 보였지만, 그걸 모른채 하고 쓸데 없는 말이나 하면서 보냈다"라고 웃으며 회고 했다.

당시 두 남자는 몇시간씩 방바닥에 누워 벽지에 있는 무늬를 보면서 미로를 그려보기도 하고,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화개장터>를 작사, 작곡하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두런 두런 옛 이야기를 나누는 세남자를 보고 있으면 부러움이 밀려온다.

방송에서 그들은 "인생은 예기치 않게 흘러간다"는 말을 했다. 상상도 못했던 실패를 맛보기도 하고, 예상치 못했던 영화를 누릴 수도 있는 의미다. '늙은 오빠'들이 60살이 가까이 와서야 내린 결론이다.

이 세명은 이미 긴 시간을 함께 보냈고, 앞으로도 함께 늙어갈 것이다. 아마도 방송에서처럼 만나면 늘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힘들때 가장 먼저 손내밀어 주며 살듯 했다. 그것만으로도 남은 인생이 얼마나 든든할까?

여기에는 서로에 대한 '존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인 듯했다. 세명 모두 개성도 확연히 다르고, 나이 차이도 많았다. 하지만 각기 다른 삶의 방식을 인정하고, 현재의 처지와 상관없이 각자가 가진 재능들을 존경하는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

지루할때 함께 놀아줄 친구를 찾기는 참 쉬워진 세상이다. 주말이 허전하다면 인터넷 동호회라도 가입해 정기모임에 나가면된다. 누구라도 좋으니 대화를 하고 싶어진다면 채팅사이트를 찾으면 된다. 괜히 어딘가에 시비걸고 싶어질 때면 댓글이라도 달며 시간을 보내면 된다.

하지만 진짜 위로가 되고, 함께 늙어갈 친구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방송에서 들었듯이 자신과 친구의 인생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어떤 일이 생겨도 자신은 친구와 함께 할 것이라고 과신해서도 안된다. 여기에다 서로 존경하는 '친구'를 찾는 것은 더욱 어렵다.

올해는 곁에 있는 친구에 대해 좀더 진지해지자는 목표를 세워도 좋겠다. 그게 가장 큰 보험이다.

방송은 SBS 홈페이지(http://tv.sbs.co.kr/morning)에서 '유료'(500원)로 다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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