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노회찬 원내대표의 장례식은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머리를 숙이고 조문객을 맞으면 그들의 신발을 내내 보게 됩니다. 잘 닦여진 구두도 있지만, 낡고 닳은 작업화에, 어떤 이는 절을 할 때 뒤꿈치가 헤진 양말을 신었습니다. 살아생전 구두 한 켤레로 사시사철을 지내며 낡고 닳은 구두를 신고 다닌 대표님이 생각났습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

26일 고인의 추모제가 열린 서울 연세대 대강당의 1600석 규모의 좌석은 식 시작 전부터 추모객들로 가득 메워졌다. 미처 강당 안으로 입장하지 못한 1천여 명의 추모객들은 추모제가 끝날 때까지 강당 앞에 마련된 대형 화면을 통해 추모제를 지켜보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고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등진 지 나흘 째, 고인을 기리는 추모제가 서울과 창원에서 동시에 열렸다. 저녁 7시부터 시작된 추모제에는 고인의 넋을 기리기 위해 모여든 시민들로 줄을 이었다. 단상에 내걸린 현수막에는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이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26일 고 노회찬 의원 추모제가 열린 연세대 대강당 앞에서 시민들이 고인의 넋을 기리고 있다(미디어스)

이날 추모제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으로 시작돼 고인이 평소 가장 좋아했던 노래로 알려진 '그날이 오면' 제창으로 마무리됐다. 엄숙한 분위기 속 고인을 회고하는 영상과 지인들의 추모사가 이어진 가운데 추모제에 참석한 시민들은 눈물을 흘리고, 박수를 보내고, 때로는 웃어보이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26일 고 노회찬 의원 추모제 자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은 고인을 회고하는 영상과 추모사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미디어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추모사에서 "그는 언제나 일하는 사람과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우리 사회 약자들의 길벗이었습니다. 격한 정치 현장에서도 재치와 유머를 잃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탁월한 정치인이었습니다"라며 "그는 자신이 지켜야 할 고단하고 약한 사람들의 곁에 늘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꺼이 마중물이 되었습니다"라고 고인을 회고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추모사에서 "그는 언제나 일하는 사람과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우리 사회 약자들의 길벗이었다. 그는 자신이 지켜야할 고단하고 약한 사람들의 곁에 늘 서 있었다"고 고인을 회고했다(미디어스)

노 의원 생전에 그를 한 번도 형이라고 불러보지 못했다는 유시민 작가는 추모사대신 짧은 편지를 써왔다며 "회찬이 형, 다음 생에는 더 좋은 곳에서 태어나세요. 형! 완벽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이어서 형을 좋아했어요. 잘 가요, 회찬이 형. 아시죠. 형과 함께한 모든 시간이 좋았다는 것을요"라고 낭독했다.

유시민 작가는 이날 추모제에서 노회찬 의원 생전에 형이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며 "잘가요, 회찬이 형. 아시죠. 형과 함께한 모든 시간이 좋았다는 것을요"라고 추모사를 낭독했다(미디어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저희는 늘 대화를 침묵으로 했습니다. 침묵이 믿음이고, 위로고, 이심전심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침묵하면서 기도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며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수많은 번뇌의 나날로 날밤을 보냈을 대표님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비통한 심정을 표했다.

김승하 전국철도노조 KTX 열차승무지부장도 단상에 올라 추모사를 낭독했다. 노회찬 의원의 정치인으로서의 마지막 메시지는 KTX 승무원들을 향한 축하 인사였다. 김 지부장은 "KTX 승무원의 해고 투쟁 4526일, 그 시작과 끝에 함께 해주신 저희들에겐 항상 따뜻한 삼촌 같으셨던 분, 노회찬 의원님은 늘 소수 약자를 위해 싸우셨습니다. 노회찬 의원님은 강자와의 싸움에 망설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가운데 유머와 품위도 잃지 않으셨습니다"라며 "이제 의원님이 남기신 뜻, 세상의 모든 약자들이 모여 펼쳐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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