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는 사업인가? 공공재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물론 균형을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인간의 생명을 관리하는 일이란 점에서 특별한 분야라는 것은 분명하다. 국가 운영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가 개인의 몫으로 넘어가는 순간 어떤 식으로 붕괴되는지 미국의 사례로 충분히 알고 있기도 하다.

모든 것은 돈이 아니다;
근로장학생 출신 구승효 사장과 이 원장 애제자 예진우 본격적인 대결 시작

젊은 나이에 재벌그룹 계열사 사장까지 올라선 입지전적 인물인 구승효. 재벌가 근로장학생이라 불리면서도 성공을 위해 달려왔던 승효는 그룹사 사장 회의에서도 월등한 능력으로 압도하지만, 재벌 회장의 차가운 시선은 조롱에 가깝다. 재벌 3세에게 비슷한 연배의 구승효는 보이지 않은 경쟁관계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오직 성공만을 위해 달려왔던 구승효에게도 병원은 쉽지 않다. 오직 이익을 위해서는 뭐든 다 하는 그가 재벌사가 산 대학 산하 병원 총괄사장으로 임명되었다. 유통회사 사장으로 뚜렷한 실적을 냈던 그는 2주 전부터 상국대병원 실적 개선을 위한 준비를 해왔다.

JTBC 월화특별기획드라마 <라이프(Life)>

파견 가능성과 보건복지부에서 지원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상국대병원에서 적자가 가장 큰 세 과를 지역으로 내려 보내기로 결정했다. 응급의료센터,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가 바로 그곳이다. 필수과이지만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 구승효는 대학병원 수익에 가장 큰 걸림돌인 이곳만 치워도 큰 이익을 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의사도 아니고, 병원 경험도 없는 구승효에게 그곳은 그저 다른 곳과 다르지 않은 사업체일 뿐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근무하는 의사나 간호사들은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모두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돈과 명예보다는 의료진이라는 사명감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존재한다.

의료진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구 사장은 잔인한 방식으로 의사들의 자존심에 상처 냈다. 의료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언급하며 서울과 지역의 극심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왜 의사들은 직접 나서지 않느냐는 발언은 당연하다. 의사들 수를 늘리면 문제해결이 되지만 당연히 월급은 적어질 수밖에 없다.

수익이 주는 문제로 의사 수를 늘리지 못하는 상황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문제다. 의대를 늘리고 의사 수를 확대해서 현재의 의료 시스템을 변경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의사들은 이를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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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승효와 예진우의 대립 구도는 그래서 흥미롭다. 이들의 대결을 통해 의료 시스템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이 옳다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혼재된 상황이 곧 현실이다. 이익을 위해 수치만 보는 구승효로 대변된 재벌가와 오직 자신들의 편리만 생각하는 의사 집단의 이기심들도 <라이프>에서는 적나라하다.

예진우는 노조에 있는 간호사를 통해(아직 정확하지는 않지만 상황으로 추측되는) 내부 매출 내역을 확보했다. 그 안에 수익 하위 3개 팀이 지역으로 간다. 구 사장의 논리가 깨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문건에 모두 드러나 있었다. 이를 공개한 것은 본격적인 대결을 신청하는 것과 다름없다.

내부 게시판에 올렸지만 이 내용이 어디까지 퍼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예진우와 구승효의 본격적인 대립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故 이보훈 원장의 이름으로 올려진 내부 문건은 상국대학병원 의료진들을 흔들기에 부족하지 않다. 병원을 접수하러 온 재벌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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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인원만이 볼 수 있는 중요한 매출기록이 공개되자, 구승효는 가장 강력한 방법을 동원하다. 사내 구조 조정팀을 보내 병원 자체를 철저하게 분해해서 기업 마인드로 길들이는 방식이다. 병원의 특수성은 배제된 채 오직 기업 시스템으로 맞추려는 모습은 수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의사들을 가지고 노는 패기 넘치는 젊은 사장의 발언을 들으며 진우는 기시감을 떠올렸다. 이 원장 장례식장 앞에서 부원장과 다투던 과정에서 나왔던 발언들. 그 내용은 모두 사장에게서 나왔던 것이란 확신을 품게 된다. 이는 이 원장 죽음에 대한 의문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구 사장의 부임과 관련해 가장 큰 대립각을 세웠던 이가 고인이 된 이 원장이었다. 그런 이 원장이 갑자기 사망한 후 구 사장의 행동이 구체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미 사장 편에 선 부원장은 수수방관으로 협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응급의학 센터장인 이동수에게 문건을 보여주고 반격을 하려 했지만, 이미 그는 다른 병원 응급의료센터를 알아보고 있다. 지역으로 내려가느니 다른 곳으로 가 서울에 남겠다는 의지를 품고 있는 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문건이 아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흉부외과 센터장인 주경문을 찾아가지만 연이은 수술로 만나볼 수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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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는 그곳에서 수간호사에게 타박만 들었다. 수술을 거부하지 못하는 주경문은 응급실에서 보내는 환자들을 수술하느라 진땀을 뺀다. 그리고 간호사들 역시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수술로 녹초가 될 지경이다. 의사를 더 뽑아 환자를 치료하고 수술하게 하면 되지만 그게 되지 않는다.

수술실 한구석에서 시체처럼 잠이 든 주경문. 수술실을 방문했던 구 사장은 처음에는 황당해 했지만, 그게 주경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측은함이 든다. 대부분이 상국대 의대 출신들인 이 병원에서 지역 의대 출신인 주경문은 한동안 왕따를 당했었다. 하지만 우직하게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는 그는 36시간 연속 수술을 하는 등 워커홀릭으로 살아가고 있다.

승효는 어쩌면 주경문에게서 자신을 봤을지도 모른다. 화정그룹 장학생 1기 출신으로 대학 시절부터 1대 회장의 신임을 얻었던 그는 젊은 나이에 그룹 계열사 CEO 자리까지 올랐다. 회장의 숨겨둔 아들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실력으로 증명했다. 강성 노조가 있는 화정운수 사장으로 다시 한 번 존재감을 알린 승효는 병원총괄 사장이 되었다.

기존의 방식과 전혀 다른 병원이라는 공간. 병원 내부 사정을 상세하게 알리는 '먹깨비'가 누구인지 아직 모른다. 다양한 채널을 동원해 정보를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큰 그림을 그리는 승효가 인간을 살리는 병원이라는 곳이 자신이 몸담았던 기업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 곧 <라이프>가 하고 싶은 이야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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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효가 알게 되는 가치는 곧 우리 사회에서 병원 영리화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짓인지 깨닫게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사람 목숨마저 돈이 우선이 되는 사회는 절망일 수밖에 없다. 그 과정은 진우와 승효의 대립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날 예정이다.

흔하디흔한 의학 드라마가 아니다. 달달한 사랑이야기도 나올 가능성이 없다. 오히려 진우의 내부 시선으로 보이는 상황들이 시청자들에게 혼선을 야기할 정도다. 하반신 불구인 동생이 자주 등장하는 그 과정은 결국 진우가 가지고 있는 동생에 대한 무게감이자 원죄 의식이기도 하다.

살아있는 캐릭터. 원장의 죽음 뒤 숨겨진 진실. 이수연 작가 특유의 스타일이 보다 무게감 있게 담겨진 <라이프>는 전작인 <비밀의 숲>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사회적 문제를 미스터리 방식으로 흥미롭게 풀어가는 이수연 작가의 매력이 제대로 발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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