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시청자가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프로그램을 볼 수 있게 하는 VOD(Video On Demand, 주문형 비디오) 서비스의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시·청각장애인들은 여전히 보고싶은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방송사 편성 시간에 맞춰 TV앞에 자리해야만 한다. VOD 서비스에는 대부분 자막, 해설방송, 수어 등의 장애인을 위한 방송 서비스가 적용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은 여전히 프로그램 시청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시청자미디어재단에서는 장애인방송 VOD 서비스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시·청각장애인 대표, 방송 종사자, 방송 사업자, 법률 전문가 등은 급변하는 미디어환경 속 국내 장애인 VOD 서비스 활성화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다. 다만 문제 해결 방법에 있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사진=istockphoto by gettyimagesbank)

이날 발제를 맡은 최은경 성공회대 교수는 "국내 방송의 자막, 수어, 화면해설 방송은 아직 전통적인 TV를 통한 제공에 한정돼 있다"며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장애인 방송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장애인 VOD 서비스 활성화 방안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2010년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에 따라 장애인방송 제공이 의무화됐다. 이후 2011년 개정된 방송법은 '방송사업자는 장애인의 시청을 도울 수 있도록 수화·폐쇄자막·화면해설 등을 이용한 방송을 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주무부처인 방통위는 '장애인방송접근권 보장에 관한 고시'를 제정했다. 그러나 국내 현황은 폐쇄자막 100%, 화면해설 10%, 수어 5% 등 의무편성비율에 머물러 있으며 이마저도 필수지정 사업자 중 KBS, EBS 등의 지상파 방송사 정도가 온전히 수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청자미디어재단이 2017년 278명의 시청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장애인방송 활용 실태와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VOD 서비스 관련 화면해설 방송의 필요성 정도는 61.4점, 자막방송 78.6점, 수어방송 75.5점으로 100점 만점 기준 60~70점의 높은 수요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비스가 제공되면 이용하겠다는 응답은 대부분의 세대에서 70~80점대로 조사됐고, 장애인 VOD 서비스로 이용하고 싶은 프로그램 종류는 드라마, 뉴스, 영화, 다큐멘터리, 예능 등의 순이었다. 장애인 VOD 서비스 활성화 수요가 높으며 드라마, 뉴스 등으로 대표되는 방송사의 '킬러 콘텐츠'에 대한 장애인들의 접근 수요가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간담회에 참석한 각 방송 주체들은 장애인 VOD 서비스 활성화 필요성에 입을 모아 공감했다. 그러나 문제를 해소하는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소 엇갈렸다.

강민석 YTN PD는 장애인 VOD 서비스 활성화를 위해서는 유료방송 사업자가 장애인 방송을 일부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강 PD는 "유료방송 사업자는 가입가구 단위로 수신료를 받고 있으며 VOD를 판매하여 직접적으로 수익을 내고 있다"며 "VOD 서비스 시 장애인방송을 일부 시행해야한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2017 방송사업자 재산상황 매체별 현황'에 따르면 유료방송사업자의 방송 매출은 광고, 수신료 등에서 전년대비 성장세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 IPTV의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IPTV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에 지불하는 프로그램 사용료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수익 측면에서 유료방송 사업자가 장애인 VOD서비스 활성화의 일정부분을 담당해야 한다는게 강 PD의 설명이다.

또 강 PD는 "현재 IPTV의 고시의무는 자막 70%, 화면해설 5%, 수어 3%로 정해져 있지만 직접사용채널과 지역채널 대상으로 한정돼 장애인방송 필수지정 방송사업자 대비 굉장히 미비한 수준"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반면 전경미 KT smartVOD팀 과장은 "플랫폼 사업자는 자막 등을 자체적으로 제작할 수 없다. 플랫폼 사업자들은 콘텐츠를 돈을 주고 사 오는 것이며 콘텐츠 제작사에 소유권이 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전 과장은 장애인 방송 제작에 대한 전문성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다. 전 과장은 "플랫폼 사업자는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소비자에게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콘텐츠 제작사가 장애인방송 VOD를 제공하는 구조가 아니라 전문단체 등을 통해 제공 받아 편성되어야 하는 현재 상황 때문에 최신작을 제공하기까지 시간이 걸려 사업자 입장에서는 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애인 VOD 서비스를 두고 콘텐츠 제작자와 플랫폼 사업자의 입장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장애인의 시청접근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영국의 경우 장애인방송 의무고시율이 한국과 같이 자막방송 100%, 화면해설 방송 10%, 수어 5%로 같음에도 자발적인 노력을 통해 높은 제작률을 보이고 있다. 최은경 교수는 "영국 방송사업자의 장애인방송 의무고시율은 한국과 같다. 하지만 화면해설의 경우 방송률이 평균 30%이고 BBC 등 공영방송국은 50%도 넘는다"며 "강압적인 제재보다는 한 달에 2~4회 방송국, 관련 협회, 제작사가 만나는 자리를 자발적으로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 보다 이용자 중심의 실효성 있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