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김병준 체제가 어찌됐건 삐걱거리며 출발을 했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19일 취임 후 첫 인선으로 사무총장에 김용태 의원을, 비서실장에 홍철호 의원을 임명했다. 두 사람은 이른바 ‘복당파’로 분류된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또 신임 여의도연구원장 자리에 친박계로 분류되는 김선동 의원을 앉혔다. 마찬가지로 친박계로 수석대변인을 맡고 있는 윤영석 의원은 유임됐다. 결론적으로 친박과 복당파를 모두 배려한 것이다.

각자가 맡고 있는 역할까지 종합해보면 미묘하다. 김병준 비대위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 인적청산의 키를 쥐고 있는 사무총장 자리가 복당파로 넘어간 반면, 김병준 비대위원장 본인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노선을 주도할 수 있는 여의도연구원장은 친박계가 맡았다. 혁신을 강행한다고 볼 수도 있고 화합을 모색한다고 볼 수도 있는 애매한 진용인 셈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김병준 비대위원장 본인의 처지와 당내 계파 구도 때문이다. 친박계와 복당파는 김병준 비대위원장의 색깔을 놓고 서로 동상이몽 하고 있다. 복당파는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과거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일했고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혁신을 이뤄줄 것을 기대한다. 반면 친박계는 김병준 비대위원장의 야권 ‘인맥’이 친박계에 걸쳐있고 박근혜 정권에서 거국내각의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었다는 이력 등을 근거로 ‘친박 말살’의 수준까지는 이르게 하지 못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을 둘러싼 골프 접대 논란은 이런 상황을 잘 드러내는 사례이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을 대상으로 골프 접대를 했다는 인물은 함승희 씨다. 함승희 씨는 친박연대에서 서청원 의원과 함께 활동했고 ‘포럼 오래’라는 박근혜 전 대통령 외곽 지지조직을 만들어 운영했으며 2013년 박근혜 정권 시절 강원랜드 사장을 맡았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이미 ‘포럼 오래’ 시절부터 함승희 씨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아예 이 조직 산하 정책연구원의 원장을 맡았다는 이유로 과거 구설에 올랐고 국무총리 후보자로 추천됐을 때도 ‘함승희 추천설’이 나왔을 정도이다.

자유한국당은 경찰의 김영란법 위반 혐의 내사를 사실상 정권의 공작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이 사건은 오히려 당내 균형에 더 큰 영향을 줄 것 같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여러모로 친박계와 가깝다는 점이 부각되면 일종의 반동형성으로 자연스럽게 복당파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김병준 비대위원장 입장에선 “나는 친박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어떤 방식으로든 낼 수밖에 없다.

예기치 못했던 사건이 정치권으로 불똥이 튀는 사례가 최근 하나 더 있었다. 김무성 의원의 장녀와 관련한 의혹이다. 김무성 의원의 딸 김모씨는 시아버지 회사에 허위 취업하고 5년간 4억 원에 달하는 급여를 수령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무성 의원이 가족 문제로 곤란한 상황에 빠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부친은 친일 의혹에, 차녀는 수원대 교수 특혜 채용 논란에, 사위는 마약 투약 및 봐주기 판결 논란에 휘말렸었다.

복당파인 김무성 의원은 전당대회 출마가 유력한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 출마는커녕 오히려 혁신의 대상이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김무성 의원의 재등판은 친박계가 가장 경계하는 시나리오 중 하나이다. 그러니 이 사건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다뤄지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고 하겠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1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임 후 첫 인선으로 사무총장에 김용태 의원(왼쪽)을, 비서실장에 홍철호 의원을 임명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병준 비대위원장의 입장에선 이런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는 게 좋을까? 교과서적 해법은 취임 후 첫 인사에 계파별 안배를 했듯 인적청산의 범위 내에 양대 세력의 대표적 인물들을 모두 포함시키는 것이다. 즉, 이 사건은 김무성 의원이 인적청산의 대상이 될 결정적 근거는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징검다리의 하나 정도로는 기능하게 될 수 있다.

물론 김병준 비대위가 할 수 있는 인적청산에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과거 지향적 인적청산은 하지 않겠다면서도 당협위원장 임면 권한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공천권을 행사할 수 없어서 비대위 활동의 한계가 명확하다는 비판에 대한 반론이다. 이런 군색한 입장표명은 김병준 비대위의 현 주소를 보여준다. 당협위원장직은 차기 총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유불리를 좌우할 수 있지만 ‘인적청산’과 직결되는 절대적 조건인 것은 또 아니다.

혁신의 가능성을 두고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인은 김병준 비대위원장 본인의 성향이다. 여의도의 호사가들은 정치적 야망이 큰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노선과 가치의 측면에서 인상적 주장을 내놓고 이를 기반으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거쳐 대선까지 노릴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취임 직후 전당대회에 출마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비대위 활동 이후 정치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가능성은 열어 놓는 의미의 발언을 했다. 보수정치의 재결집 혹은 재구성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종합해서 유력한 시나리오를 그려보자면 이렇다. 친박계와 복당파의 상징적 인물들에 대한 인적청산을 최소한으로 하고 정계개편 국면으로 넘어간 후 총선을 거쳐 본격적인 대선 리그에 돌입하는 것이다. 보수 유권자층의 호응이 있다면 김병준 비대위원장 자신을 포함해 지난 대선에 출마한 보수정치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총출동해 경쟁에 나서는 그림이 만들어질 것이다. 반면 보수 유권자층의 외면이 더 길어지게 될 경우 김병준 비대위는 ‘종이호랑이’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아무런 성과도 없이 막을 내릴 것이다.

어찌됐든 ‘구태세력’의 혁신이 망하기 보다는 그래도 잘 되기를 바라면서 몇 가지 강조하고 싶다. 형식상으로는 김성태 원내대표의 권한이지만 ‘방탄 상임위’ 문제를 해결하면 지지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비대위 체제 자체에 반대하던 친박계들이 어느 순간 김성태 원내대표의 비대위 구상에 수긍한 것은 김병준 비대위원장의 온건한 입장표명도 작용했겠지만 상임위 배정 과정에서의 배려도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있다. 이런 것들을 해소해줘야 한다.

또 전 정권의 문제인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전향적 입장표명을 재차 내놓으면 어떨까 한다. 19일 법원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가 배상 관련 재판에서 해경 등 책임 일부를 인정했지만 해상관제 실패, 재난 컨트롤타워 미작동 등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참사와 구조에 관한 책임 소재도 문제지만 박근혜 정권이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행적 등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기만적 대응으로만 일관한 것에 대해서도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

아울러 “세월호”하면 반사적으로 “천안함”하는 행태도 그만뒀으면 한다. 최근 한겨레 등의 보도에 의하면 천안함 생존자들은 보수정권 내내 어떤 국가적 배려와 지원도 없이 방치된 상태로 고통을 겪어왔다고 한다. 이들의 처지가 모처럼 여론의 관심을 받게 된 이때를 보수정치와 보수언론이 천안함 희생자 및 생존자들을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깎아 내릴 때만 이용해 온 과거를 바로잡을 기회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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