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은 결국 10.9%로 정해졌다. 2019년 적용 최저임금 수준이 시급 8350원으로 정해진 것이다. 이는 양쪽에서 비판을 초래하고 있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수준을 달성하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사항을 비껴가는 것이면서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반영한 결과로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특히 편의점주 등 소상공인들의 경우 집단행동에 돌입할 가능성까지 예고하고 있다.

대통령의 공약은 파기된 것일까? 민주노총 등 노동계 일부는 그렇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조정됐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실질인상률은 더 낮게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민주노총은 특히 산입범위 확대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의 경우 최저임금 실질인상률이 2.4% 수준에 그친다고 보고 있다. 어쨌든 종합하면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수준을 달성하는 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반면 대통령의 공약이 이미 달성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보수언론의 보도는 이러한 주장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최저임금에 주휴수당을 더하면 시급 1만원을 넘게 되고 4대보험료나 퇴직급여까지 합하면 인상폭은 더 커진다는 것이다. 보수언론은 10.9%라는 인상률 역시 명확한 근거를 갖고 산출한 게 아니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고용상황을 볼 때 속도조절은 불가피하지만 대신 10% 이상 인상률을 지키기 위해 끼워 맞춘 듯한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보수언론의 주장을 반박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글자 그대로 기준을 삼아야지 이런 저런 수당 등을 붙여 “사실상 1만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 일정 수준 이상 인상률을 목표로 하는 것도 최저임금위원회라는 사회적 대화기구의 성격을 감안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다. 최저임금 적용 수준이 정해지는 과정 자체가 정치적 힘겨루기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는 대목은 “실질적 1만원” 주장은 오히려 최저임금위원회 관계자가 먼저 꺼낸 바 있다는 것이다. 어수봉 전 최저임금위원장은 지난 4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미 최저임금 1만원 효과를 보고 있다. 1만원 공약은 1만원 효과로 해석해야 한다”고 했다. 이때 어수봉 전 위원장이 든 논리도 지금 보수언론이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수봉 전 위원장은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사용자측 위원이 반발하는 대상이 된 바 있다. 사용자측 위원들은 이 당시 어수봉 위원장과 공익위원들이 ‘죄수의 딜레마’ 상황을 활용해 자신들의 양보를 얻어놓고 근로자측 위원 안에 투표해 사실상 자신들을 기만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어수봉 전 위원장의 “사실상 1만원” 발언은 이런 반발을 고려한 걸로 보였지만, 지금와서 보면 ‘모범답안’을 제출한 것에 가까웠던 셈이다.

정부가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는 건 김동연 경제부총리 등의 연이은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김동연 부총리는 수차례에 걸쳐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공약 달성은 유연하게 판단해야 하고 최저임금 인상폭은 신축적으로 결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김동연 부총리의 주장대로 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을 주도했다는 점까지 보면, 최저임금 1만원 공약에서의 일사불란한 후퇴는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지난 14일 새벽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이 확정된 후 류장수 위원장이 회의실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최저임금을 무조건 대폭 인상하는 것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 과거에는 노동계도 ‘1만원’이라는 식으로 특정 금액 수준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을 하진 않았다. ‘최저임금은 노동자 평균임금의 50% 수준은 되어야 하며 이에 따르면 올해는 어느 정도이므로 우리의 요구안은 얼마이다’라는 게 원래 노동계 요구의 정해진 형식이다. 이런 방식이라면 일정 수준 이상부터는 요구안의 내용에 경기 상황을 반영하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노동계의 대폭인상 요구는 ‘최저임금 1만원’이란 구호로 정리됐고 지난 정권에서 야당이었던 현재 집권세력은 이를 수용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게 최저임금과 관련한 문제의 시작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애초에 요구가 잘못됐었다는 얘길 하려는 것이 아니다. 노동계의 요구가 ‘최저임금 1만원’이 된 맥락을 따지자면 이런 사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즉, 대통령의 공약을 지킬 수 없게 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김동연 부총리 등이 주장하는 대로 원론을 따지면 최저임금 인상률은 경기변동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공약을 지킬 수 없게 됐을 때 어떻게 할 것이냐다.

정부 여당이 택한 것은 민주노총 등 노동계 일부를 극단주의자로 몰아가면서 어떻게든 ‘최저임금 1만원’이란 공약 자체를 폐기한 것은 아니라는 정황논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앞서 어수봉 위원장의 인터뷰나 홍영표 원내대표의 민주노총 비난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미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달성된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민주노총 등이 고집을 부리며 과한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는 식이다.

이런 방법으로는 노동계와 소상공인들 양쪽의 반발만 초래할 뿐이다. 실제 이 문제는 ‘을과 을의 싸움’이라는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중앙일보 등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소상공인과 영세한 사업장에 고용된 근로자 간에 싸움을 붙이고 있다”면서 “이번 최저임금 인상 결정은 소상공인보다는 귀족 노조를 우선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귀족 노조’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실제 ‘귀족 노조’로 불릴 수 있는 대형 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는 제한적이다. 그러므로 추측해보자면 이 발언에서 ‘귀족 노조’는 민주노총을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최승재 회장 본인의 표현을 빌면 민주노총과 소상공인 및 영세한 사업장에 고용된 근로자끼리의 싸움을 붙이고 있는 셈이다. 이런 구도가 형성된 것은 홍영표 원내대표 같은 사람들이 민주노총을 핑계 삼았던 것의 영향도 일부 있을 것이다.

상황을 이런 식으로 만드는 게 정부 여당에 단기적인 이득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주체들의 상호협력과 양보를 더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런 상황이 정권이 내세우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해법에 장애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상과 현실을 편가르는 ‘묘수’보다는 솔직한 접근이 더 좋지 않나 한다. 경제 상황이 어려워 공약의 후퇴나 파기가 불가피하다면 국민을 대상으로 설득을 시도하면 될 일 아니겠는가. 정부 여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요즘이다. 아낄 게 아니라 바로 이런 일에 축적해놓은 정치적 자원을 투입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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