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여관의 2013년 곡 <서울살이>는 ‘만만치가 않네 서울 생활이란게 이래 벌어가꼬 언제 집을 사나’란 가사로 시작된다. 이 가사에서 보여지듯, 우리가 어느 곳에 터를 잡고 성공적으로 살아냈느냐의 기준이 되는 건 '집'이다. 서울에 집 한 칸 가지는 게 서울살이의 상징이 되었지만, 여전히 서울에서 집을 가지는 건 요원한 일이다. 그런데 서울을 벗어나면, 아니 같은 서울이라 하더라도 '빈집'이 수두룩하다면?

한쪽에서 자기 집을 가지지 못해 애태우고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빈집'이 늘어만 가고 있다. 바로 이 집의 불균형, '빈집'의 이야기를 7월 12일 EBS 1TV <다큐 시선> ‘빈집의 두 얼굴’이 다뤘다.

노후되는 구도심, 늘어나는 빈집들

EBS 1TV <다큐 시선> ‘빈집의 두 얼굴’ 편

다큐가 시작되는 곳은 부산 영도구.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닮았다 입소문이 난 흰여울문화마을에도, 아기자기한 벽화가 골목골목 가득한 해돋이 마을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방송 등을 통해 알려진 마을에서 한 블록만 지나면, 낮에도 인기척을 찾기 힘든 '빈집'들이 즐비한 동네다.

19세기말 우리나라 최초의 조선소가 세워진 이래 조선소를 중심으로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 하지만 조선 산업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이곳엔 그저 치매에 걸리지 않기 위해 좌판을 벌인 노인들과, 아이들이 없어 곧 문을 닫게 된 교복 상점처럼 조만간 이곳을 떠날 상인들만이 남아있다. 관련 공무원들과 함께 걸어가는 골목골목엔 사람대신 고양이들과 쓰레기들이 차지한 빈집들, '공폐가'가 즐비하다. 영도구에만 700여 세대가 넘고, 아파트까지 합산하면 1000채가 넘는다. 2015년 기준으로 부산에만 이런 빈집이 4000여 채에 이른다.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데, 바로 길 건너편에는 밤이 되어도 불빛이 밝혀지지 않는 어두컴컴한 동네가 공존하는 곳. 사람들이 모여드는 신도심과 사람들이 떠나가는 구도심의 부조화, 하지만 이건 비단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집 얻기 힘들다는 서울에도 해방촌이 그렇고, 도심을 떠나 전국으로 시선을 돌리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농촌과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빠르게 늘어가는 빈집, 2050년에 이르면 전체 가구의 10%에 이를 전망이라니 심각하다.

EBS 1TV <다큐 시선> ‘빈집의 두 얼굴’ 편

영도구의 강정원 씨. 한때는 원양어선을 타던 선원이었지만 배를 타던 중 다리에 마비가 온 후 적절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한쪽 다리를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처지다. 어머니와 함께 살던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다섯 가구가 살던 집에 홀로 남았다.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해 다른 가구들이 남긴 쓰레기와 같은 짐을 치우지도 못하고, 쓰러져 가는 공동화장실을 이용하며 수풀이 우거진 빈집 아닌 빈집을 홀로 지키고 있다. 영도구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아흔이 넘은 노인이 관절염이 걸린 다리를 절뚝이며 물조차 나오지 않는 공동 화장실을 이용하며 낮에도 어두컴컴한 아파트를 지킨다.

배에 붙은 해조류와 녹을 닦아내는 깡깡이로 아이를 키워냈던, 그래서 깡깡이 마을로 불리던 동네엔 이젠 다 자란 아이들은 떠나고, 늙은 어머니들만 드문드문 빈집을 지키고 있다. 젊은이들은 일자리 때문에, 아이들 교육 때문에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 지키는 구도심. 그마저도 노인들이 세상을 떠나면 고양이들의 차지가 되어버리는 집들.

우리 사회의 급격한 노령화는 '공폐가' 증가율을 급격하게 높인다. 구청 등에서 예산을 들여 정리를 하고는 있지만 한 채에 적게는 몇 천만 원에서 많게는 억대를 넘어서는 철거 비용에 늘어나는 빈집의 수를 따라잡지 못한다. 그렇다고 낡은 집만 '빈집'이 되는 건 아니다. 창원 시의 경우, 신도시 전체의 규모에 맞먹는 아파트 단지가 지어지고 있지만 거의 분양이 되지 않았다. 건축붐 시절의 아파트 산업 논리로 우선 짓고 보자는 식의 건설 방식이 또 다른 '빈집' 증가의 이유가 된다.

빈집의 딜레마

EBS 1TV <다큐 시선> ‘빈집의 두 얼굴’ 편

그러면 당연히 이런 질문이 던져진다. 그 빈집들 놀리지 말고 세를 주거나, 농촌의 경우 귀농하는 도시인들에게 대여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바로 여기에 빈집의 ‘딜레마’가 있다. 사람이 살지 않은 지 오래 되어 쓰레기더미가 쌓여가고, 동네 고양이들의 귀곡성에 이웃 사람들이 밤잠을 설쳐도 그 빈집은 '빈집'이 아니다. 즉, 현재 사는 사람은 없어도 엄연히 소유주가 있는 집들이 많다는 것이다. 때로는 주인조차 찾기 힘든 집들도 있지만, 자손들이 유산으로 물려받은 집들은 엄연히 '사유재산'이다.

도시 원룸을 떠나 넓은 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 귀농을 결심한 젊은 부부는 그 많은 '빈집'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안식처를 찾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 빈집의 소유주들은 막상 귀농을 위한 이 젊은 부부에게 매번 거절을 했고, 몇 번의 우여곡절 끝에 겨우 아이가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빈집이지만 소유주가 있는 집들은 방치되었지만 국가조차 함부로 어찌해 볼 수 없는 '개인의 소유물'이다. 언젠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며 '방치'해둔 고향집은 귀농인들에게는 넘볼 수 없는 '남의 집'이 되는 것이다.

EBS 1TV <다큐 시선> ‘빈집의 두 얼굴’ 편

개인의 소유라는 이유만으로 방치한 채 관리되지 않은 집들. 하지만 그 집에 쌓인 쓰레기와 그곳에 모여든 고양이 등 동물의 분변과 거기에 몰려든 파리, 모기 등은 그저 빈집 이상으로 이웃들에게 '민폐'가 된다. 문제는 그런 위생상의 문제점만이 아니다.

부산 영도구에서 벌어졌던 성폭력 전과자 김길태가 여중생을 공폐가에 납치하여 범죄를 저지르고, 시신을 빈집 물탱크에 유기한 채 다시 빈집들을 돌아다니며 피신했던 사건처럼 이들 빈집이 '범죄의 온상'이 될 여지가 크다는 점이다. 즉, 사적 재산이 ‘관리’되지 않았을 때 그 피해가 고스란히 주변 이웃과 사회에 전가된다는 점에서, 과연 공폐가의 소유 문제를 개인의 것으로 치부할 수 있는가를 다큐는 <빈집의 두 얼굴>을 통해 묻는다.

최근 우리 사회에 화두가 되고 있는 토지공개념은 이 경우에도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긴다. 토지공개념이란, 토지의 소유와 처분에 대한 권리를 토지의 공적인 특성을 고려하여 공적으로 규제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이 토지공개념은 우리 사회에서는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적 급등을 막기 위한 정부의 통제를 위한 사상으로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공폐가의 경우처럼 개인의 사유재산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주변과 사회가 불이익을 받을 때 또한 '공공재'로서의 토지의 개념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EBS 1TV <다큐 시선> ‘빈집의 두 얼굴’ 편

실제 외국에서는 빈집이 방치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각종 제제 법안들이 마련돼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사회적 제도들이 급격한 노령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일본보다 더 빠르게 노령화되어 가는 우리 사회에서 일본의 '빈집 쇼크'는 남의 일이 아니지만, 집을 '재산'으로 여기는 우리의 사고방식이 공폐가의 '황폐화'를 조장한다.

실제 나주를 비롯한 지방에서는 지자체가 역사적 유산이 그대로 남아있는 오래된 빈집들을 사들여 '문화마을'로 되살려내는 복원 계획이 현실화되고 있다. 조선시대의 대들보, 1930년의 건축 양식 등 각 시대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집들이 '문화'의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그러자 그곳에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들고, 심지어 서울에서 내려온 젊은 예술가들이 찾아든다. 지자체의 의지에 따라 쓰레기더미 빈집이 유적과 문화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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