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변화하는 신호가 포착되고 있다. 지난 4일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 재정개혁특위가 권고한 세제개편안을 청와대와 기획재정부가 반대한 데 이어, "경제성과가 없어 초조하다"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발언까지 등장했다.

11일자 조선일보는 3면에 김상조 위원장과의 인터뷰를 게재했다. 조선일보는 인터뷰 내용을 "혁신성장의 성공을 위해 촛불 정부 지지층의 반발을 감수하고서라도 과감한 규제 개혁에 나서겠다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11일자 조선일보 3면.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상조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의 3개 축으로 돼 있는데 따로 움직이면 필패한다. 같은 속도로 돌아가야 한다"며 "하지만 인수위도 없이 급하게 출범한 정부다 보니 협업 체계를 구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전했다.

김상조 위원장은 "2018년 하반기부터는 경제 환경이 굉장히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김 위원장은 "정책의 내용이나 체계는 지난 1년간 확실히 체계화됐지만 불안한 것은 성과를 낼 시간적 여유가 짧게는 6개월, 길게 잡아도 1년밖에 안 남았다는 것"이라며 "그래서 위기감, 초조감이 크다"고 강조했다.

김상조 위원장은 "지난 1년간은 외교·안보 이슈로 높은 지지를 받았지만 결국 정부의 성패는 경제 문제, 국민이 먹고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며 "지난 1년간 국민들은 과거 정부와 비교해서 지금 정부를 평가했지만 2년차부터는 비교 대상이 현 정부 자신"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대통령도, 모든 경제부처 장관들도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김상조 위원장은 "우리 사회에서 규제 혁신이 안 되는 중요한 이유는 (시민단체들의) 신념 때문"이라며 "시민단체들은 자기 일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정부가 그들의 요구를 다 담을 수는 없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이 정치적 결단을 고민하고 있다. 지지자들의 비판을 받을 수 있는 결단을 의미한다"며 "대통령도 규제 혁신 없이는 이 정부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상조 위원장은 공정거래법 개편 특위가 발표한 일감 몰아주기 제재 대상 기업 확대 등에 대해서는 "특위안은 참고 자료일 뿐"이라며 "7월 말 발표할 정부안에서는 내용이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시민단체의 반발 가능성에 대해서는 "진보·보수 양쪽에서 비판받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며 "정부안이 나오면 재계는 거칠다고 할 것이고 시민단체는 이거 하려고 그 난리를 쳤느냐고 비판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조 위원장은 재벌총수들에게 "지배구조 개선이나 비즈니스 쪽에서 성공 신화가 필요하다. 이재용, 정의선, 최태원, 구광모, 신동빈의 이름으로 직접 나서 달라"며 "최고 결정권자인 이들이 제품 시연만 할 게 아니라 자기 이름을 걸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 달라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어 "그러면 정부의 운신 폭이 굉장히 넓어지고 시민사회의 인내심도 커질 것"이라며 "이게 내 유일한 요청"이라고 거듭 당부했다.

김상조 위원장 인터뷰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성이 기업과의 협력 강화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인도를 국빈방문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삼성전자 신 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난 것도 이 같은 방향성을 보여준다.

각종 경제지표와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일자리 창출은 결국 기업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이 같은 점을 고려해 친기업 행보를 보이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정부가 기업의 혁신과 성장을 지원하는 것은 나쁜 생각이 아니다. 그러나 당장의 성과에 눈이 어두워 규제 철폐에만 몰두한다면 과거 노무현 정부의 경제 실패를 답습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국가 정상화'란 국민의 염원을 담아 탄생한 정부다. 그리고 정상화에는 재벌대기업도 포함된다. 문재인 정부의 기조인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은 부의 재분배다. '성장'이란 단어가 들어가면서 본질이 호도된 측면이 있긴 하지만, 결국 이익을 독점해온 재벌대기업의 부를 국민에게 재분배하자는 데 핵심이 있단 얘기다.

이러한 기조 속에서 소득주도성장의 최저임금 인상은 당장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정책이었다. 사실 소득주도성장의 성패는 김상조 위원장이 맡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에 달려 있다. 재벌대기업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하청, 재하청, 재하청의 재하청 후려치기 관행을 다스려 불합리한 하도급 구조를 정상화해 공정경제를 실현하는 것이 재분배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김상조 위원장의 공개적인 친재벌 발언은 우려되는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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