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리아의 선한 사람들 - 김영옥
MBC 주말 드라마 글로리아는 반대편에 어마어마한 부자들도 존재하지만 주된 무대는 가난한 사람들의 공간이다. ‘가난은 불편할 뿐이다’라는 말은 사실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가난은 사람에게 불편한 것이 아니라 편한 것이다. 사람에게 기대고, 사람에게 기대게 하는 마음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거의 필수라 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달동네의 소담스러운 이야기 글로리아는 시청하는 내내 잔잔한 미소를 입에서 떼지 못하게 한다.
어설픈 3류 건달 이천희의 어린 조카 어진은 욕쟁이 할머니 김영옥의 하꼬방 집이 부자로 보인다. 정작 집주인 자신조차도 부자로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다. 비록 단칸방 몇 개를 세를 놓고 살지만 속사정이 따로 있는지 몰라도 밤이면 나이트클럽 앞에서 떡볶이, 국수 등을 파는 쓸쓸한 노인일 뿐이다. 그러나 어린 어진이가 만나는 사람들은 너무 가난해서 이 할머니가 어린 눈에는 가장 부자로 보일 뿐이다.
말로는 “장사도 하기 전에 남는 순대가 어딨냐”고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엉뚱한 핑계를 대고 자리를 비운다. 그러면 어진이가 오현경에게 김밥을 먹게 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사라지는 모습에서 이 가난하고 착한 사람들이 이 척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김밥 두 줄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평소 빡빡하기로 소문난 할머니의 짐짓 모른 채 먹으라고 내놓는 방법이 웃음 짓게 하는 것이다.
이 사나운 할머니는 은근히 공동체의식이 매우 강하다. 요즘은 다가구 주택에도 각자의 계량기가 달렸지만 예전에는 이 욕쟁이 할머니가 하는 계산방법은 때때로 주인집의 횡포로 작용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말로는 사람 수대로 나눈다면서 실제로 자기 것은 빼놓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할머니는 그런 꼼수 없이 정말로 정직하게 전기세, 수도세를 사람 수대로 나눈다.
그래서 이 가난하고 착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기대어 따뜻하게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기자기하게 묘사되는 글로리아에 칭찬을 아끼지 않게 된다. 글로리아의 주인공 배두나는 분명 글로리아란 이름의 캔디일 수밖에 없겠지만 아주 황당한 전개에 대한 불안은 갖지 않게 된다. 아니 없기를 바란다.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냄새 폴폴 풍기는 이 드라마를 통해서 편안하고 행복한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고 싶기 때문이다. 글로리아의 시대 배경이 과거는 아니지만 이 따뜻한 환경이 아련한 과거로 이끌어준다.
한편 싸구려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하기로 한 과거의 스타 여정란(나영희)이 배두나의 멘토로서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 그것은 본사에서 밀려나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옮기게 된 나영희의 아들 서지석과의 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배두나가 애써 피해왔던 가수의 꿈, 나진주 나진진 두 자매 몫의 꿈은 그렇게 서서히 현실로 한 발짝 다가서고 있다. 나이 서른에 가수를 꿈꾸는 이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자꾸 마음을 빼앗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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