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드라마의 정상을 넘어 시청률 40%를 넘보고 있는 제빵왕 김탁구의 설정은 짐짓 복잡합니다. 재벌가의 후계 구도를 둘러싼 파워 싸움이기도 하고, 그로 인해 일어난 불륜이 얽힌 치정극이기도 합니다. 젊은이들의 4각 러브라인도 있고, 제빵사를 꿈꾸는 전문직 드라마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그 핵심은 천둥벌거숭이나 나름 없던 망나니 김탁구가 주위 사람까지 감화시키며 성숙한 인간이자 제빵사로 거듭나는 과정을 보여주는 성장 드라마입니다. 주인공에게 철저히 감정이입을 하며 그의 성공을 바라는 것만큼 시청자들의 관심과 몰입을 끌어당기는 좋은 방법은 없거든요.

결국 이 드라마는 거성가에서 쫓겨나고, 어머니를 잃어버린 채로 거리를 전전했던 12년 동안, 그가 가지지 못했던 사람으로서 누리고 겪어야 했던 경험들을 조금씩 회복하면서 김탁구라는 인간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죠.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만 같았던 김탁구는 자신의 성장과 함께 그가 상실했던 것들을 하나씩 되찾아 갑니다. 그것이 그가 가져서는 안 되는 것처럼 생각했던 꿈이건 희망이건, 이곳저곳을 떠돌던 나그네 생활동안 얻지 못했던 사람과 인연이건, 어른 세계의 냉혹함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탓에 살아남기 위해 포기해야 했던 따스함과 인간다움이건 말이죠. 그리고 그 방향은 어린 날 그에게 가장 위대하고 존경스러운 인물이었던 그분,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 가는 것으로 잡혀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머무는 보금자리, 그가 새롭게 자리 잡은 팔봉 빵집이란 공간은 김탁구에겐 특별합니다. 단순히 제빵 기술을 배우기 위해 머무는 곳이 아니에요. 이곳에 오기 전과 그 이후의 김탁구는 전혀 다른 사람일 정도니까요. 꿈을 꾸는 곳,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는 곳,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곳은 그가 너무나도 오래전부터 잃어 버렸던 장소. 가정을 대신해주는 공간입니다. 12년 동안 어머니를 찾고, 아버지의 정에 목말라하며 자신의 혈육에 대한 갈급함을 가진 김탁구에게 정작 진정한 가족의 의미와 사랑을 안겨준 곳은 다름 아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팔봉빵집이란 말이죠.

그런데 그가 끊임없이 그리워하고 추구했던 어머니를 향한 모성의 대상은 김미순 한 명에게 고정되어 변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아버지의 모델은 자주 흔들리며 여러 가지 사람을 통해 제시됩니다. 그가 느끼지 못했던 부성을 알게 해주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해준 김탁구의 진정한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생각해보면 헷갈릴 수밖에 없단 말이죠. 친아버지 구일중 회장을 향한 애틋함과 그리움은 수시로 강조되고 있지만 정작 아버지의 역할을 해주며 그를 잡아주는 사람들은 전혀 딴 사람들이거든요.

팔봉 선생은 자애로움과 현명함으로 그의 재능을 알아보며 꾸준히 흔들리지 않도록 제빵사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지침을 제시해줍니다. 빵집의 대장, 박상면이 연기하는 유인목은 김탁구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엄격한 아버지, 굳건한 기둥으로서의 역할을 해주면서 김탁구를 변화시키고 그 스스로도 그의 지지자로 조금씩 변하는 것을 체험하죠. 아버지라기보단 큰형에 가까운 이미지이지만 바람개비 형님 조진구 역시도 애초의 악연을 극복하고 이젠 그 누구보다도 든든한 힘이 되어주면서 친아버지 구회장보다 더 김탁구의 심정을 이해하고 보호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결국 김탁구는 구일중의 아들이 아닌 팔봉 빵집의 아들인 셈이에요. 씨를 뿌리고 낳아준 것은 친부모일지는 모르지만 그를 기르고 성장시킨 것은 전혀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그의 친아버지인 구일중이 그리 좋은 아빠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이기도 해요. 정작 어릴 적부터 곁에서 성장시킨 구마준의 왜곡된 심성을 보면 구일준의 부정이 얼마나 편중되고 잘못된 것이었는지를 알게 해줍니다. 오늘 저녁이면 이 부자는 감격의 재회를 하며 눈물을 흘리겠지만 전 김탁구의 친아빠보단 팔봉빵집의 의붓 아빠들에게 더 정이 가는군요. 누구보다 아버지를 닮아가기 원하지만 정작 그 자리는 다른 사람들이 채워주는 이런 아이러니함, 제빵왕 김탁구가 보여주는 유사 가정은 그래서 더더욱 독특하고 재미있어요.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고 원하던 따스한 가정은 으리으리하지만 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구회장의 저택이 아닌 밀가루 냄새가 폴폴 나는 인천의 작은 빵집이 되어 버렸거든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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