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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강간’의 계절[도우리의 미러볼] 노출의 계절을 맞이하며
도우리 객원기자 | 승인 2018.07.01 14:32

[미디어스=도우리 객원기자] 여름이다. 무더위로 불쾌지수가 높아지고 있다. 여성들은 이에 더해 질척이는 ‘시선 강간’의 불쾌감을 호소하고 있다. ‘시선 강간’이란 시선만으로 상대방에게 강간에 준하는 정신적 피해를 입힌다는 뜻의 신조어다. 반면 남성들 사이에서는 ‘노출의 계절이라 눈이 즐겁다’, ‘노출에 감사하다’는 등의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서 여성들이 지적하는 ‘시선 강간’이라는 표현이 과도하다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여성들 역시 남성들의 모든 시선을 ‘시선 강간’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또 ‘강간’이라는 표현은 자칫 여성 자신을 수동적 객체로 보게 한다는 한계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선 강간’이란 단어가 고안된 것은 ‘보이니까 어쩔 수 없이 쳐다본다’든가 ‘보여주려 입은 것 아니냐’는 등 시선의 폭력성에 전혀 공감하지 않는 남성들이 많기 때문이다.

유튜브 캣콜링(cat calling) 고발 영상

사실 ‘시선 강간’ 개념의 원조는 남성이다. 그것도 2000여 년 전에 언급했다. 예수가 십계명에서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라고 그 잘못을 명백히 시선의 주인인 남성에게 뒀다. ‘시선 강간’에도 시선의 대상에게 원인을 돌리는 ‘시선 강탈’에 대한 미러링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 ‘보이니까 어쩔 수 없이 쳐다본다’든가 ‘본능’ 운운하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노출과 그것을 바라보는 행위는 분리 가능하기 때문이다. 남성들도 이를 아주 잘 안다. 노출 있는 여성을 쳐다보다가도 남자친구가 나타나면 시선을 거두고, 문신을 두른 건장한 남성에 대해서는 오히려 노출이 있을수록 쳐다보지 않으려 노력한다. 결국 ‘시선 강간’은 시선 권력이다. 그래서 시선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사람들은 장애인이나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을 자주 ‘빤히’ 쳐다본다. 반면 백인 남성이나 상사 앞에서는 ‘눈을 내리깐다’. 당장 검색창에 ‘뭘 봐’를 검색하면 관련 폭력 사건 기사가 수두룩할 정도로 남성들은 시선에 ‘예민하다.’

그런데도 ‘시선 강간’에 남성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남성의 ‘가시광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시선 폭력’ 대신 ‘시선 강간’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다. 강간이란 표현은 이러한 가부장제 속 ‘기울어진 운동장’도 가리킨다. ‘넌 못생겨서 (시선 강간을) 걱정 안 해도 된다’, ‘뚱뚱한 여자의 노출은 안구 테러’라는 말 역시 ‘여성은 성적 대상이며 남성은 그것을 품평하는 위치’라는 속내를 반증하는 것에 불과하다.

성적 능력이 쇠퇴한 할아버지들조차 여성을 훑는 시선만큼은 생생히 살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 눈에 연결된 시신경은 뇌로 이어지고, 그 뇌에는 ‘성적 대상화’라는 문화가 저장돼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그 생각한다’는 속담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국 남성의 절반이 성매매 경험이 있고, 우리나라 최대 음란물 사이트였던 ‘소라넷’이 17년 만에 폐쇄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까칠남녀 시선 폭력편 캡쳐(EBS)

그래서 여성들이 시달리는 ‘시선 강간’은 그 상황만 모면한다고 해서 지워지지 않는다. 화장실 몰카 불안에, 단톡방 성희롱 및 외모 품평, 앙심을 품은 동료의 음란물 합성 ‘지인 능욕’ 위협까지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문제 제기하는 ‘시선 강간’이 단순한 불편감이 아닌 이유다. ‘시선 강간’에 유독 노출되는 계절이 있을지 몰라도, 그것과 긴밀한 ‘강간 문화’는 일상적으로 만연해 있다. 

여성의 노출에 ‘보여주려고 입는 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당신을 향했다는 보장이 없을뿐더러, 그렇더라도 빤히 쳐다보는 대상화된 시선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여자에게 ‘조신하라’는 단속, 성폭력 피해자에게 ‘그렇게 입지 말았어야지’라는 2차 가해로 이어진다. 얼마 전 논란이었던 한 부산 여자 중학교의 속옷 규정인 ‘비치는 검은 색 브라 금지’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몸은 포르노가 아니다. 그렇게 보는 시선이 포르노다.

세계적 스타였던 올리비아 핫세가 결혼 결심의 이유로 “내 눈이 무슨 색인지 아느냐는 물음에 초록색이라 답한 유일한 남자라서”로 꼽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자신의 큰 가슴만을 바라보며 대상화하지 않고, 자신의 ‘고유성’을 발견한 마음에 감화한 것이다. 고유성은 곧 인간성이다. ‘일부’ 남성들은 여성들에 대한 ‘시선 강간’을 교정하여 같은 인간으로 바라보라. 성적 인식과 성적 대상화를 구별하라. 아직도 ‘시선 강간’을 본능이라 생각하는가? 배변 본능도 제대로 못 가려도 된다고 주장하면 ‘인정’한다.

도우리 객원기자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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