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자유한국당이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지금이 선거제도 개혁의 적기라는 의견이 제기됐다. 선거제도 개혁은 한국당의 반대에 막혀 요원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이 소선거구제의 피해자가 되면서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깨달았을 것이란 점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추진할 적기란 분석이다.

28일 오전 10시 국회 제2세미나실에서 <장벽없는 정치시장을 위하여>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는 불평등 사회·경제 조사연구포럼(불사조포럼)이 주최하고 비례민주주의연대,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한림국제대학원대 정치경영연구소, 프레시안이 후원했다.

이번 토론회의 발제는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와 박주현 의원이 맡았고, 토론자로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신지예 전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 우인철 전 우리미래 서울시장 후보, 김누리 중앙대 교수,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주간이 나섰다. 불사조포럼 소속인 정동영, 조배숙 민주평화당 의원과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토론회 자리를 지켰다.

▲28일 오전 10시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장벽없는 정치시장을 위하여' 토론회. (사진=연합뉴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최태욱 교수는 "정치시장의 소비자, 시민 입장에서 보면 살 만한 상품이 없다는 문제"라며 "나를 지지한 정당, 내가 필요로 하는 정치상품, 나를 대표하는 정당이 있느냐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대의제 민주주의라고 하면서 시민의 대다수가 자기 대표가 없는 상태로 방치돼 있다"며 "영남당, 호남당은 있어도 청년당, 소상공인당 등은 없다는 게 핵심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태욱 교수는 "한국사회에서는 다수결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대다수가 원하는 것이 지켜지는 것이 다수결의 원칙이 지켜지는 증거인데, 압도적 다수인 사회 구성원은 힘든데 그들을 위한 법, 제도는 정비되지 않고, 소수가 원하는 것만 제공되는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아주 교과서적으로 대의제 민주주의를 작동하게 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최태욱 교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해답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최 교수는 "우리가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소상공인을 지금 700만 얘기하는데 가족까지 치면 1400만에서 2000만이다. 당장 10%만 모아도 30석 짜리 유력정당이 된다"고 설명했다.

최태욱 교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최 교수는 "여당은 대통령의 도구집단이다. 여당이 대표하는 사회경제이익의 집단을 대통령이 반한다고 해도 뭐라 할 수 없는 구조"라며 "이런 상황에서의 대통령제는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이런 제왕적 대통령제는 엄청난 권력 가치를 창출하며, 이념의 구심점이 될 수도 없다"고 비판했다.

최태욱 교수는 개혁 순서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권력구조 개헌보다 먼저란 얘기다. 최 교수는 "선거제도가 이렇다면 정치인과 당원들은 대통령 혹은 대통령이 될 만한 분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며 "공천권자 따라가는 것이다. 이러니까 이념적으로 정치 결사체를 가지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결국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와 함께 가야 한다"며 "우리가 알고 있는 비례제 국가들이 예외없이 의회 중심제를 발전시키는 게 이런 맥락"이라고 말했다.

최태욱 교수는 "앞에서 강조했지만 시민들에게 주요 핵심 주체는 정당"이라며 "정당이 사회 구조에 따라 포진돼 있지 않으면 권력구조를 어떻게 바꾼들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호남, 영남, 충청당만 즐비한데 권력구조만 바꾼들 무슨 이미가 있느냐. 정당이 개혁되지 않는 한 권력구조 변화는 없다"며 "비례제 국가가 되면 정치권은 자연히 의회 중심으로 가게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박주현 의원은 "인질로 잡혀있는 박주현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박 의원은 사실상 민주평화당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바른미래당에서 출당시키지 않아 소속은 바른미래당이다. 박 의원은 "이번 정기 국회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관철해야 한다"며 "키워드를 잘 잡아야 하는데 '장벽없는'이란 키워드를 여러 논의 끝에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박주현 의원은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격차'를 지적하며, 이 격차를 깨뜨릴 수 있는 것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라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정치구조로 인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이기기 위한 정치를 하는 과정에서 '빠 정치', '드루킹 정치', '패권 정치' 이런 것들이 혼란을 일으키는 측면이 있다"며 "이런 것들이 혼란을 일으키면서 공존과 합의의 과정과 정치결과로 이어지지 않고, 지역평등과 격차 해소를 위한 구체적인 접근이 불가능해진다. 이를 해소하는 게 민주평화당이 갈 길"이라고 밝혔다.

박주현 의원은 "유럽의 여러 나라를 가봤지만, 정당은 그룹을 만들어 외연을 확대하는데, 코어그룹은 지역 혹은 이념의 메트릭스로 짜여진다"며 "그런 다양한 메트릭스가 가능한 이유는 승자독식이 아닌 투표가 그대로 반영되는 선거제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두 정당 외에는 비비고 들어갈 자리가 없다"며 "승자독식을 깨야 하고, 그 방식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강조했다.

박주현 의원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참패하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찬성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한국당은 이번 지방선거의 대표적인 소선거구제의 피해자다. 박 의원은 "(한국당의 지방선거 패배로) 자유한국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찬성하고 나설 기회가 생겼다"고 밝혔다.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주간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이 논설주간은 "한국당이 승자독식 정치구조의 수혜자에서 피해자로 바뀐 상태"라며 "한국당이 이런 상태로 다음 총선을 치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는 이 시점이 선거제도 개혁의 좋은 시점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논설주간은 "한국당은 당 개혁, 쇄신도 해야 하고, 대외적 이미지 개선도 해야 한다. 정치개혁을 내세우면서 당내 명분으로도 쓸 수 있어, 한국당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대근 논설주간은 "반면 과거에는 민주당이 선거제도 개혁의 선두에 섰는데, 명분을 버리지도 못하고 앞서서 나가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이 됐다"며 "방해자도 없지만, 과거 민주당이 했던 주도자 역할도 없다는 점은 부정적"이라고 봤다. 그러면서도 "다만 다당제를 추구하는 정당들이 목소리를 내면 민주당도 적극적으로 반대하진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국민들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바라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 대표는 "비례대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많이 나타나는데 국민들은 사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 대표는 "작년 11월 문화일보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 65%가 다당제와 양당제 중 다당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그리고 다당제를 만드는 선거제도가 바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강조했다.

하승수 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장벽 중 하나로 국회의원 수 확충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을 꼽았다. 하 대표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국회의원의 특권을 내려놓고 국회 예산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의원 수를 늘리는 방안을 내놨다. 하 대표는 "국회 예산을 지금 예산 수준으로 동결한 상태에서 국회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며 "국회의원의 특권을 내려놓고 수를 늘린다면 국민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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