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재판거래가 논란인 가운데 검찰 수사가 개시되었다. 검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던 김명수 대법원장의 약속은 그러나 잘 지켜지지 않는 것 같다. 수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자료들을 내주기 꺼리는 법원의 태도가 비판을 받는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26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용하던 법원 PC 하드디스크가 디가우징됐다는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극도의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디가우징은 매우 강력한 자력을 사용해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복구 불능상태로 처리하는 대표적인 증거인멸 방식이다. 법원은 대법관과 대법원장 PC는 통상 그랬다는 해명을 내놓았지만 기껏해야 하드 포맷 정도밖에 하지 않는 일반 시민들에게는 납득할 만한 설명이 되지는 않는다. 도대체 그 안에 무엇이 있었길래 디가우징을 할 수밖에 없었냐는 의혹이 증폭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검찰은 법원에 디가우징된 하드 디스크라도 달라는 입장이지만, 이조차도 법원은 선뜻 응하지 않고 있어 법원이 사법농단을 척결할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적극협조 약속에도 법원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법원은 통상적인 관례라고 변명하고 있지만, 일반 수사에서 피의자가 증거가 들어있었던 PC를 포맷하거나 디가우징했다고 한다면 이것은 대표적인 증거인멸의 시도로서 너무도 당연한 구속사유에 해당한다. 남들이 하면 구속사유고 법원이 하면 관례인가? 국민을 두려워한다면 법원이 통상적 관례라는 말 뒤에 숨으려는 터무니없고, 후안무치한 태도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법원의 미온적인 태도에 대해서 언론은 검찰의 강제수사가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시각을 내놓고 있지만 검찰이 실제 강제수사를 할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강제수사 불가피론은 사실상 검찰의 압수수색이 아니라 특검으로 가자는 의도로 봐야 한다. 법원과 검찰의 관계로 보아 사실상 특검과 특별재판부가 아니라면 이번 사법농단 사건을 제대로 파헤치고, 판단을 하기는 불가능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컴퓨터 하드디스크(CG) [연합뉴스TV 제공]

법원의 사법농단은 쉽사리 해결될 것이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법원은 내놓지 않을 것이며, 검찰도 엄살만 부리다가 유야무야될 지점을 기다리는 낌새다. 결국엔 특검 외에는 사법농단에 접근할 방법은 없다는 점에서 법무부장관의 상설특검요구로 이어질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 PC 하드디스크가 디가우징됐다는 사실은 사법농단의 결과와 무관하게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법원이 범죄 집단과 하등 다를 바 없이 증거인멸을 시도했다는 인식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적폐청산의 첫 번째가 검찰이고, 마지막이 법원이라는 말이 세간에 떠도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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