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시작과 함께 스크린을 뒤덮는 일본어. 분명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의 웨스 앤더슨 감독 작품이라 했는데라며 제작자까지 확인하게 되는 영화. 일본에 대해, 노골적인 일본풍의 문화에 대해 선입견 없이 대하는 게 쉽지 않은 우리의 역사적 경험 상, <개들의 섬>은 우선 당혹감을 안겨주는 영화이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나면 고민하게 된다. 과연 이 영화는 일본 혹은 일본의 문화에 대한 '찬사'인가, 아니면 일본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군국주의적 경향성'에 대한 편견인가. 그렇게 <개들의 섬(Isle of Dogs)>은 '일본'이라는 지역과 지역적 정서를 떼어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 영화 속 일본은 우리가 가진 역사적 불편함을 차치하고서라도 모호한 경계에 서있다.

흠모인가 편견인가

영화 <개들의 섬> 스틸 이미지

센고쿠 시대 이래 서양과 교류해왔던 일본. 일본의 도자기와 우키요에(에도 시대 세속화)에 서양의 예술가들이 열광했고, 모네와 고흐 등은 적극적으로 이를 자신의 작품에 활용, 인상파 미술과 이에 영향을 받은 프랑스 영화에 영향을 끼쳤다. 당시의 이런 일본 문화에 대한 열광을 '자포니즘'이라 정의한다. '자포니즘'은 이후 할리우드 영화에서 오마주된다. <킬빌>, <라스트 사무라이> 그리고 <매트릭스> 등은 일본 무도를 자신의 철학으로 승화시키고자 했으며, 최근 2014년 작 <빅 히어로>까지 일본의 문화와 이른바 일본의 전통적 정신은 '흠모'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 <개들의 섬>이 있다.

동물들을 활용한 <판타스틱 Mr. 폭스> 이후 9년 만에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돌아온 웨스 엔더슨 감독. 영화를 여는 건 일본의 전통 설화이다. 영웅적인 소년 장수가 폭군이었던 고바야시의 머리를 잘랐다는 전설이 일본의 신사를 배경으로 소개된 후, 영화는 지금으로부터 20년 후 일본의 메가사키 시로 배경을 옮긴다. 애완견이 일상이 된 도시, 하지만 갑자기 '개독감'이 퍼져나가고 그 독이 인간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치료약 개발은 요원한 상황, 시장인 고바야시는 개들을 '쓰레기 섬'으로 모두 추방할 것을 제의한다.

영화 <개들의 섬> 스틸 이미지

지금으로부터 20년 후라지만 마치 2차대전 시기 일본을 보듯, 시장의 제안에 과학자의 반대 제안이 무색하게 절대적인 '찬성'으로 돌아서는 여론. 그리고 그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진행되는 개들의 추방은 '군국주의 일본'을 연상케 한다. 범람하는 개들을 절멸시키려는 '고양이 애호가'인 시장을 비롯한 일부 집단의 음모. 그러나 그런 음모에서 비롯된 개 추방 작전은 개를 그저 애완견이 아닌 자신의 친구로 사랑했던 고바야시 조카와 청소년들의 반발, 그리고 무엇보다 개들의 저항으로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일본의 소년답게 게다를 신고 경비행기를 타고 온 소년. 역시나 군국주의 시대 일본의 청소년들을 연상케 하는 까까머리 교복을 입은 소년들. 광분하는 고바야시 시장의 맹목적인 수하들의 배경에서 드러난 전범기. 마치 <킬빌>의 사무라이 정신처럼, <개들의 섬>에서 드러나는 '전체주의'는 고스란히 일본 군국주의의 기억을 소환한다.

군국주의 일본을 통해 설명하는 파시즘

영화 <개들의 섬> 스틸 이미지

'파시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1900년대 초반 '부다페스트'라는 지역적 공간과 문화적 정서를 차용했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처럼, <개들의 섬>은 일본 군국주의 시대의 경험을 소환하여 다시 한번 '파시즘'을 설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행간을 메우는 건 일본풍의 그림과 같은 화면과 스모 등의 문화 콘텐츠들. 결론은 암살이지만 그 과정에서 돋보이는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들이 영화를 꽉 메운다. 이는 '오리엔탈리즘'이 가진 찬사와 야만의 양극단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즉, 자신의 담론에 맞춰 의도적으로 고안된 ‘동양’이 <개들의 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이 영화에서 주요서사를 이끌어 가는 개들은 지극히 '서양적'이라는 점이다. 시민들에게 시장의 '휴머니즘'을 포장하기 위해 입양된 소년 아타리가 소년을 지키기 위해 경호견으로 스파츠와 교감을 나누고 그를 찾아 홀로 쓰레기 섬으로 온다든가, 떠돌이개 치프와 애완견 출신의 4마리 개들과의 관계, 그리고 아타리와 치프 사이의 우정의 성장기는 일찍이 디즈니 혹은 서부극을 통해 익숙한 '관계적 서사'들이다.

영화 <개들의 섬> 스틸 이미지

더구나, 청소년들 사이에서 가장 진취적으로 고바야시 시장에게 반기를 든 사람이 다름 아닌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온 노란 머리의 서양 소녀라는 사실은 '관계중심적'인 동양과, '목표지향적'인 서양에 대한 선입관을 고스란히 이입시킨 대표적인 사례가 된다. 또한 영화 속 인간들의 대사는 번역하지 않는데, 그 대부분 인간들의 대사는 '일본어'이다. 그에 반해 개들은 '영어'로 대사를 하고 그건 자막으로 번역되는데, 그저 우화적 대비라 하기엔 이방의 언어에 대한 앙금을 남긴다. 즉 <개들의 섬>은 찬사와 숭배, 그리고 편견이라는 서양인이 가진 동양에 대한 '관념'을 다시 한번 고스란히 드러낸다.

하지만 이런 인식적 한계를 차치하고 보면, <개들의 섬>은 파시즘의 융성에 대한 절묘한 '우화'이다. 그저 개가 싫었던, 그래서 개들의 번성을 저지하고 싶었던 엘리트 그룹이 한 사회의 의식과 의견을 어떻게 조장하고 집단적 결정으로 몰아가는가에 대해 이보다 명쾌하게 설명해 낼 수 있을까. 결국 애초에 독감에 대한 위험도 자체에 대한 검증도 없이, 나와 우리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인간들이 '우리' 외의 그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에 대해 얼마만큼이나 맹목적으로 잔혹해질 수 있는가를 인간에게 가장 친숙한 애완동물인 '개'라는 대상을 통해 설명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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