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노 전 대통령 시계 수수 의혹 보도 배후에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있다고 폭로했다. 이 전 중수부장은 당시 KBS 9시 뉴스의 시계 수수 의혹 보도와 SBS의 '논두렁 시계' 보도의 배후에 국정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관련기사 ▶ 국정원, SBS 사장에 '노무현 보도 협조 로비')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수부장은 최근 미국에서 근황이 포착된 바 있다.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연합뉴스)

25일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논두렁 시계 보도와 관련해 국정원이 배후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 전 중수부장은 "지난 번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 사건 보도와 관련해 사실을 정리해 말씀을 드렸음에도 노컷뉴스 등 일부 언론에서 마치 제가 논두렁 시계 보도를 기획한 것처럼 왜곡해 허위 내용을 보도하고 있어 다시 설명 드린다"며 이 같이 밝혔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먼저 수사 경과를 간략히 전했다. 2006년 9월 경 노무현 전 대통령 회갑 당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피아제 남녀 손목시계 한 세트를 2억 원에 구입해 노 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 씨를 통해 전달했다는 내용이다. 노 전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가 시계 세트를 받은 것을 KBS 보도 이후에 알았고, 시계는 권 여사가 내다 버려 증거로 제출할 수 없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SBS 등 언론은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내용으로 왜곡 보도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는 세간의 조롱거리가 됐다. 이에 대해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노 전 대통령 수사 중인 2009년 4월 14일 퇴근 무렵 국정원 전 직원 강 모 국장 등 2명이 사무실로 찾아와 원세훈 전 원장의 뜻이라며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하되,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노 전 대통령에게 도덕적 타격을 가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저는 이러한 내용을 업무일지에 메모해 놨다"고 전했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저는 국정원이 노 전 대통령 시계 수수 관련 수사 내용을 어떻게 알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들의 언행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면서 "'내일 오전 기자 브리핑에서 이러한 사실을 알려 감사한 마음을 표시하겠다. (원세훈)원장님께도 그리 전해주십시오'라고 정색하며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강 국장 등 2명은 '자신들이 실수한 것 같다면서 오지 않은 것으로 해달라'고 하고 사죄한 뒤 황급히 돌아갔으며, 저는 이러한 사실을 위에 보고했다"고 전했다.

원세훈 전 원장이 당시 임채진 검찰총장에게도 전화를 걸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망신주자고 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원 전 원장은 저에게 직원을 보낸 것 이외에 임 총장에게도 직접 전화를 걸어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망신을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가 거절을 당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2009년 5월 13일 SBS뉴스 '논두렁 시계' 보도. (SBS뉴스 캡처)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그 후 일주일 쯤 지난 2009년 4월 22일 KBS는 저녁 9시 뉴스에서 '노 전 대통령의 시계수수 사실'을 보도했다"며 "원세훈 전 원장의 소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국정원의 행태가 생각나 도저히 화를 참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그 후 2009년 5월 8일 조선일보에서 국정원장이 검찰총장에게 불구속의견을 개진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며 "이와 같은 보도가 나오게 된 배경은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국정원에 대한 검찰 내부의 반발기류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어 "조선일보 보도 직후 홍만표 기획관으로부터 '국정원 측에서 조선일보 보도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해 달라고 요청한다'는 보고를 받고 국정원의 요청이 너무 뻔뻔하고 어이가 없어 부인해주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그리고 다시 5월 13일 SBS에서 '논두렁에 시계를 버렸다'고 보도했다"며 "저는 국정원의 소행임을 의심하고 검찰이 더 이상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여러 경로를 통해 그 동안의 보도 경위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4월 22일자 KBS 9시 뉴스 보도는 국정원 대변인실이 개입해 이뤄진 것으로 확인했다"며 "또한 그간 국정원의 행태와 SBS의 보도 내용, 원세훈 전 원장과 SBS의 개인적 인연 등을 고려해볼 때 SBS 보도의 배후에도 국정원이 있다는 심증을 굳히게 됐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12월 SBS 논두렁 시계 보도 경위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에서는 "당시 취재기자는 '논두렁' 표현을 검찰 관계자로부터 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SBS 하금열 전 사장과 최금락 전 보도국장은 진상조사위의 조사를 거부했다. 지난해 10월에는 국정원 직원 4명이 SBS 사장을 접촉해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상황을 적극 보도해줄 것을 요청한 사실도 확인된 바 있다.(관련기사 ▶ SBS '논두렁 시계' 보도, 확인 절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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