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김의 마지막 생존자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사망했다. 신문은 온통 그의 정치역정을 되돌아보는 기사들로 뒤덮였다. 이 기사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실은 정부가 김종필 전 총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김종필 전 총리에게 훈장을 추서하는 것에 비판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맛칼럼니스트’까지 나서서 김종필 전 총리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25일 신문들의 온도는 이런 여론과는 차이가 있다. 한겨레는 이날 사설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정치인으로 그를 추모하는 것을 탓할 이유는 없다”면서도 “다만, 최고 훈장을 추서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정부는 통합의 상징성을 의식했을 수 있다. 하지만 최종 결정에 앞서 ‘반대 청원’ 등에 담긴 비판 여론도 유념하길 바란다”고 했다. 반길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놓고 반대는 못하겠다는 게 가장 강경한 입장인 셈이다.

김종필 전 총리에게 훈장을 주는 일은 올바른 것일까? 그걸 따지기 위해서는 먼저 질문을 바꿔봐야 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김종필 전 총리에게 훈장을 주려는 이유는 뭘까? 한겨레 사설의 언급 속에 답이 있다. ‘통합의 상징성’이란 여섯 글자에는 최근 조성된 정치적 환경과 떼놓고 볼 수 없는 맥락이 숨어있다.

지난 지방선거의 승리는 문재인 정권의 국정운영 동력을 확충해준 것뿐만 아니라 일정 이상의 정치적 부담을 안기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취임 이후부터 계속된 ‘적폐청산’을 ‘정치보복’으로 둔갑시킨 보수세력의 여론이다.

지방선거의 기록적 패배로 보수세력은 궁지에 몰려있다. 보수세력을 벼랑 끝으로 내몰면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것과 같은 효과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탄핵 반대 바람으로 2004년 총선에서 대승을 달성하고도 2006년 지방선거에서 대패한 경험을 되살려보면 더욱 그렇다. 일부 논자들은 유권자의 ‘재정렬’ 등을 전망하고 있으나, 이번 지방선거 결과로 유권자 지형의 실질적 변동을 짚어내기는 아직 이르다는 해석도 많다.

김종필 전 총리에 대한 훈장 수여는 기성 정치권의 문법으로 보면 이상할 것이 없다. 과거의 이런 저런 논란에도 한국 정치를 현재에 이르게 한 업적을 기릴만 하다면 훈장을 줄 수 있다는 식이다. 더군다나 김종필 전 총리는 DJP연합으로 정권교체에 기여한 바도 있다. 이런 문법을 바꾸는 것은 ‘개혁’이다. 그런데 앞서의 이유로 정부는 훈장 주는 일에 대한 ‘개혁’을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24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훈장을 수여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정치적 행위일 수밖에 없지만, 정치공학적 효과를 떠나 훈장 수여 그 자체만 놓고 평가해야 할 필요도 있다. 대개는 김종필 전 총리가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에 큰 족적을 남긴 게 사실이고 타협의 정치(?)를 했다는 점에서 훈장을 줄만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훈장 수여를 반대하는 쪽에선 그가 5.16 쿠데타를 주도했다는 논리를 주로 내세우고 있다.

물론 이 정부는 민주정부이므로 독재체제를 수립한 5.16 쿠데타를 주도한 인물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김종필 전 총리의 인생을 5.16 쿠데타라는 하나의 사건만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정치인생 절반은 그의 표현대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쿠데타 및 군부독재와 멀어진 상태에 있었다. 이 정부가 ‘민주정부’라는 점에서 ‘5.16 쿠데타’를 훈장 수여 반대의 논리로 동원하는 걸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나, 그것보다는 좀 더 근본적 차원에서 생각했으면 한다.

찬성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김종필 전 총리의 정치인생은 한국 정치 그 자체와 떼어놓을 수 없는 수준의 것이다. 즉, 어떤 면에서 보면 김종필 전 총리는 체제의 설계자 중 한 명이다. 그는 국민이 본 피해에 대한 보상인 대일청구권 자금을 포항제철을 만드는 데 투입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이 사건은 개인의 권리 보장이 국가에 앞서는 게 아니라 정확히 그 반대라는 점에서 국가주의적 세계관을 정책적으로 공식화한 사례 중 하나이다.

찬성론자들은 식민지배상을 받아 국민에게 나눠주거나 사실상 기득권층이 착복한 다른 국가와 비교하며 ‘선견지명’을 말하곤 한다.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돈을 허투루 쓰지 않고 산업 인프라에 투자한 당시의 박정희 정권이 더 나은 선택을 했다는 거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개인의 권리라는 가치가 아니라 국가적 효율성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기준이 되었다는 점이다.

김종필 전 총리로 하여금 한국 정치에 족적을 남기게 한 사건인 3당합당은 어떤가? 3당합당은 다양한 노선으로 분화할 가능성을 보였던 한국의 주류 정치가 현재의 구도에 종속되는 역사적 계기를 마련한 사건이다. 김종필 전 총리는 국내 정치를 안정시키고 북방외교를 도모하기 위해 이런 선택을 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지만, 결국 여소야대를 여대야소로 바꾸기 위한 정권의 기획에 협력하고 그 반대급부를 취했다는 자기고백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도 수단은 목적에 의해 기만적으로 정당화되었다.

DJP연합도 마찬가지다. 김종필 전 총리는 “호남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는 명분을 동원했지만 이 역시 역사적 의의를 떠나 그 자체로만 놓고 본다면 앞의 3당합당과 같은 평가를 벗어나기 어렵다. 3당합당과 DJP연합을 이어놓고 보면 이러한 정치적 선택이 만든 결과가 ‘정권교체’ 이상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당합당과 DJP연합은 자유주의 정치와 보수정치, 영남과 호남의 대결이라는 양대구도의 형성을 촉발하거나 심화시켰다. 일부 논자들은 이를 기회주의냐 타협이냐 처럼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프레임에 가두려 하지만, 정확히 말해 김종필 전 총리의 선택은 양당제적 구도의 형성과 호응한 결과물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김종필 전 총리가 보여준 정치는 국가주의적 효율성의 지배이데올로기화와 양당제적 구도의 형성이라는 결과와 떼놓고 말할 수 없다. 이게 “한국 현대사에 족적을 남긴” 바로 그 사실을 말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정부가 김종필 전 총리에게 훈장을 추서하는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이러한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적어도 현재의 기득권들에게선 앞으로도 그럴 의지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김종필 전 총리 훈장 추서에 반대한다는 주장은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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