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언니들에게 은총을! <밥블레스유> (6월 21일 방송)

올리브TV <밥블레스유>

여성 예능은 성공하기 어렵다. 먹방은 이미 레드오션이 된 지 오래다. 이 두 가지는 방송계에서 거의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 선입견을 첫 회부터 무참히 깨버린 ‘물건’ 같은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지난 21일 방송된 올리브 <밥블레스유>다.

최화정, 이영자, 송은이, 김숙. 입담 좋은 여성 예능인 톱4이자, 방송을 떠나 실제로도 친한 4총사이자, 웬만한 남자 예능인과 대적해도 결코 밀리지 않는 언니들이 MC로 출연한다. 그리고 그들을 더욱 흥분케 만들 음식들이 함께 나온다. 그야말로 최상의 콤비다.

프로그램 구성은 심플하다. 고민 상담 사연을 듣고 그에 맞는 푸드 테라피 음식을 추천해주는 것이다. 방송이나 라디오에서도 종종 봐왔던 룰이지만, 네 언니들이 하면 또 다르다. “식당에 가면 모든 메뉴를 다 먹어야 일어나”고 “뷔페 가면 기본이 4시간”인 언니들의 입에서는 우리가 쉽게 떠올리지 못하는 음식과 그 구체적인 레시피들이 튀어나온다.

올리브TV <밥블레스유>

고민 사연을 듣기 전인 사전 회의에서 네 언니들은 가상으로 고민을 정해놓고 푸드 테라피 연습을 한다. 상황은 이렇다. 친구와 싸운 것은 아니지만 뭔가 찝찝할 때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할까. 최화정은 “너구리면 끝난다”면서 “너구리 먹고 있으면 친구한테 전화가 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이영자는 “너구리에 계란 하나 터뜨리면 내가 먼저 전화할 용기가 생긴다”고 받아쳤다. 계란 하나에 용기가 생긴다. 이성적으로 뜯어보면 일견 말이 안 되는 말 같지만, 이영자가 저 말을 하는 순간만큼은 모두가 무릎을 탁 쳤을 것이다. MSG 많이 들어간 자극적인 에피소드가 아니라, 오로지 음식만으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산다는 건 굉장히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운 걸 이 언니들은 거뜬히 해냈다.

‘고객 상담을 하는데 진상고객에 지친 날엔 뭘 먹어야 할까요?’라는 실제 고민 사연에 최화정은 “감정노동자들이 순간순간 기분전환을 위해 인스턴트를 드시는 분들이 많은데, 엄마의 가정식을 먹이고 싶다”고 말하면, 옆에 있던 이영자가 “자존감을 높여준다”고 거들었다. 진상고객과 집밥, 일견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지만 ‘자존감’이라는 키워드를 넣음으로써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솔루션이 되었다. ‘너구리’ 테라피처럼, 최화정과 이영자의 합이 찰떡같다.

올리브TV <밥블레스유>

<밥블레스유>의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건, 바로 제작자 송은이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과거 <김생민의 영수증>을 팟캐스트에서 지상파 파일럿, 파일럿에서 정규방송까지 성공시킨 장본인이 바로 송은이다. 그녀가 실제로도 친한 여성 예능인들과 만나, 그들이 실제로 가장 잘하는 먹방을 보여주는 방송이다. 매주 목요일마다 네 여자들과 함께라면 그야말로 ‘해피 투게더’일 것 같다.

이 주의 Worst: 진짜 욱하게 만든 토크쇼 <여자가 욱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6월 22일 방송)

신개념 여성 토크쇼를 표방했지만, 여성도 남성도 공감하지 못한 극단적인 이분법 토크쇼였다. 지난 22일 방송된 TV조선 <여자가 욱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귀에 닳도록 들었던 얘기를 동어 반복했을 뿐 아니라, 여성을 이해한다는 미명 하에 여성과 남성을 모두 극단적인 존재로 묘사했다.

TV조선 <여자가 욱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여자는 대화 내용보다 공감이 중요하다’는 전제로 토크를 진행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여자들과 대화할 땐 ‘헐’, ‘진짜’, ‘웬일이야’, ‘대박’ 네 가지 리액션만 알면 된다”는 말은 여자들을 오로지 리액션에만 집착하는 존재로 인식한 말이다. 게다가 “나 신도림에서 영숙이 만났어”라는 말에 대한 남녀의 입장차를 확인하는 데 너무나 긴 시간을 할애했다. 이게 그렇게 격정적으로 토론할 주제인지조차 의문이다.

프로그램 제목처럼, 방송 내내 여성들은 욱했고 남성들은 당황했다. 물론 남성들이 잘 모르는 여성들의 행동이나 심리가 분명히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해 토크를 할 때는 당연히 여자는 분노하고 남성들은 반성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누가 봐도 여성이 기분 나쁠 말임에도, 남성들은 시종일관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는 모습은 다소 작위적인 설정처럼 보였다.

정성호는 “살 빼면 예쁠 것 같다”는 남자들의 말에 대해 “살 속에 숨겨진 이목구비가 예뻐서 그런 말을 한 것이다”라고 변명했다. 지상렬은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너랑 사귀었을 텐데”라는 말에 대해 “그만큼 아끼고 사랑한다는 뜻이다”, 여자를 어떤 집단의 꽃에 비유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만큼 여직원을 자랑하고 싶다는 뜻이었을 것이다”라고 그런 발언을 한 남성들을 두둔했다. 진짜 진심이었는지, 아니면 여성 패널의 ‘욱’을 끌어내기 위해 꼰대 역할을 자처한 것인지 모르겠다.

TV조선 <여자가 욱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여자가 이 집단의 꽃이다”,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너랑 사귀었을 텐데”라는 말이 기분 나쁜 이유를 진짜 모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예능을 위해 모르는 척 하는 것일까. <여자가 욱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가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남녀 패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평행선을 달렸다. 그러나 그 간극은 남성이 여성을 이해하기 위한 유의미한 과정이 아니었다. 여성은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남성은 지나치게 배려심이 없는 혹은 여자는 다 옳고 남자는 다 생각 없는 극단적인 존재로 그린 결과에 불과했다. 여성들을 이해하겠다는 의도로 만들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여성들조차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토크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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