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우리가 가진 가장 큰 힘은 사규입니다.(중략)저들은 단체행동의 힘을 앞세워 균형 잃고 사사로운 목적을 위해 도가 넘는 지나친 행동을 일삼고 있습니다. 보도부문에서 회사가 반드시 일벌백계해야 하는 대상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2012년 1월 30일부터 그해 7월 17일까지 이른바 '170일 파업'으로 불리는 공정방송 투쟁을 벌였다. 그런데 당시 MBC 보도국 인사발령 권한을 가진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이 '보도부문 블랙리스트'를 작성·실행했다는 MBC 감사 결과가 나왔다. MBC에서 카메라기자 블랙리스트, 아나운서 블랙리스트에 이어 또 하나의 블랙리스트가 드러난 셈이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2012년 2월과 7월, 파업 상황의 MBC에서 당시 황헌 보도국장은 권재홍 보도본부장에게 이같은 내용의 메일을 전송했다. 해당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직원들 중 62%가 실제로 보도부문에서 배제됐다.

2012년 MBC 공정방송 파업 현장(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MBC 감사국은 21일 오후 열린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정기이사회에서 상반기 특별감사 결과 및 내부감사 결과를 보고했다. 이 자리에서 박영춘 MBC 감사는 2012년 MBC 파업 상황에서 이른바 '보도부문 블랙리스트'가 작성·실행됐다고 밝혔다.

내부감사 과정에서 MBC 감사국은 취재기자 블랙리스트로 의심되는 메일 로그를 확인했다. '기자', '인사', '배제' 등의 키워드로 MBC 인트라넷 메일 로그를 검색한 결과 2012년 7월 7일 당시 황헌 보도국장이 권재홍 보도본부장에게 보낸 '황헌입니다~'라는 제목의 메일 로그가 확인됐다. 메일에 첨부된 파일명은 '201207 인사안.hwp'이었다.

MBC 감사국은 메일 발신자인 황헌 전 보도국장(현 논설위원)을 인터뷰해 메일 열람 동의를 구했다. MBC 감사국은 황 전 보도국장이 자신이 인사에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다른 내용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며 메일 열람에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MBC 감사국이 열람한 '201207인사안.hwp'에는 황 전 보도국장의 주장과 달리 파업종료와 업무복귀를 앞두고 취재기자들을 부서배치하는 안으로 드러났다. MBC 감사국은 "사실상 '블랙리스트'인 66명의 '보도부문 인사배제 리스트'가 있었다"며 "파업에 참여한 고참급, 간부급 사원들과 파업 참여도가 높았던 취재기자들이 대부분이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황 전 보도국장은 메일에서 66명의 '인사 배제 리스트'를 선정하고, 그 중 15명을 따로 뽑아 '최우선 보도부문 배제 대상 리스트'를 작성했다. 이중 징계를 받지 않은 간부급 사원들 12명을 선별해 "보도부문 배제를 기본으로 삼아야"한다고도 덧붙였다.

이같은 결과에 따라 MBC 감사국은 황 논설위원이 보도국장으로 재임하던 기간동안 유사 메일을 권재홍 보도본부장에게 발송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추가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2012년 2월 25일 같은 제목의 메일이 발송된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해당 메일에서 황 전 보도국장은 "보도부문에서 회사가 반드시 일벌백계해야 하는 대상들은 다음과 같다"며 ▲기자회 제작거부 주도 ▲배후에서 파업을 독려하거나 불참자 회유, 압박에 나선 경우 ▲'제대로 뉴스데스크'(파업뉴스)제작 참여 ▲좌충우돌 돌발 행동으로 회사와 MBC뉴스의 명예 및 신뢰 훼손 ▲파업에 참여한 고참, 간부급 사원 : 조합에 큰 힘을 줌 등의 기준으로 직원들을 분류, 총 24명을 리스트화 했다.

2012년 MBC 파업 당시 '제대로 뉴스데스크'(파업뉴스) 보도 화면 갈무리

MBC 감사국은 '일벌백계'해야 할 대상으로 언급된 24명 중 실제 ▲해고 2명 ▲정직 9명 ▲교육발령 및 징계성 전보 7명 등 총 18명(75%)이 징계·징계성 교육 및 전보되었고, '보도부문 배제 리스트'에 포함된 66명 중 43명(65%)이 정직 등의 징계, 교육, 징계성 전보되는 등 실제 보도부문에서 배제되었음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일례로 황 논설위원으로부터 '기자회 제작거부 주도'를 했다고 지목된 박성호 당시 기자협회장(현 MBC뉴스데스크 앵커), '배후에서 파업을 독려'했다고 지목된 박성제 기자(현 MBC 취재센터장)은 2012년 MBC에서 해고됐다. 박성호 기자의 해고사유는 '취업규칙위반(파업주도)'이었고, 박성제 기자의 해고사유는 '회사질서문란'이었다.

황 전 보도국장은 MBC 감사 결과에 대한 소명에서 "2012년 7월 7일 오후 5시 편집회의가 끝난 시점에 보도본부장이 '파업 종료에 대비하여 인사안을 짜서 올려라. 노조 전임자, 기자회 집행부, 파업 참여 보직자, 대기발령 받은 자들은 보도국 각 부서에 배치하면 업무 진행에 어려움이 예상되니 참고하기 바란다'는 지시를 내렸다"고 블랙리스트 작성 경위를 설명했다.

이어 "본인은 경력기자 채용 남발과 방송인 현업 배제 두 가지 가운데서도 특히 후자의 죄질이 더욱 나쁘고 심각하다고 생각해온 사람"이라며 "보도본부장이 지침을 내려주었다 해도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더 현업부서에 배치하려 최선을 다하지 못한 행동에 자신을 격하게 질책하고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MBC 감사국은 황 전 보도국장과 권 전 보도본부장의 행위에 대해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파업에 참여한 취재기자들을 보복성 인사조치 함으로써 보도부문에서 배제시키고, 취재업무에서도 배제시킨 행위는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MBC 감사국은 감사 결과를 바탕으로 '보도부문 블랙리스트' 메일을 권재홍 전 보도본부장에게 발송한 황헌 논설위원을 인사위원회에 회부해 징계할 것을 사측에 요구했다. 또한 이미 퇴사해 부당노동행위로 기소돼 있는 권재홍 전 보도본부장에 대해 관련 자료를 검찰에 추가 증거로 제출하는 것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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