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이명박·박근혜 정권 이후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방송이 정상화됐다고 말한다. 정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방송 제작이 가능해졌다는 의미다. 하지만 정상화된 방송 환경에서 노동·인권·여성의 문제는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1일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창립 20주년을 맞아 개최한 “촛불, 언론운동의 방향을 틀다” 세미나는 방송 정상화 논의에서 빠져있는 노동·인권·여성의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을 촉구했다.

<촛불, 언론운동의 방향을 틀다 : ‘방송정상화’ 논의에서 빠져있는 것들- ‘노동’, ‘인권’, ‘여성’> 세미나(미디어스)

이날 세미나에는 최성주 언론연대 대표·김혜진 방송계갑질119 스태프·명숙 인권활동가·윤정주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김두영 드라마 스태프·지원준 독립PD·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이종임 언론연대 정책위원 등이 참여했다.

김혜진 스태프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노동’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으며 방송을 만드는 이들의 ‘노동의 가치’가 존중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혜진 스태프는 “노동과 관련한 사안이 보도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에서만 나온다”며 “그마저도 노동을 사건으로 접근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성심병원 문제에 대한 제보는 부당행위 같은 노동 처우 문제였다”면서 “하지만 성심병원에 대한 보도는 선정적인 장기 자랑만 부각됐다”고 지적했다. 김혜진 스태프는 “그런 보도행태라면 제보한 사람이 상처를 받는다”고 꼬집었다.

또 김혜진 스태프는 “드라마나 교양, 예능에서는 여러 직종 노동자의 현실이 드러나야 한다”면서 “하지만 매우 비현실적이고 지나치게 미화된다”고 지적했다.

11시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혜진 방송계갑질119 스태프, 명숙 인권활동가, 최성주 언론연대 대표, 윤정주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 (미디어스)

김혜진 스태프는 “지금의 방송은 제작 현장에서 나타나는 위계적 구조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혜진 스태프는 “가장 대표적으로는 KBS가 상품권 페이를 보도한 한겨레에 민사 소송을 한 사건”이라며 “방송제작현장을 개선하겠다는 말과 달리 현장에서 실질적인 변화는 체감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혜진 스태프는 “방송국은 비정규직을 방송 제작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다”며 “방송은 프리랜서 노동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경향이 크다”고 밝혔다. 이어 “방송의 정상화는 노동의 정상화를 해야 완성된다”고 강조했다. 김혜진 스태프는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 ▲방송 기자·PD가 노동 의제에 전문성을 가져야 하며 ▲방송사 비정규직을 주체로 인정하고 제도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윤정주 소장은 미디어 속 성 평등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정주 소장은 “고위직 대부분이 남성들이기 때문에 성 평등이나 페미니즘의 관심이 저조하다”며 “이에 관한 관심이 있는 구성원들의 경우 승진 등에 유리하게 작용하기는커녕 배제되는 이유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성차별적인 조직문화는 구성원 간의 성폭력뿐만 아니라 제작과정의 전반에 반영된다”며 “조직문화 개선은 성적으로 평등한 미디어를 위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편성에 있어서 젠더 관점이 들어간 프로그램을 찾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왔다. 윤정주 소장은 “여성이 여성의 시각에서 정책을 토론하는 정규 프로그램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KBS에서 마녀의 법정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지만, 이는 여성가족부의 지원을 받아 만든 것”이라며 “지상파 방송사가 자신의 자본을 들여서는 여성과 관련한 드라마를 만들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11시부터 시계방향으로 김두영 드라마 스태프, 지원준 독립 PD, 이종임 언론연대 정책위원,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미디어스)

나영 집행위원장은 “방송사의 인터뷰 요청을 받는다”면서 “이들은 여성, 소수자 문제에 관심도 가지지 않고 취재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언론이)여성 문제에 전문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이종임 정책위원은 “(방송국에서)노동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며 “프리랜서라는 특수성 때문에 근로계약서 도입도 반영되지 않는가”고 밝혔다. 이어 “희망이 없다면 이 자리는 의미가 없다”며 “희망과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전했다.

제작 현장의 목소리도 나왔다. 김두영 드라마 스태프(발전차)는 “드라마 제작 현장은 전쟁터”라며 “스태프의 노동권, 인권은 착취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작과정에서 부상을 입어도 제작사나 감독, 방송사가 보상해주지 않는다”며 “근로계약서도 쓰지 못하는 취약한 상태”라고 밝혔다. 지원준 독립 PD는 “(정규직)PD는 아랫사람을 막 대하는 경향이 여전히 바뀌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최성주 대표는 “촛불이 이야기하는 변화가 이 정도에서 그치면 안 된다”며 “정치와 언론 현장에 있는 분들이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혔다. 이어 “고 이한빛 PD처럼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방송계 노동 문제는 이슈가 되지 않는다”며 “이는 정치인 등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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