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이 선수가 한국에 온다고 했을 때 개인적으로는 '웬일인가' 싶었습니다.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강한 인상을 심어줬던 선수였기에 뭔가 한 건 제대로 터트렸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기대대로 그는 입단한 지 단 1주일 만에 팀에 완벽히 녹아든 모습을 보이면서 또 한 번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바로 '우즈벡 특급' 세르베르 제파로프(서울)를 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제파로프가 31일 저녁,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쏘나타 K리그 2010 15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홈경기에서 선발 풀타임 출장해 만점 활약을 보여줬습니다. 지난 28일, 포스코컵 2010 4강전 수원 블루윙즈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던 제파로프는 리그 데뷔전에서도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며 우승에 도전하는 서울에 천군만마같은 존재가 됐습니다. 제파로프의 활약 속에 서울은 2-0 승리를 거두고 정규리그 1위로 올라섰습니다.

데얀과 함께 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장한 제파로프는 중앙과 좌우를 가리지 않는 왕성한 활동 범위와 활동량으로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팀에 합류한 시간이 짧았지만 경기 초반부터 팀에 완전히 융화된 모습을 보여주며 좋은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특히 유기적이면서도 날카로움이 묻어났던 패스플레이는 동료 선수들에 결정적인 기회로 이어졌고, 넓은 시야를 활용해 좌우 측면에 정확하게 연결된 패스 정확도는 대단히 눈에 띄었습니다.

▲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서울과 제주의 경기 후반, 서울 제파로프가 슛을 시도하고 있다. 제주 수비는 김명환 ⓒ연합뉴스
이 같은 제파로프의 장점은 전반 15분 만에 빛이 발했습니다. 오른쪽 측면에서 볼을 잡던 제파로프는 중앙에서 골문을 향해 쇄도하는 데얀을 향해 곧바로 짧고 정확한 패스를 시도했고, 데얀이 침착하게 이를 골로 연결시키면서 리그 첫 도움을 기록했습니다. 이후에도 볼을 잘 뺏기지 않고, 동료에게 짧고 정교한 패스로 공격 기회를 만들면서 인상적인 공격력을 보여줬습니다.

과감한 슈팅도 돋보였습니다. 전반 24분, 아크 왼쪽에서 제주 수비수 한명을 제치고 날카로운 슈팅한 것을 비롯해 33분에는 아크 정면에서 위협적인 중거리슛을 하면서 제주 문전을 계속 해서 두드렸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터트리는 슈팅은 세밀함과 정확도가 묻어있었고, 제주 수비진을 와해시키는데 큰 힘이 됐습니다.

이렇게 공격적인 면에서 좋은 활약을 잇따라 선보이자 동료 선수들이나 감독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빙가다 감독은 "잘 하는 선수들 안에 잘 하는 선수가 와서 더 좋은 팀이 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 팀에 마지막으로 필요한 부분을 채워졌다”면서 제파로프의 연이은 활약에 찬사를 보였습니다. 이날 결승골을 넣은 데얀도 "제파로프 같은 좋은 선수들이 가세해서 나도 더욱 편하게 공격할 수 있게 됐다."라면서 반기는 반응을 보였고, 또 7년 만에 친정팀에 복귀한 최태욱 역시 "유기적이면서 빈 공간 패스도 돋보이고 충분히 우리 팀에 강점이 될 만 한 선수"라면서 팀 우승에 힘이 실릴 수 있다며 고무적인 모습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지난 2008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던 제파로프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이미 간판급 선수로 주목받았던 선수였습니다. 파크타코르, 부뇨드코르 등 그가 있었던 팀마다 우승해 '우승 청부사'라는 별칭도 갖고 있던 제파로프는 우즈베키스탄 대표팀 주장으로도 활약하면서 '우즈벡 최고'의 선수로 각광받았습니다. 본인도 잘 하고 팀에도 이득이 되는 플레이 스타일을 갖고 있어 서울 입장에서는 기대를 갖고 제파로프를 영입했지만 이렇게 단 두 경기 만에 팀 주축으로 정착하면서 함박웃음을 짓고 있을 것입니다. 6개월 임대 형식으로 들어왔지만 결과에 따라 이 짧은 기간 안에 팀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주역이 될 수 있는 가능성도 단 두 경기를 통해 충분히 보였다는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골만 잘 넣는 선수가 아닌 창의적인 패스플레이와 과감한 움직임까지 돋보여 이전 공격 성향을 지닌 외국인 선수와 차원이 다른 점도 제파로프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수원의 리웨이펑을 제외하고는 아시아쿼터제에서 이렇다 할 소득을 얻지 못했던 K-리그 입장에서도 제파로프의 활약은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제파로프가 K-리그에 들어간다는 소식부터 이미 아시아축구연맹(AFC)을 통해 크게 알려졌을 만큼 존재감이 대단한 선수임이 틀림없습니다. 이를 계기로 K-리그 대외 인지도 향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모 언론에서는 제파로프가 '복덩이'라고 표현했는데 정말 모처럼 제대로 된 복덩이가 들어왔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꾸준함이 중요하겠지만 이미 우즈베키스탄 자국 리그를 통해 인정받은 만큼 부상만 없다면 제파로프는 서울의 상승세에도 보탬이 되고 나아가 K-리그 후반기 판도, 그리고 흥행을 뒤흔들 열쇠를 쥘 것으로 보입니다. 단 6개월 만에 큰 족적을 남기며 전설급 선수가 되는 제파로프가 될 수 있을 지 앞으로도 그의 행보를 꾸준하게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