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오후 민주언론시민연합(공동대표 신태섭·김서중) 주최로 제17대 대선보도 평가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신문과 방송, 포털의 대선보도를 총정리한 발제도 눈길을 끌었지만 대선 이후 언론 감시 방향을 둘러싼 토론도 치열하게 전개됐다.

경향 이재국 기자 "18대 총선은 한나라당 영구집권 위한 마지막 승부처"

경향신문 국제부 이재국 기자는 "왜 이런 정치언론의 행태가 반복되고 일상화되는 것을 넘어서서 이제는 포기해야 할 단계까지 왔는지, 해법은 없는지 고민이 된다"며 먼저 경향신문에 대한 '자성'부터 내놓았다.

▲ 민언련은 28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무교동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대선보도 결산 토론회를 열었다. ⓒ정은경
그는 "경향신문이 이명박 후보의 도곡동 땅 문제에 대해서는 특종을 많이 했지만 본격적인 BBK 국면에서는 '반 이명박 신문'으로 규정될까봐 의식적으로 주저한 부분도 있다"며 "나름대로 유권자들의 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영향을 미치지 못한 부분도 있다는 점에서 경향 기자들도 반성할 대목이 있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이날 언론운동 진영, 특히 KBS에 대해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그는 "지난 10월 현업 언론인들이 보도감시를 위한 협의체를 만들었는데 언론노조 KBS본부에서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간의 KBS 보도에 대해 KBS가 자체적으로 어떤 자기반성과 진단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며 "앞으로 KBS2TV 분리 및 민영화, 경영진 구성 등에 있어서 한나라당의 눈치보기를 한 것은 아닌지, 자기검열을 한 부분은 없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그는 또 "이번 대선에서는 대선미디어연대와 민언련이 효율적으로 연계하지 못했다"며 "18대 총선은 단순한 총선이 아니라 조중동을 포함한 언론권력, 한나라당, 삼성을 비롯한 재벌 등 보수동맹의 복합체들이 영구집권의 발판을 다지기 위한 마지막 승부처인 만큼 언론운동 진영에서도 반성과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KBS 최경영 기자 "KBS 눈치보기 체질화…실명비판 하시라"

KBS <시사기획 쌈>의 최경영 기자는 "KBS 노조는 방송의 공정성이나 언론자유 측면보다는 임금 등 경제투쟁에 신경을 많이 쓰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기자나 PD 집단도 한겨레나 경향에 비해서는 보수적"이라며 "그나마 정연주 사장 체제에서는 <미디어포커스>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사회 다양한 약자들의 목소리도 내고 비판도 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 KBS 최경영 기자 토론하고 있다. ⓒ정은경
그는 "KBS는 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의 눈치를 보는 것 같지는 않은데 전두환 정권 때부터 눈치보기가 체질화돼있지 않나 싶다"며 "보도국 내에는 구체적인 공포의 대상이 없지만 수동적인 취재, 편집 행태가 아직 강하게 남아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관행의 개선을 위해 최 기자는 "기자도 공인인 만큼 실명비판을 하셔도 명예훼손의 여지가 거의 없다"며 "기자, PD 개개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실명을 거론해서 비판해주시는 것이 보도 방향을 결정짓는 데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PD연합회 권오훈 편집주간 "침묵이 더 문제…편파시비도 한 몫"

한국PD연합회 편집주간을 맡고 있는 KBS 권오훈 PD는 "제작 종사자로서의 고민은 어떤 일을 하는 것보다 아예 안 해버리는 것이다. 저널리즘의 가장 무서운 적은 침묵"이라며 "침묵을 깨는 방법은 밖에서 흔들어 깨우고 계속 자극을 주는 것만이 좋은 수단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권 PD는 에리카김을 인터뷰한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 심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대선보도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모든 제작자들이 그 과정을 보면서 자기검열이라는 덫에 빠지지 않았을까 싶다"고 우려했다. 그는 "중요한 탐사보도를 하려고 할 때 그 결과가 편파시비, 심의를 통한 징계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제작자들에게 보이지 않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 PD는 "일부신문이 노골적으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이유가 이념적으로 일치해서라고 보지 않는다. 이명박 당선자야말로 위기에 빠진 신문산업의 활로를 찾아줄 후보라고 판단한 것"이라며 "이명박 정권 이후 미디어정책 변화와 연관지어서 보도를 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미디어스 신학림 기자 "KBS·MBC 무전략…SBS, 긍정적 내부진통 있을 것"

▲ 미디어스 신학림 기자가 토론하고 있다. ⓒ정은경
전국언론노조 위원장 출신의 미디어스 신학림 기자는 "조중동은 이해관계에 따라 이명박 후보의 비공식 선거운동캠프로 일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모니터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며 방송 비판에 초점을 뒀다.

신 기자는 투표 당일과 그 직후 이명박 당선자에 급격히 기운 SBS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좋은 보도를 하기 위해 필요한 유일한 조건은 좋은 소유구조를 갖는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SBS가 긍정적인 내부 진통을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SBS는 지난 2004년 노사 합의로 14대 개혁과제를 만들었는데 그 가운데 노조의 사외이사 추천 제도만 시행을 못하고 있다"며 "이번 대선 보도로 인해 언론노조 SBS본부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신 기자는 "이번 대선보도에서 KBS와 MBC는 무의식, 무전략으로 고민을 한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며 "사장이나 본부장이 일일이 간섭하라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큰 그림은 그리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주장하고 있는 'MBC 민영화'에 대해서는 "MBC 민영화는 곧 박근혜 전 대표의 소유가 되는 것이고 자본금 10억원 규모의 MBC가 4조, 5조원의 가치를 가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이명박 당선자 입장에서는 박 전 대표가 반기를 들지 못하도록 하는 당근을 가지고 있는 셈"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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